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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의 자가격리 신풍경… 악기별 난이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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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현 클래식 평론가가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활동합니다. 경기아트센터에서 근무 중인 그는 공연계 최전선에서 심층 클래식 뉴스를 전할 예정입니다. 오페라에서 가수가 대사를 노래하듯 풀어내는 '레치타티보'처럼, 율동감 넘치는 기사가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여전히 국경을 넘나들기 힘든 시기지만 공연장에서 관객을 만나려는 예술가의 열망은 더욱 불타오른다. 해외 연주자의 경우 2주간 자가격리를 감수하면서 국내 무대에 오른다.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한국의 공연장은 연주자와 관객이 소통하는 공간으로서 희소성이 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예술가 대부분은 단기비자를 통해 방문하고 있다. 단기 방문의 경우 국가가 지정한 시설에서 2주간 격리해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 자가격리가 수월한 악기도 있지만, 이동과 격리가 어려운 악기도 존재한다.
우선 지휘자들은 특별한 악기가 필요 없다. 지휘봉만 있으면 된다. 25일 KBS교향악단과 공연을 위해 입국한 지휘자 사샤 괴첼은 머릿속으로 곡을 연구하고,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고민하며 2주를 보냈다. 오케스트라 측은 지휘자 손님이 외로운 자가격리 생활을 잘 견뎌낼 수 있도록 특별한 꾸러미를 전달하기도 했다. 박스 안에는 라면과 컵수프, 통조림 등 간편식품들뿐만 아니라 멀티포트와 캡슐커피머신, 토스터기 등 소형 가전제품도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샤 괴첼은 다음달 통영국제음악제 무대에도 오른다.
외국인등록증이 있는 외국인은 자가격리가 비교적 수월해진다. 이달 공연을 위해 최근 입국한 마시모 자네티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가 대표 사례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자가격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요리를 좋아하는 자네티 지휘자는 외부에서 식재료를 공급받아 스스로 끼니를 해결하기도 했다. 단원과의 소통은 온라인 메신저를 활용했다. 자네티 지휘자는 다음달 17일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무대에도 오른다.
지휘자와는 달리 악기 연주자들은 자가격리 난도가 올라간다. 악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상의 연주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시간 연습이 필요하다. 완전한 방음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격리시설은 소음 문제 때문에 연습이 녹록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
바이올린은 크기가 작고 휴대가 용이해 자가격리에 나쁘지 않은 악기다. 지휘자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크리스토퍼 포펜은 지난해 롯데문화재단에서 기획한 여름 음악축제 '클래식 레볼루션'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격리시설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그는 바이올린에 소리를 줄이는 약음기를 끼고 연습을 했다. 좁은 공간이긴 해도 운동과 독서를 하며 외로운 시간을 버텼다. 2주간 차가운 도시락을 먹어야 하는 것이 고역이었지만, 무대 위에서 만날 관객들을 생각하며 참아냈다고 한다. 그는 이 2주를 "영적인 훈련기간"이라고 회상했다.
덩치가 조금 더 큰 첼로도 휴대가 가능하다. 첼리스트 이상 엔더스는 최근 국내 공연을 위해 자가격리를 끝마쳤다. 그 역시 국가가 지정한 시설에서 격리 생활을 했다. 바이올린처럼 첼로도 방에서 꾸준히 연습이 가능한 악기다. 평소처럼 요가와 필라테스로 아침운동을 하고 독서를 하며 지루함을 극복한 것으로 전해진다.
난감한 사람은 피아니스트다. 단일 연주자가 다루는 악기 중 가장 큰 편에 속하는 피아노는 연주자가 들고 다닐 수 없다. 이 경우 국내에 와서 피아노를 대여해야 하는데 국가가 정한 시설에 피아노를 가져다 두기란 쉽지 않다. 연주자는 악기 없이 공연을 준비할 수 없고, 심리적으로도 위축된다. 이 때문에 31일 서울 신천동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오르기로 했었던 피아니스트 얀 리시에츠키의 리사이틀이 취소됐다. 현재 세계 각국에선 '백신 여권' 도입 등 국가 간 이동에서 격리를 면제하는 방법들이 논의되고 있다. 구체적인 면제 조건이 자리 잡기 전까지 외국인 피아니스트가 내한 공연을 열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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