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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조주빈’이 아니라 디지털 성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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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삶을 멈춰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해 이맘때 조주빈이 성범죄자 최초로 신상이 공개될 당시 했던 말이다. 스스로 '악마'라고 칭했던 그 교활하고 잔혹한 성착취 범행이 민낯을 드러낸 지 1년이 지났다. 그사이 가담자들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었고, 주범 조주빈은 45년형, ‘부따’ 강훈은 15년형이란 중형을 선고받았다. 그만큼 사법부가 이번 사건의 반사회적 심각성을 인정하고 디지털 성폭력에 대해 한 차례 경종을 울렸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주범이 아닌 가담자들에 대한 처벌 수위가 디지털 성폭력의 위험성에 대한 주의를 환기할 만큼 충분하냐는 것이다. 최근 n번방, 박사방 등과 관련해 기소된 315건의 1심 양형을 분석한 결과(여성신문 2021년 3월 21일)에 따르면, 성착취물을 소비하고 공유하고 이득을 취한 이들 대부분은 벌금형(50.5%), 집행유예(41.6%), 무죄(1.6%) 등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실형을 받은 경우는 5.1%이며, 평균 형량은 8.6개월에 불과했다. 주범과 가담자의 이러한 형량 차이는 주범과 가담자의 구분이 모호한 디지털 성폭력의 특성에 대한 고려가 미흡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디지털 성범죄는 가해의 작용 메커니즘과 피해 발생의 과정이 일반적인 성범죄와 다르다. 일반적인 성폭력이 신분을 드러낸 가해자의 물리적 폭력을 동반하는 것과 달리, 디지털 성폭력은 익명의 다수 행위자들이 성착취물을 생산, 소지, 유포하는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한다. 디지털 성폭력의 피해는 소수의 방 개설자 같은 생산자보다 수많은 이용자들의 소비와 유포를 통해 결정적으로 증폭된다. 광범위한 소비와 유포가 성착취물 생산자를 낳는 모태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 성폭력 근절을 위해서는 성착취물의 소지와 유포도 생산에 버금가는 가해행위라는 사회적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단순가담자’에 대한 지금까지의 처벌 수위는 거기에 한참 못 미친다.
디지털 성폭력 근절을 위해 우리 사회가 넘어야 할 산이 있다면 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다. 이번 사건이 공론화되기 전인 2019년 대법원 양형위원회 제98차 회의에서는 카메라등이용촬영죄와 통신매체이용음란죄가 피해자에 대한 물리력 행사나 신체적 접촉을 수반하지 않아 ‘성폭력’이라는 명칭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다수였다고 한다. 폭력을 물리적 폭력으로 한정하면 디지털 성폭력은 폭력의 범주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고통에 대한 호소는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들이 오히려 더 절박하다. 폭력 여부를 결정짓는 우선적인 기준은 가해의 행태가 아니라 피해자들의 고통의 정도이어야 하지 않을까? 상징폭력의 형태로 자행되는 디지털 성폭력은 성추행이나 강간 같은 성폭력보다 더 심각한 폭력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조주빈에 대한 중형 선고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 일반의 심각성에 대한 이해가 우선적인 이유일 때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조주빈 개인의 악마적 범행이 근거일 경우 다른 디지털 성폭력 범죄 판결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거기서 가해의 심각성을 유추하여 처벌할 때만이 디지털 성폭력은 근절을 기대해 볼 수 있다. 문제는, 악마는 조주빈이 아니라 디지털 성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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