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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무신경한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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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간신히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다. 닫힘 버튼을 얼마나 다급하게 눌렀던지 손가락이 아렸다. 아슬아슬하게 닫힌 문 너머에서 성난 군중 소리가 웅웅 울렸다. “회개하라.” “심판이 두렵지도 않냐.” 이해할 수 있는 말은 차라리 나았다. 건물을 가득 채운 소리는 보통 방언기도라 이르는 말이 아닌 말이었다.
몇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장면. 함께 승강기에 올라탄 이들은 오래전 커밍아웃한 한 저명인사, 그를 초빙해 ‘동성애 신자로 산다는 것’ 강연을 경청하던 목회자들, 청중으로 온 신자였다. 한 개신교 단체가 행사를 마련한 터였다. 이를 기획한 목사님은 말했다. “대체 왜 한국 개신교는 이토록 동성애ㆍ양성애를 혐오하지 못해 안달인가. 과연 이게 한국 교회가 이렇게 열심히 싸워야 할 최우선 악인가. 이게 싫어 교회를 겉도는 교인은 누가 돌보나. 반성하자는 거죠.”
시작도 전에 아수라가 됐다. 항의 군중이 몰려왔다. 안전을 이유로 주최측이 조용히 장소를 바꿨고, 비공개 강연을 했다. 30~40분이 흘렀을까. 밖이 웅성거렸다. 실랑이 끝에 문이 열리는 듯하더니 “주여”를 외치는 이들이 방을 채웠다. 고함소리가 건물을 압도했다. 그렇게 항의에 떠밀리듯 방을 나와 엘리베이터에 탔다.
1층에서 문 밖으로 내려 설 일은 막막했지만 다행히 문 밖엔 경찰도 꽤 대기 중이었다. 거센 항의 소리를 뚫고 흩어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며, 할 수 있는 건 생각하는 일뿐이었다. “목소리조차 용납할 수 없다는 사람들의 거센 집단 항의, 이게 정부가 법으로 금지해야 할 혐오이자 폭력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강연에서 풀어낸 그의 진심이 세상에 알려지길 바랐지만, 그렇게 쓴 기사는 일부 교인을 무척 화나게 했다. 반동성애 운동의 핵심은 공세가 당사자들만 향하지 않는 데 있다.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언론인, 학자, 정치인 등을 발견하면 며칠이고 집요하게 따진다. “지금 제정신이냐?”로 시작하는 전화를 몇 통이나 받았을까.
비슷한 장면을 이번 보궐선거에서 다시 본다. 일각은 꾸준히 후보들에게 “그래서 퀴어 축제는?” 같은 질문을 건넨다. 누구는 혐오에 동조해 “퀴어 특구” 같은 아무 말을 하고, 누구는 표 계산기를 두드리며 “공감대가 먼저” 같은 말을 한다. 한참 고개를 내젓다가 첫 질문으로 돌아가본다. “동성애는 과연 한국 교회가 싸워야 할 최우선 악인가”, “왜 시장 후보들이 감히 퀴어축제 찬반을 논하나.”
교황청은 2020년 10월 동성 커플 법적 보호의 필요성을 논했다. 한국 보수 개신교회는 대부분 미국식 교회 모델을 취하는데, 정작 미국에선 동성 결혼이 합법이다. 성서가 남성끼리의 동침을 금한다는데, 성서는 이혼, 투기, 재물을 섬기는 것도 금한다. 그런데 어떤 교회도 부동산 투기꾼을 쫓아다니며 “마귀”라고 외치는데 이처럼 최선을 다하진 않는다. 판단은 다르겠지만, 내부의 혹자는 “위기의 한국 교회가 외부 희생양을 찾아 집착 중”이라고까지 했다.
표 계산이 아니라면, 이게 정치권이 이토록 오래 휘둘려야 할 온당한 목소리일까. 마음만 먹으면 어떤 법이든 밀어붙여온 집권여당은 차별금지법이 화제가 될까 눈치만 살핀다. 이 무신경함에 지쳐 뒤척이고 또 뒤척인다. 개인적으로 가장 간절히 누리고 싶은 것은 더 이상 정치인들이 감히 “동성애 찬반” 같은 아무 말을 하는 모습을 보지 않을 권리다. 그런 말을 했다간 오히려 정치판에서 쫓겨나고 마는 미래다. 내게 필요한 정치란 그런 미래를 만드는 노력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 예방 핫라인(1577-0199), 희망의 전화(129), 생명의 전화(1588-9191), 청소년 전화(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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