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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우리’ ‘그들’이 함께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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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생존서사 담은 미나리 주목했지만
한국계 여성 살해되는 복잡한 미 현실
다르지만 함께 하는 공존법 배워야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된 후 처음으로 영화관에 갔다. ‘미나리’를 보기 위해서다. 평일 저녁이지만 외국 영화제에서의 선전으로 관객이 좀 있지 않을까 싶었으나 시작을 알리는 불이 들어올 때까지 관객은 혼자였다. 상영 중 들어온 관객을 모두 포함해도 10명이 되지 않았다.
‘미나리’는 미국 이주 한인의 좌절 또는 성공 서사만은 아니었다. ‘가장’으로서 ‘자식들에게 아버지가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집념을 버리지 못한 남성과, 자식들의 교육과 건강 걱정에 늘 싸우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아내, 병약한 손주를 돌보기 위해 머나먼 타국의 트레일러 집 속에서 좌충우돌하는 할머니, 모범생 딸과 개구쟁이 아들이 가장 부유한 나라 미국의 깡 시골 벌판에서 벌이는 생존의 서사다. 영화 속에서 ‘미나리’는 ‘어디서나 잘 자라고 어느 음식에나 잘 어울리는’ 자신만의 향기를 가진 식물이다. 마치 미국에 이주한 한국인의 처지와 같다.
물이 부족해 비싼 수도료를 내면서 농사를 짓는 아버지와는 달리 깊은 숲 속 물가에 할머니가 뿌린 미나리 씨앗은 덤불을 이룬다. 숲 속에는 뱀이 많아 접근이 금지됐지만, 할머니는 뱀은 건드리지 않으면 사람을 물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아버지의 농사를 돕는 가난한 주민은 마을 사람들의 무시를 받는 존재지만, 어머니는 그와 친해져 간다. 아들은 이웃 소년과 친구가 되어 불량한 놀이를 하고 그 가족의 불성실한 모습도 지켜본다. 한국인은 머리를 쓰는 사람들이라며 주민들의 이해하기 어려운 풍습을 믿지 않던 아버지 역시 그들의 풍습을 따른다. 주위의 사람들과 환경을 받아들이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습득하는 것이다.
애틀랜타 일대 마사지숍에서 총격 사건이 일어났고 8명이 살해됐다. 이 중 4명은 한국계 미국인이거나 한국인이고 모두 여성이다. 범인은 성 중독으로 인한 분노라고 동기를 밝혔다고 전해지지만, 언론에서는 인종차별 범죄이자 여성혐오 범죄라고 해석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애도를 표하고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보호를 다짐했다. CNN은 최근 미국에서 아시아계에 대한 폭력이 증가하며 매우 심각한 수준임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거리에서는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범죄에 반대하는 시위가 진행 중이다.
한편에서는 한국계 미국인 감독의 영화가 주목받고, 다른 한편에서는 한국계 여성들이 살해되고 있다. 영화는 미국에서 미국자본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외국영화’로 분류되고 살인범은 자신의 행위를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백악관에서는 인종차별에 대한 경고가 쏟아져 나오고 언론은 아시아계 대상 혐오범죄의 심각성을 폭로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인종차별’이나 ‘차별금지’ 중 어느 하나로만 설명될 수 없는 복잡한 이해관계와 관념, 충동과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이런 어지러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다시 ‘미나리’로 돌아와 보면, ‘우리’와 ‘그들’의 이분법을 넘어서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질문에 다다르게 된다. 피부색과 성별, 연령, 계급과 계층, 국적, 종교, 정치적 성향, 성 정체성, 출신지역 등 인간이 지닌 수많은 차이에 의해 ‘우리’와 ‘그들’이 구분되고, ‘우리’는 ‘그들’을 거부하거나, 무시하거나, 미워한다. 이런 혐오의 이분법은 사회적인 것이다. 영화에서 비춰진 레이건 시대, 몇 달 전까지 겪었던 트럼프 시대가 혐오를 부추겨 왔다. 한국사회 역시 다르지 않다. 선거를 앞두고 혐오의 이분법은 극성을 부리고 사람들의 마음은 더 신산해진다. ‘우리’와 ‘그들’은 다르지만, 함께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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