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파이프 끌며 욕까지… 대법 “공포심 안 느껴도 특수협박”

입력
2021.03.24 11:18
수정
2021.03.24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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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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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가 붙은 상대방에게 쇠 파이프와 같은 위험한 물건을 든 채로 겁을 주려는 행동을 했다면 상대방이 공포심을 느끼지 않았다 해도 특수협박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특수협박·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무면허 운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모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4일 밝혔다.

박씨는 2019년 4월 경남 거창군의 한 도로를 면허도 없이 만취상태(혈중알코올농도 0.176%)로 운전했다. 박씨는 이전에도 이미 음주운전 2회 전력이 있었다. 더구나 박씨는 음주운전 도중 자신의 차량을 가로막아 시비가 붙은 A씨를 협박하기도 했다.

A씨는 운전 중 박씨 차량을 보고 음주운전이 의심되자 뒤를 쫓았고, 이후 주행을 정지시키기 위해 아예 길목을 막아섰다. A씨가 계속 차를 빼 주지 않자, 박씨는 격분해 자신의 차에 있던 약 90㎝ 길이의 알루미늄 파이프를 꺼내들었다. 박씨는 A씨 일행에게 “이 X들이 장난치나” 등 욕설과 함께, 파이프를 바닥에 끌고 다가가며 위해를 가할 것처럼 행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1심은 특수협박죄를 비롯한 박씨의 모든 혐의를 유죄로 봐 징역 10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형법은 ‘단체로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협박하면 특수협박죄로 본다.

2심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박씨가 파이프를 들어 올리거나 휘두르지는 않았고, A씨도 ‘파이프 때문에 무섭지는 않았고 당황스럽고 놀라운 정도였다’고 진술했다”면서 특수협박 혐의를 무죄로 뒤집었다. 박씨 행위는 “단순한 감정적 욕설 또는 일시적 분노 표시에 불과하고, 협박의사가 있었다고 보긴 어렵다”는 게 재판부의 결론이었다. 박씨는 음주운정 등 혐의만 인정돼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됐다.

그러나 대법원 재판부는 “파이프는 사람의 생명·신체에 해를 가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위험한 물건에 해당하는 점, 당시 A씨가 차량을 후진시켰고, A씨 일행도 뒷걸음질을 한 점을 종합하면 박씨 행위는 충분한 해악의 고지”라고 밝혔다. 박씨의 행위 전후 사정을 볼 때, 둔기를 사용한 특수협박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박씨가 파이프를 들고 나와 해악을 고지했고, 피해자들이 그 의미를 인식한 이상 현실적으로 공포심을 일으켰는지와 상관없이 협박죄가 성립한다”고 덧붙였다.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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