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디 존슨의 '진짜 데드볼'

입력
2021.03.24 04:30
26면
구독

3.24 'Bird Killer' 랜디 존슨

'버드 킬러'라는 달갑잖은 별명을 얻은 메이저리그 현역 시절의 투수 랜디 존슨. flicker 사진

'버드 킬러'라는 달갑잖은 별명을 얻은 메이저리그 현역 시절의 투수 랜디 존슨. flicker 사진


미국 메이저리그 투수 랜디 존슨(Randall D. "Randy" Johnson, 1963~)은 현역 시절의 굵직한 기록만 나열해도 한바닥을 채울 만한 걸출한 스타다. 신장 208㎝의 좌완투수였던 그는 시속 160㎞가 넘나드는 직구와 웬만한 투수의 직구와 맞먹는 속도의 슬라이더로 만 21년간(1989~2010) 사이영상 5회, 탈삼진왕 9회, 올스타 10회 및 2001 월드시리즈 MVP를 차지했고, 만 40세이던 2004년 5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에서 최고령 퍼펙트 게임 기록을 달성했다. 통산 전적은 4,135이닝 303승 166패. 평균 자책점 3.29였다.

찬란한 이력에 고명처럼 얹히는 일화가 있다. 그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의 주전으로 활약하던 2001년 3월 24일, 홈구장 투손의 일렉트릭파크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시범경기에서 비둘기를 죽인 일이다. 그가 7회 타석에 선 자이언츠의 캘빈 머리(Calvin Murray)를 향해 공을 던진 순간 비둘기(mourning dove) 한 마리가 마운드와 포수석 사이를 우측에서 쏜살같이 날아들다 공에 맞은 거였다. 시속 153㎞ 강속구에 비운의 비둘기는 연기처럼 분해됐고, 그 장면이 팀 비디오매니저가 촬영한 영상에 포착됐다.

야구 규정에도 없는 전대미문의 사태에 심판은 'No Pitch' 즉 무효투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충격 탓인지 존슨은 타자 두 명에게 잇달아 2루타를 허용하며 7회 2실점했다. 경기 결과는 10대 6으로 다이아몬드 백스의 승리였다.

강속구 투수의 '사고'에 미국 스포츠 매체들은 신이 나서 진정한 '데드볼(dead ball)이 연출됐다' '파울(fowl, 가금류) ball'의 새로운 규정이 탄생했다'며 호들갑을 떨었고, 동물보호단체들은 성명 등을 통해 애먼 존슨을 성토했다. 자칭 동물보호주의자라는 존슨은 은퇴 후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자신의 웹사이트 로고에 숨진 비둘기를 그려 넣었다.

최윤필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