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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왜 그 로봇을 선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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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장기화된 요즘, 삶의 모습은 참 많이도 바뀌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영화를 접하는 방식일 텐데요. 극장이 텅 비어버린 지금, 많은 분들이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통해 집안에서 영화를 보는 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도 그렇고요. 극장에서는 접할 수 없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과 창작자들을 접하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너무 대형 유통사의 배급에 익숙해져, 보여주는 것만 보고 산 것은 아닌가?'라고요. 그래서 최근에 새로운 취미가 생겼는데요. 아직 세간에 드러나지 않은 청년 영화인들의 첫 작품을 시청하고 '좋아요'를 눌러주는 것입니다. 유튜브 조회수 1,000이 채 안 되는 영상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안에 담긴 열정과 메시지는 수치로 환산할 수 없이 뜨거운 경우들이 많거든요.
그렇게 유튜브의 파도를 너울너울 타넘던 중, 제 눈을 끌어당긴 작품이 있었습니다. '반_려_봇'이라는 작품인데요. 12분이 안 되는 짧은 시간, 영화는 인간형 반려봇이 일상이 된 미래를 다룹니다. 작품 속에는 총 세 종의 반려봇이 등장하는데요. 주인공과 소통인 듯 아닌 듯한 대화들을 이어나가지요.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수양딸 봇과의 대화입니다. 엄마가 수양딸로 삼은 로봇인데요, 자취하는 친딸(주인공)에게 반찬도 가져다주고, 말벗도 하고 오라고 심부름을 보낸 겁니다. 하필이면 주인공이 남자친구에게 일방적 이별 통보를 당한 날 말이지요. 슬픔에 잠긴 주인공은 그녀와의 대화로나마 잠시 위안을 얻어보려 합니다. 휴지를 가져다주고, 주인공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반려봇. 그러나 결국 둘의 대화는 평행선을 달리고 맙니다. 감정의 풍파가 몰아치는 실연의 밤에, 수양딸 봇은 그야말로 가장 도움 안 되는 위로인, '공감은 안 해주고 (뼈아프게) 맞는 말만 하는 사람'의 전형을 보여주거든요.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겉도는 대화. 인간을 헤아리지 못하는 로봇. 결국 작품은 다른 존재와의 소통을 시도하던 인간이 어떻게 점점 포기하고, 이내 혼자만의 성벽 안으로 숨어드는지를 은유적으로 그려냅니다. 마침내 엔딩에 이르러 그녀의 고독한 삶에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여겨지는 반려봇을 골라냅니다.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내 감정을 다 헤아려주는 로봇? 더욱 완벽하게 인간 같아 보이는 로봇? 아닙니다. '아무 말도 안 하고 그저 곁에 있는 로봇'을 선택하지요. 작품을 보고난 뒤, 문득 우울증을 겪던 시절의 제 자신과, 상담을 통해서 만나는 고립 청년들과의 대화를 떠올렸습니다. 거듭되는 실패와 상처에 지쳐 방 안으로 숨어든 청년들을 상담할 때면, "아무도 없는 섬에 가서, AI랑 사는 게 차라리 행복할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요. 상담을 하는 저 역시도 우울증을 겪던 시절엔, 영화 속 주인공처럼 반려봇이 얼른 개발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런 미래가 온다면 아무리 고액이라도 꼭 구입할 거라는 다짐을 하면서요. 나를 평가하지도, 질책하지도 않은 채 오롯이 곁을 지켜주는 존재가 절실했기 때문이지요. 그것이 인간이 아닌 로봇일지언정 말입니다. 어쩌면 영화에서는, 결국 그런 지점들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타인과의 소통에 지쳐, 스스로를 고립시킨 사람에게 차라리 필요한 것은 '나를 판단하지도, 지적하지도 않은 채 곁에 있는 존재'라는 메시지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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