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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남성도 불쌍하다고? 여성에겐 흙수저조차 주지 않았다

입력
2021.03.27 04:30
12면

<11>숟가락 이야기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과학을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하미나 작가는 과학사 전공자답게 2030 여성의 건강문제, 덜 눈에 띄는 여성의 산업재해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영화 '미녀와 야수'의 한 장면. 유튜브 캡처

영화 '미녀와 야수'의 한 장면. 유튜브 캡처


'역덕'으로 살다보니 소소한 부분에 관심 갖고 몰두할 때가 많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에서는 ‘손님이 되어 주세요(Be our guest)!’ 노래가 흐르면 포크와 스푼들이 나와서 춤추는 대목을 여러 번 돌려 본다. 손잡이 부분의 장식을 통해 야수의 종교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종교 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들은 기존 가톨릭 교회에서 사용하던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디자인을 거부했다. 금욕적이고 검소한 의식주 문화를 강조하였기에 일상 생활 용품의 모양도 바뀌었다. 스푼의 경우, 손잡이 부분 장식이 제거되어 밋밋해졌다. 영국에서는 청교도 혁명 이후 크롬웰 시대에 사용된 스푼을 ‘청교도 스푼(Puritan spoon)’이라고 부른다. 손잡이 부분에는 장식이 전혀 없고 끝에도 장식용 머리 부분이 달려 있지 않은 수수한 디자인이다.


아무런 장식도 달려있지 않은 청교도 스푼. Antique Silver Spoons

아무런 장식도 달려있지 않은 청교도 스푼. Antique Silver Spoons


청교도 숟가락이 등장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세공사들은 은 숟가락 자루 끝에 과일이나 동물, 여인상, 문장, 가톨릭 성인상을 새겼다. 예수와 12사도의 모습이 장식된 스푼도 있었는데, 이를 ‘사도 스푼(Apostle spoon)’이라고 부른다. 귀족이나 부유한 계급 사람들은 아기의 세례식날에 사도 스푼이나 수호성인의 모습이 새겨진 은 스푼을 선물해 주곤 했다. 아기는 은 스푼으로 떠 먹여 주는 우유와 이유식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서 부모의 재산과 지위를 상속했다. 여기에서 ‘은 스푼을 입에 물고 태어나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his mouth)'라는 관용적 표현이 유래한다.


화려한 모양의 사도 스푼. 위키피디아

화려한 모양의 사도 스푼. 위키피디아


계급과 사회 상징하는 숟가락

그럼 은 스푼의 반대는 뭘까? 나무 숟가락(wooden spoon)이다. 스푼의 어원인 ‘spon’은 나무판자조각을 뜻한다. 조개껍질과 함께 얇은 나무 조각은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스푼이다. 은 스푼은커녕 놋쇠 숟가락조차 가질 수 없는 가난한 이들의 숟가락이 바로 나무 숟가락이었다. 그래서인지 영미권에서는 나무 숟가락을 가장 아래 등급으로 여겨 꼴찌에게 장난삼아 주는 상(booby prize)으로 쓰기도 한다. 우리의 경우로 치면 흙수저에 해당하는 셈이다.

‘은 스푼을 입에 물고 태어나다‘라는 서구의 관용 표현이 우리나라에서 금수저로 바뀐 것은 흥미롭다. 아무리 부자라도 실제로 순금 숟가락을 만들어 식사 때 사용하지는 않는다. 너무 물러서 비실용적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은에서 금으로 바뀌게 된 이유는 귀금속의 대표로서 금이 갖는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스푼 한 개가 숟가락과 젓가락을 합쳐서 수저 한 벌이 된 것은 지극히 한국적이다. 수저는 주로 동양에서 사용한다고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은 대개 젓가락 위주로 식사한다. 숟가락은 서빙되는 음식에 따라 별도로 제공된다. 반면 우리나라는 늘 수저 한 벌을 처음부터 상에 차려놓고 식사 때마다 다 이용한다.


어느 성별에게는 완전한 수저가 주어지지 않았다

전통시대 한국인의 일생은 수저와 함께했다. 첫 돌날에 부모는 아기에게 개인 수저를 마련해 주었다. 서양의 사도 스푼 선물하기와 비슷한 풍습이다. 자라면 좀 더 큰 수저로 바꿔서 쓴다. 그러다 혼인할 때 신부가 혼수로 해온 부부의 식기와 수저를 평생 쓴다. 가족 구성원에게는 각자 자신의 수저 세트가 따로 있다. 한국인에게는 평생 함께하는 반려 수저가 있는 셈이다. 우리의 관용적 표현에서 ‘밥숟가락을 내려놓는다’는 사망한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사실은 죽어서도 수저와 함께한다. 무덤에 부장품으로 수저를 넣어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반만 진실이다. 어느 성별에게는 완전한 수저가 주어지지 않았다.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려면 그 문화권의 에티켓을 익혀야 한다. 그래서 어느 나라나 밥상머리 예절, 식사 도구 사용법을 중요시 여긴다. 젓가락 문화권에서는 어려서부터 젓가락 쓰는 훈련을 받는다. 포크에 비해 젓가락은 상당히 오랜 기간 훈련이 필요한 도구다.

1819년, 중국 광저우에서 최초로 중국 음식을 먹은 미국인의 기록을 보자. “원숭이에게 뜨개바늘을 쥐여줘도 우리 중 몇몇만큼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태어나 처음으로 젓가락을 쥔 자의 당혹감이 느껴진다. 이 표현을 빌려 생각해보면, 우리는 젓가락질을 하지 못하는 원숭이에서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호모 파베르)으로 진화했다. 어른들은 커서도 젓가락질을 제대로 못하면 가정교육을 못 받았다는 말을 듣는다며 아이들을 야단치곤 하셨다. 식사 도구를 제대로 써야 그 식탁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뒤집어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어떤 사람에게 식사 도구를 제대로 안 주거나, 사용법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 사람을 식탁의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닐까?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점심'. 국립중앙박물관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점심'. 국립중앙박물관


젓가락을 못 쓰는 할머니들이 많은 이유

나의 친할머니는 지역에서 행세하는 양반집 따님이셨다. 강진사댁하면 다 알아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강진사는 딸들에게는 젓가락을 주지 않았다. 딸들에게 젓가락 쓰는 법을 가르치면 시집가서 구박받는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할머니는 평생 숟가락만으로 밥과 국과 반찬을 떠 드셨다. 어느 날 생각이 나서 페이스북에 이 에피소드를 써 봤다. 놀랐다. 자신의 할머니도 젓가락을 못 쓰셨다는 댓글이 많이 달려서.

젓가락을 쓸 줄 몰라서 식사 때면 숟가락 뒤축으로 나물을 집어 올리셨다던가, 젓가락질을 친정에서 배워 시집갔는데 시어머니에게 여자가 건방지게 김치를 손으로 찢지 않고 젓가락으로 찢는다고 야단맞았다던가. 팔만대장경이 펼쳐졌다. 알고 보니 젓가락을 못 쓰는 여성들의 사연은 흔했다. 단지 증언을 취합할 기회가 없었을 뿐. 이는 특별히 보수적인 지역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대략 1920년 이전에 태어난 여성들의 경우, 젓가락을 못 쓰게 하고 젓가락을 주지 않는 것은 글을 안 가르치는 것만큼이나 흔하게 당한 성차별이었다.

왜 여자는 젓가락을 못 쓰게 할까? 왜 숟가락만 허락할까? 영장류 학자인 제인 구달 박사는 침팬지들이 풀잎을 숟가락처럼 이용해서 흰개미를 쓸어 먹는 것을 목격했다. 이는 숟가락이 가장 사용하기 쉽고 기본적인 식사도구라는 증거다. 숟가락은 일종의 컵이자 삽의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숟가락은 주어진 음식을 떠서 먹을 수는 있지만 섬세한 선택을 할 수는 없다. 이게 옛날에 딸들에게는 숟가락만 준 이유다. 여자는 함지박에 남은 밥과 반찬을 쏟아넣고 숟가락 삽으로 급히 퍼 먹고 다시 일하는 존재이므로, 어려서부터 그 위치에 맞게 키운 것이다. 호모 파베르, 도구를 써야 인간인데 여자는 남자와 같은 인간이 아니므로 도구를 주지 않은 것이다. 남성들과 한자리 같은 상에 마주 앉아 원하는 음식을 집어 먹을 권리를 주장할까봐 아예 여성들에게는 젓가락 사용법을 가르치지도 않은 것이다.

지금은 그런 집이 없는데 왜 옛날 이야기를 꺼내어 남녀 갈등을 조장하냐는 말을 들을 수 있겠다. 그러나 21세기도 마찬가지다. 결혼한 후 시댁에서 밥 먹다가 서러운 일 겪은 여성분들이 여전히 얼마나 많은가. 웹툰 '며느라기'의 명절 장면에 여성들이 분개하고 공감한 이유다. 심지어 명절이면 남자들만 제대로 된 상에 앉아 먹고 여자들은 큰 대접에 국밥을 말아 숟가락만 꽂아 방바닥에 놓아주는 집들도 아직 있다. 옛날처럼 음식이 귀해서 식탁에 끼어들지 못하게 하려는 것도 아닌데, 여전히 여자에게 젓가락을 쓸 기회를 주지 않는 이유는 오직 여성에게 자신의 신분을 알게 해주려는 데에 있다.


웹툰 '며느라기'의 한 장면. 페이스북 캡처

웹툰 '며느라기'의 한 장면. 페이스북 캡처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사건이 폭로되고 전개되는 과정을 보았다. 멋진 젓가락 사용법에 감탄했다. 그동안 할머니 세대와 달리 여성들도 가정에서 학교에서 젓가락 쓰는 법을 단련했건만 사회에 나오면 젓가락을 쓸 자리가, 식탁이 주어지지 않았다. 이제 여성들은 조용히 함지박에 몽당 숟가락을 꽂아서 부뚜막으로 가지 않는다. 중국 무협 영화에서처럼 젓가락을 던져 단단한 벽에 꽂아 항의한다.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곧 무너질 날이 올 것이다. 그러니 기존의 식탁을 엎고 새로운 테이블을 세팅해 보자.

여성이나 성 소수자분들 이슈가 나올 때마다 흙수저 남성들의 설움을 외치는 분들은 기억하시길. 같은 수저 계급 내에서도 젓가락은 받지 못하는 성별이 늘 있다는 것을. 모두 젠더살롱에 초대합니다. 평등한 원탁의 ‘손님이 되어 주세요(Be our guest)!’


박신영 작가

박신영 작가



박신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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