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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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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집은 모두의 안식처여야 한다. 그러나 어떤 여성이나 아이에겐 가장 끔찍하고 두려운 장소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에 따르면 가정 폭력이나 데이트 폭력에 희생되는 전 세계 여성은 연간 5만 명에 달한다. 10분에 한 명꼴로, 살릴 수 있었던 생명이 사라지고 있다. 이처럼 전통 문화 종교 등을 이유로 자행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퇴치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이 첫 가시적 성과로 이어진 게 이스탄불 협약(Istanbul Convention)이다. 2011년 유럽평의회는 당시 의장국이었던 터키의 수도에 모여, 여성을 향한 폭력과 가정 폭력을 방지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며 가해자를 기소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논의했다. 국가의 의무를 강제한 협약은 총 45개국이 서명하며 2014년 발효됐다.
□ 이스탄불 협약이 탄생한 곳이자 첫 비준국인 터키가 최근 탈퇴를 선언해 충격을 주고 있다. 장기집권 중인 대통령과 보수 집권당은 협약이 이혼을 부추기고 이슬람주의와 전통적인 가족 단위를 해체한다고 주장한다. 터키 곳곳에선 이에 반대하는 보라색 시위가 격렬하게 이어지고 있다. 유럽평의회도 터키의 탈퇴는 폭력으로부터 여성을 지키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크게 퇴보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여성이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이런 여성들의 삶을 더욱 위태롭게 하는, 여성에게 더 차별적인 재난이다. 수많은 여성이 격리와 봉쇄로 더 심해진 가정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그림자 팬데믹’이다. 일부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에선 경제난이 심해지고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조혼이 급증하고 있다. 한 세대의 여성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 최근 한인 여성 4명이 숨진 애틀랜타 참사도 여성에 대한 폭력이었다. 희생자 8명 중 7명이 여성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지난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목숨을 잃은 여성은, 보도된 것만 97명에 달한다. 페미사이드 범죄다. 역사는 늘 진보만 하는 게 아니다. 침묵하면 여지없이 뒤로 간다. 이스탄불 협약의 정신과 실천은 한국에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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