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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뜨리지 않는 건축

입력
2021.03.24 22:00
27면
안 라카통과 장필립 바살이 입주민 퇴거없이 리모델링을 마친 프랑스 보르도의 아파트. AFP 연합뉴스

안 라카통과 장필립 바살이 입주민 퇴거없이 리모델링을 마친 프랑스 보르도의 아파트. AFP 연합뉴스


“절대 무너뜨리지 않고 자르지 않고 원래 있었던 추억을 소중히 여기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 올해의 수상자인 건축가 안 라카통과 장 필립 바살이 수상 소감을 통해 한 말이다.

1979년부터 세계의 건축가들 중 유력한 활동을 선보인 인물에게 수여하는 프리츠커상은 그 스케일이나 심사과정에서 충분히 수상의 권위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최근 유력한 건축 활동을 해온 500여 명이 넘는 건축가와 자발적으로 참여한 건축가들이 심사대상이다. 심사위원으로 건축계와 사회문화계 인사들이 함께 참여해 그 건축의 가치를 논한다. 이 과정을 통해 매년 심사에 올라온 건축가들은 수상을 못하더라도 다음 해에도 예비 심사 대상이 된다.

프랑스에 거점을 둔 이 두 건축가의 작업이 시사하는 메시지는 건축과 그 공간이 이색적이거나 화려함으로 점철된 특별함이 아니다. 건축은 사람이 사는 집이다. 모든 건축은 목적과 이유를 가지고 계획된다. 몇 명의 가족이 어떤 습관과 직업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면밀히 이해하고 요구하는 삶에 부합된 공간을 제공하는 작업이다. 그 배경에는 고대로부터 이어 온 방식이 투영된다.

인류 문명의 역사와 함께해온 건축은 동굴에서 모여 살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살아온 시대와 삶의 방식에 가장 적합한 규칙과 논리를 찾아나가며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건축가들은 그러한 오랜 역사의 흐름을 관통하고 있는 자로서, 크게는 도시의 맥락을 이해하고 작게는 아주 작은 창문과 계단의 디테일까지 챙기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렇게 지어진 과거의 건축물은 함부로 훼손하거나 허물어뜨릴 수 없는 힘과 매력을 가지고 있다.

국내에는 근대건축문화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일제 강점기 때의 건물들을 보존하고 관리한다. 이때 주된 관리방식은 “들어가지 마시오”이거나 아주 제한적인 둘러보기 방식을 취한다. 놀랍게도 유럽의 건축물 관리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15세기에 지어진 빌라주택을 시청사로 리모델링해서 약간의 증축을 거쳐 그대로 사용한다. 우리나라로 생각하면 고려 말 건물을 현재의 업무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건축문화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온다. 그들에게 건축은 사용되는 공간이라는 점. 즉, 건축은 계속 사용이 되어야 건강하다는 생각이 우선한다. 문제가 생기면 계속 고치며 사용해 주어야 그 건축이 건강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빈 집과 사는 집은 그 수명이 다르다. 건축과정이 그만큼 튼실한 기초 위에 세워지기에 수천 년이 지난 이탈리아의 콜로세움 원형경기장이 지금도 각종 용도로 이용되고 있다.

프리츠커상을 통해 주목받은 프랑스 보르도의 부아르프레트르 아파트 리모델링은 1960년대에 지어진 집합주거 건축 리모델링 프로젝트였다. 530여 명의 입주민이 퇴거 없이 그대로 삶을 유지하며 헌집을 새집으로 고쳐 놓았다. 아파트 재건축으로 인한 투기나 세입자에 대한 젠트리피케이션도 발생하지 않은 채 살아온 삶을 그대로 건강하게 바꿔 준 것이다. 이는 집에 대한 가치가 경제성보다는 삶과 문화 위에 놓여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세계 역사문화의 중심을 이어 온 건축흐름 속에 동행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김대석 건축출판사 상상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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