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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재현한 17세기판 먹스타그램

입력
2021.03.25 15:00
수정
2021.03.26 09:42
26면


"어때? 나 이렇게 잘 먹고 살아!"

페테르 클라스, 칠면조 파이가 있는 정물, 1627, 나무에 유채, 75 x 132 cm,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페테르 클라스, 칠면조 파이가 있는 정물, 1627, 나무에 유채, 75 x 132 cm,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 테이블에 예쁘고 고급스럽게 세팅한 음식 사진을 수없이 본다. 요즘은 맛집 메뉴에서 직접 만든 요리에 이르기까지 먹기 전에 사진부터 찍는 일이 일상화되었다. '먹다'와 인스타그램의 합성어인 '먹스타그램'은 SNS에서 애완동물 사진과 더불어 가장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최강 아이템일 것이다. 그나저나 먹스타그램과 17세기 네덜란드의 음식 정물화는 희한하게 닮아 있다. 둘 다 눈을 즐겁게 하고 식욕을 자극한다. 약간, 혹은 과도하게 연출되었거나 은밀한 과시욕이 엿보인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위 작품은 17세기 네덜란드의 정물화가 페테르 클라스(Pieter Claesz)의 연회 그림이다. 실물 크기로 그려져 바로 앞에 식탁이 놓여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방금까지 누군가 식사하다가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일까? 음식들이 사진처럼 생생하게 묘사되어 보는 이의 군침을 돌게 한다. 당시로는 구하기 힘든 호사스러운 음식들과 고급 식기를 한껏 과시하는 부자의 식탁이다. 정밀한 질감으로 표현된 흰 식탁보의 주름, 레몬 껍질과 얇게 저민 레몬 조각, 빛을 반사하는 백랍 주전자와 뢰머 와인잔, 앵무조개 모양의 금도금 잔 등에서 화가의 탁월한 테크닉을 볼 수 있다.

화가는 17세기 네덜란드 사회의 세계화된 식탁을 보여준다. 테이블 오른쪽의 꽃을 문 칠면조 머리와 깃털, 날개로 꾸민 커다란 고기 파이는 아메리카에서 수입한 야생 칠면조로 만든 요리다. 파이 주변에는 올리브, 굴, 레몬, 빵, 과일 등 다양한 먹을거리가 백랍 접시와 중국 도자기에 담겨 있다. 투명한 유리잔에는 주전자에서 따른 화이트 와인이 있다. 레몬과 올리브는 지중해 지역에서, 도자기는 중국에서 수입한 것이다. 흰 테이블보는 인도산, 화려한 무늬의 식탁보는 페르시아산 직물이다.

왜 이런 호화로운 정물화가 유행한 것일까?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네덜란드는 1648년 독립전쟁을 일으켜 공화국을 수립했고, 식민지 개척과 해상무역으로 경제적 부를 창출함으로써 역사상 최고의 황금시대를 이룩했다. 이 시기에 상인, 기업가 등 상공업에 종사하는 도시인들로 구성된 시민계급이 새로운 유력계층으로 부상했다. 부유한 신흥 부르주아는 이제껏 교회와 귀족계층의 전유물이었던 미술시장을 기웃거리며, 자신들의 품격을 높이고 교양을 드러내고 싶어 했다. 그들은 장엄한 종교화, 역사화 대신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풍속화와 정물화를 원했고, 이에 따라 엄청난 양의 정물화가 나타난다.

네덜란드 항구에는 전 세계의 사치품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지중해의 과일, 아메리카의 커피, 담배, 설탕, 인도산 향신료와 면직물, 중국의 비단, 차와 도자기, 베네치아의 무라노 유리제품, 심지어 아프리카의 노예 등등. 부유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진귀한 물건들을 그림으로 남겨 영원히 기념하려고 했다. 온갖 이국적 먹을거리가 그려진 음식 정물화 역시 그들의 사치스러운 식탁을 자랑하려는 과시 욕구의 산물이었다. "어때? 나 이렇게 잘 먹고 살아!" 오늘날의 먹스타그램과 유사하지 않은가?


발타자르 반 데르 애스트, 과일 바구니가 있는 정물, 1622, 나무에 유채, 49.5 x 81.2 cm, 노스캐롤라이나 미술관

발타자르 반 데르 애스트, 과일 바구니가 있는 정물, 1622, 나무에 유채, 49.5 x 81.2 cm, 노스캐롤라이나 미술관


그런데 네덜란드 정물화와 먹스타그램 간에는 한 가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이들 정물화는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을 자랑하는 동시에 독특한 삶의 철학을 내포하고 있다. 바니타스 정물화인 것이다. 'vanitas'란 공허함, 헛됨을 뜻하는 라틴어로서, 인간의 세속적 물질욕이 얼마나 헛되고 덧없는가에 대한 도덕적 메시지를 담은 그림이다.

위 작품은 발타자르 반 데르 애스트(Balthasar van der Ast)가 그린 바니타스 정물화다. 널빤지 상판을 덮은 오렌지색 식탁보 위에 포도, 사과, 복숭아, 살구, 체리 등 탐스러운 과일로 가득 찬 바구니가 있다. 그림 속 아름다운 꽃과 풍요로운 과실들은 잠시 동안의 짧은 삶에 대한 은유다. 시간이 흐르면 꽃과 과일은 시들게 마련이다. 인간의 생명도 마찬가지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구니 뒤쪽, 포도 덩굴 잎에 나비가 보인다. 바구니에서 기어 나오는 도마뱀과 중앙의 녹색 포도송이 윗부분에 희미하게나마 잠자리도 보인다. 맨 왼쪽 모서리에는 파리 두 마리, 오른쪽 모서리에는 메뚜기 한 마리가 있다. 과일과 꽃은 유한한 시간을, 곤충들은 부패와 죽음을 상기시킨다. 바니타스를 말하기 위해 쓰인 소재들인 것이다. 페테르 클라스의 그림 속 중국 도자기에 담긴 사과의 썩은 반점도 삶과 생명의 한계를 상징한다.

그렇다면, 황금시대를 구가한 17세기 네덜란드에 왜 하필 이런 허무주의적 주제가 정물화에 나타났던 것일까? 서양문화에서는 원래 물질적 부를 죄악시하는 금욕적인 기독교 가치관이 뿌리 깊다. 또한, 네덜란드인들은 근면과 검약을 내세운 칼뱅파로 개종하면서 철저한 청교도적 생활을 중시했는데, 이것이 바니타스 정물화를 발전시키는 자양분이 된다. 부르주아들은 외국에서 들여온 값비싼 수입품들과 고급스러운 식탁을 자랑하는 한편, 두개골, 시든 꽃, 곤충, 촛불 등 인생무상을 상징하는 것들을 통해 종교적 금욕주의도 함께 표현하기를 바랐다. 바니타스 정물화는 칼뱅파의 교리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세속적 쾌락을 즐기고 부를 과시하고 싶었던 이들의 바람을 절묘하게 만족시킨 것이다.

먹스타그램을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음식은 우리 삶의 필수 요소이자 인류의 공용어다. 비록 사진이지만, 음식을 공유함으로써 사람들 간에 친밀한 소통과 공감대를 형성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음식이든 어떤 물질적 집착이든, 욕구 충족을 위해 되돌아봄 없는 무한 질주 상태에 있다. 400년 전 정물화에 부와 물질주의를 경계하고 욕망을 자제하려는 종교적 장치 '바니타스' 개념이 있었다면, 오늘날의 먹방이나 먹스타그램에서는 음식이 일종의 물신숭배의 대상이 된 듯하다. 먹고 마시며 짧은 생을 향유해야 한다는 ‘즐거운 인생’이 현대인의 종교다.

김선지 작가·'그림 속 천문학'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저자
대체텍스트
김선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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