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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갈등 EU·英 '휴전'… 이번엔 인도發 '백신 대란' 우려

입력
2021.03.2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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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英 "백신 협력" 공동성명에도 EU '수출 금지' 강화
인도, 자국 수요 위해 백신 수출 금지… 백신 대란 예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17일 EU 본부에서 28명 집행분과위원장(커미셔너) 회동 후 코로나19 대응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브뤼셀=AP 뉴시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17일 EU 본부에서 28명 집행분과위원장(커미셔너) 회동 후 코로나19 대응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브뤼셀=AP 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공급 문제로 서로 으르렁거렸던 유럽연합(EU)과 영국이 일단 ‘휴전’을 선언했다. 백신의 혜택이 고르게 돌아갈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며 공동성명을 냈다. 그러나 구체적인 협력 방안은 언급하지 않아, 한층 더 깊어진 갈등의 골을 어떻게 메울지 주목된다. 23일까지 인구 100명당 접종자 수는 영국 44.7명, EU 12.9명으로 양측 간 격차는 여전하다. 유럽에서 촉발된 ‘백신 이기주의’에 대한 비판이 날로 거세지는 가운데 세계 최대 백신 생산국인 인도마저 수출을 중단해 세계적인 ‘백신 대란’ 사태도 우려된다.

EU와 영국은 24일(현지시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모든 시민에게 백신 공급을 확대해 서로 ‘윈-윈(Win-Win)’ 하는 상황을 만들겠다”며 “상호의존성을 고려해 단기ㆍ중기ㆍ장기적으로 구체적인 조치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결국에는 개방성과 국제적 협력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극복하고 앞으로 벌어질 위기에 대처하는 핵심이 될 것”이라며 “계속 협의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백신 부족에 시달리는 EU가 꺼낸 “백신 역외 수출 금지” 카드에 영국이 “비민주적 발상”이라 반발하는 등 지난 몇 주간 양측이 치고받던 모습과 비교하면 상당히 진전된 입장이다. 티에리 브르통 EU 내부시장 담당 집행위원도 영국 BBC방송 인터뷰에서 “백신 공급 차질은 영국 정부가 아니라 백신 제조사 아스트라제네카 탓”이라며 “양측 간 긴장이 있지만 관계가 다시 정상화될 수 있다”고 유화적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실제 양측의 논의 과정은 “매우 느리고, 복잡하고, 난해하다”는 게 EU 외교가의 전언이다. 정치적 선언으로만 그칠 공산도 없지 않다는 얘기다.

공동성명을 내기 직전까지도 양측은 공방전을 벌였다. EU는 이날 호혜성과 비례 원칙에 기반해 백신 수출 승인 규정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백신 수출 승인 시 수입국의 코로나19 감염률, 백신 접종률, 백신 공급 상황 등을 고려하고, 해당 국가에서 EU로 백신이나 백신 원료 수출이 잘 이뤄지는지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발디스 돔브로스키스 EU 부집행위원장은 특정 국가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영국 수출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된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백신ㆍ의약품 수출 차단 조치는 비합리적일 뿐 아니라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25일 열리는 EU 정상회의에서도 백신 문제는 핵심 의제로 다뤄질 예정이다. EU 집행위원회는 회원국들에 이번 수출 제한 강화 조치에 대한 지지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BBC방송은 EU 내부 관계자를 인용해 “EU는 백신 회사와 백신 생산 국가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수출 통제 조치를 꺼냈을 뿐 실제로 사용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영국보다 백신 접종이 늦어지는 상황에서 무언가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걸 EU 시민들에게 보여주려는 정치적 의도도 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는 최근 수도 로마 인근에 있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관련 시설에 수사관을 보내 역외 반출 여부를 불시 점검하기도 했다.

인도 북부 잠무의 한 버스 정류장에서 23일 의료진이 코로나19 검사를 하고 있다. 잠무=AP 연합뉴스

인도 북부 잠무의 한 버스 정류장에서 23일 의료진이 코로나19 검사를 하고 있다. 잠무=AP 연합뉴스

백신 이기주의는 코로나19 감염 속도보다 더 빠르게 세계 각국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이날 인도가 백신 제조업체 세룸인스티튜트에서 생산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수출을 중단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날로 심각해지는 상황을 고려해 자국 내 백신 수요를 먼저 충족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브라질, 영국, 모로코, 사우디아라비아로 건너가는 물량은 멈춘 상태다. 인도는 10~23일 사이에 확진자가 무려 47만1,000여 명이나 쏟아지며 ‘2차 대유행’을 겪고 있다. 백신 접종률은 0.6%에 불과하다.

인도 외교부는 “수출 중단은 일시적 조처”라고 밝혔지만 당분간 전 세계에 백신 공급 차질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백신 공동구매ㆍ배분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가 주로 인도산 백신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피해가 저개발 국가에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코백스 협력기관인 유엔아동기금(UNICEFㆍ유니세프)은 “최대한 빠르게 백신이 배송되도록 인도 정부와 협의 중”이라고 전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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