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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사가 된 유학생 "미얀마 후손 위해 한국에서도 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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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가 나라를 지옥으로 이끌어가고 있어요. 군이 다시 정권을 잡으면 요직마다 낙하산을 내려보내겠죠. 뒷돈 주고 뇌물 줘야 승진하는 그런 사회로 돌아가는 거예요. (군부가 정권을 내려놓기 이전 수십 년 동안) 이런 분위기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렇게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저희는 저항합니다. 저희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후손을 위해서요.”
미얀마 출신 경희대 유학생 헤이만(31)씨
내성적이고 눈물이 많은 유학생은 어느새 고국의 민주화를 위해서 싸우는 투사가 돼 있었다. 한국에서 ‘행동하는 미얀마 청년연대’ 지도부로 활동하는 헤이만(31)씨는 두 달 전까지만 해도 경희대에서 3년째 아동학을 전공하던 평범한 석사과정 학생이었다. 졸업하면 경험을 쌓아서 귀국해 아이들을 가르치겠다는 꿈을 꿨다.
그러나 지난달 1일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인생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미얀마 군부가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을 구금하고 이에 반발하는 시민들을 폭력으로 진압하면서 이달 25일까지 사망자가 200명이 넘어섰다. 헤이만씨는 자신만 편하게 지낸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어야 할지 고민하던 순간, 미얀마의 공무원인 어머니와 동생이 해답을 건넸다. 그들도 끝까지 군부에 복종하지 않겠다고, 너는 거기서 너의 역할을 하라고.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면 미얀마의 미래는 없어지는 거죠. 군부에게 잡히든 말든 저는 상관 없습니다. 미얀마 국민들은 현장에서 목숨을 바치고 있는데 그런 문제를 생각할 시간이 없어요. 제 얼굴과 이름이 신문에 남겠지만 국민으로서 꼭 민주화 운동을 해야 합니다.”
미얀마 출신 회사원 흘리민툰(38)씨
청년연대에서 활동하는 흘리민툰(38)씨 역시 10년간 한국에서 생활한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부산대에서 국제경영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한 흘리민툰씨는 고국의 열악한 교육환경을 개선할 계획을 그리고 있었다. 이제는 아침마다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릴까 마음을 졸이며 잠에서 깬다. 무력과 경제력을 장악한 군부가 정권까지 쥐고 흔들며 사회를 부정부패로 몰아넣는 모습을 보고만 있지는 않겠다고 결심하며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 지난 23일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는 해외주민운동연대(KOCO)의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만난 두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한국사회의 도움을 호소했다.
헤이만 유혈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시위도 바뀌고 있어요. 길거리에 장난감이나 사망자의 자리를 만드는 무인시위가 벌어집니다. 새벽이나 밤에 시위를 시작하기 15분쯤 전에 유선으로 연락해 갑자기 모였다가 군대가 나타나면 흩어지고 다시 모이는 식의 번개시위를 하기도 해요. 젊은 층에서는 지금은 힘을 길렀다가 (민주화 진영의) 연방군이 창설되면 입대하자는 여론도 있어요. 무기도 없는 상황에서 군부와 맞서기가 불가능하니 소수민족 반군에 많이 입대했다고도 해요. 내전을 바라지는 않지만 군부 쿠데타를 쫓아낼 수 있다면 해야죠.
흘리민툰 통신이 끊기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현지 상황을 듣기도 어려워지고 있어요. 최근 일주일 정도는 인터넷이 거의 차단되면서 국제전화만 가능할 때가 많아요. 미얀마 국민은 경제활동이 어려워지면서 있는 돈으로 먹고 살고 있죠. 월요일에 만달레이(제2의 도시) 시장을 열었는데 아무도 가지 않았어요. 사태가 오래가면 국민이 살 수가 없어요. 빨리 군부가 물러나야 해요.
청년연대는 국내 미얀마 노동자와 학생을 주축으로 결성됐다. 이들은 지난달 초부터 국내에서 미얀마 군부를 규탄하는 한편, 한국과 국제사회의 실효성 있는 조치를 촉구해왔다. 이달 12일에는 서울 한남동의 주한 미얀마대사관부터 종로구 유엔인권위원회 서울사무소까지 6㎞를 오체투지로 나아가는 활동을 펼쳤고 미얀마 현지에서도 큰 관심을 끌었다.
흘리민툰 청년연대도 여러 미얀마 단체 가운데 하나예요. 청년연대는 미얀마의 정확한 뉴스가 한국에 보도되도록 번역, 통역하는 활동을 합니다. 또 한국 정부가 미얀마 정부를 제대로 제재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싶고, 특히 한국에서 미얀마에 투자하는 기업들이 많은데 그들이 투자를 멈추도록 (여론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합니다.
헤이만 모금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모금액은 미얀마에서 시민불복종 운동에 참여해 월급을 받지 못하는 공무원들을 지원하는 한편, 시위대에게 물품을 지원하고 부상자와 사망자를 위한 후원금으로 사용합니다.
흘리민툰 미얀마 국민에게 포스코가 많이 도움돼요. 하지만 당분간은 이러한 투자가 미얀마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중단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문민정부에서 하던 사업을 군부가 받으면 자금도 군부로 흐르죠. 이 시기에는 맞지 않아요. 당장은 어디 쥐구멍이라도 막아야 합니다.
헤이만 한국 정부 역시 모든 공적개발원조(ODA)를 중단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두 사람은 한국이 미얀마의 민주화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국가 가운데 하나라면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앞으로도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미얀마에 무기 수출을 중단하기로 한 한국 정부의 결단, 조계종이 펼친 오체투지가 알려지면서 한국을 향한 미얀마 국민의 애정이 커지고 있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헤이만 오체투지가 큰 화제가 됐어요. 미얀마 종교계는 쿠데타 이후 입장이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하는 스님들이 입장을 바로 내지 않았고 사상자가 많이 발생한 이달 4일에서야 애매모호한 입장문을 발표했어요. 젊은 층에서는 배신감과 좌절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한국 종교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주니 너무 위로가 되고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들 해요.
흘리민툰 한국 불교가 그렇게 해주니까 고맙다고들 이야기하면서 중국 제품을 불매하고 우리에게 평화가 찾아오면 한국이나 일본 물품만 쓰겠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미얀마에 힘을 줄 수 있도록 세 손가락을 든 사진을 찍어서 올려주면 좋겠습니다.
한국인이 왜 먼 나라의 내정에 관심을 가져야 하나. 그 질문에 두 사람은 지체 없이 답을 내놨다. 한국이 민주화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홰외로부터 받았던 경제적, 외교적 지원을 이제는 미얀마에 베풀어 달라는 부탁이다.
헤이만 한국 광주에서 벌어진 일을 미얀마 군부가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그걸 벗어나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 힘센 국가가 됐듯이 이웃인 미얀마에 공감해주시고 지지해주기를 부탁합니다.
흘리민툰 군부 쿠데타는 21세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미얀마에서 군부가 이긴다면 다른 나라 어디에서나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거예요. 국제사회는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도 미얀마를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터뷰는 취재진이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에서 진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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