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컨트롤타워' 양승태·임종헌 공모, 어디까지 인정됐나

입력
2021.03.24 20:0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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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걸·이규진 1심 판결문 분석>?
헌재 상대로 '대법원 위상 강화' 목적 범행 공모
"위헌제청결정 재판 개입, 양승태가 최종 승인"

양승태(가운데) 전 대법원장이 지난달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사법농단 사건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양승태(가운데) 전 대법원장이 지난달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사법농단 사건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연루된 이민걸(60)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59)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에 대한 23일 1심 법원의 ‘유죄 판결’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대목은 두 사람과 사법부 수뇌부의 범행 공모가 인정된 부분이다. 사법부 권력의 ‘정점’이었던 양승태(73) 전 대법원장과 ‘사법농단 1호’ 피고인인 임종헌(62)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이 전 실장 등의 ‘머리’ 역할을 한 것으로 봤다는 얘기다.

특히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은 사법부와 미묘한 ‘경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소를 상대로 대법원 위상을 강화하려는 목적에서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향후 상급심 법원 판단이 남은 데다, 양 전 원장ㆍ임 전 차장에 대해선 별도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라 최종 결론은 향후 대법원에서 내려질 전망이다.

24일 이 전 실장과 이 전 상임위원의 1심 판결문에 따르면, 법원은 최소 세 사건과 관련해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의 ‘공모’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는 △파견 판사를 통한 헌재 내부 정보 및 자료 수집 △서울남부지법의 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결정 취소 유도 △국제인권법연구회 및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와해 시도 등이다.

먼저 불법적으로 헌재 내부 정보를 수집한 행위는 전적으로 대법원과 최고 사법기관 지위를 다투고 있는 헌재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목적에서 진행됐다는 게 재판부의 결론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4년 7월 헌재가 GS칼텍스 법인세 취소소송과 관련해 법원 재판의 위헌 여부를 처음으로 판단하려 하자, 행정처 기획조정실을 중심으로 대응 방안 모색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이 전 상임위원에게 직접 “헌재 파견 판사를 통해 헌재가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고 지시한 사실이 증거로 인정됐다. 임 전 차장 역시 헌재 파견 법관을 통해 ‘한일협정 관련 헌재 내부 정보 및 자료’를 수집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 전 상임위원이 이와 관련해 유죄 선고를 받은 이상, ‘지시자’에 해당하는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에 대한 유죄 판단도 불가피해진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이 대법원 위상 강화를 위해 일선 재판부의 위헌제청결정을 뒤집는 데에까지 개입한 사실도 구체적으로 담겼다. 서울남부지법은 2015년 4월 한 사립학교 교수가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 조항에 대해 ‘한정위헌’(특정 방향으로 법률을 해석하면 위헌)이라는 취지로 위헌제청을 신청하자, 당초 해당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자 양 전 대법원장 등은 헌재가 실제로 위 사건에서 한정위헌 결정을 선고하면, 최고 사법기관으로서의 대법원 위상이 낮아질 것을 우려, 재판부에 ‘위헌제청결정 직권 취소’를 하도록 요구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양 전 대법원장의 ‘최종 승인’ 아래 이뤄진 것으로 판결문에 적시됐다.

행정처가 국제인권법연구회 등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원 내 판사 모임의 와해 시도를 한 부분에도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특히 임 전 차장은 이를 주도한 인물이라고 재판부는 못 박았다. 양 전 대법원장으로부터 ‘국제인권법연구회 문제는 내 임기 중에 정리를 하겠다’는 취지의 말을 듣고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한 당사자라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은 오랜 기간 국제법연구회 및 인사모의 약화나 해소를 사법행정의 목적으로까지 삼아 구체적 방안을 마련했다”고 지적했다.

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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