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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기강문란, 문재인 정권이 키웠다

입력
2021.03.22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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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늘리기로 공공기관 경영평가 등
정부ㆍ공공기관에 ‘닥치고 코드’ 강요
책임ㆍ자율 실종에 공직기강 해이 확산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6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LH 임직원 땅투기 의혹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근본적 개혁 방침을 밝혔다. 왕태석 선임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6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LH 임직원 땅투기 의혹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근본적 개혁 방침을 밝혔다. 왕태석 선임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기관 개혁을 거론했다. LH 임직원들의 3기 신도시 땅투기 의혹이 불거진 지 2주 만에 처음으로 국민에게 사과하면서 꺼낸 얘기다. 문 대통령은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우리 정부는 부정부패와 불공정을 혁파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고자 최선을 다했다”면서 “하지만 LH 부동산 투기 의혹 사건을 보면 아직 멀었으며, 이번 사건을 공공기관 전체에 대한 근본적 개혁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요컨대 현 정부는 부정부패와 불공정을 혁파하려고 노력했지만, LH 사건을 보면 아직 과거의 부패관행이 남아있다. 따라서 차제에 근본적인 공공기관 개혁에 나서겠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은 개혁방향도 밝혔다. “공직윤리를 확립하는 게 출발점”이며, “이해충돌을 방지하는 장치를 마련하고 직무윤리규정을 강화해야 하며, 강력한 내부통제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공공기관 개혁론은 적잖이 당혹스럽다. 집권 초부터 다잡았어도 쉽지 않았을 개혁과제를 정권 말기에 거론하고 나선 타이밍의 문제 때문만이 아니다. 돌아보면 현 정부는 출범 초 공공기관 전반의 쇄신 기회를 살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스스로 무산시킨 채 되레 도덕적 해이를 키운 책임이 스스로에게 있음을 까맣게 잊은 듯한 ‘유체이탈’ 화법에 어리둥절하다는 얘기다.

사실 박근혜 정부는 공공기관 개혁을 야심 차게 추진했다. 박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부터 “공공기관 방만경영과 예산낭비는 고질적 문제”라며 전의를 불태웠다. 공공기관 노조들은 항전에 나섰고, 양대 노총과 연대해 격렬히 저항했다. 그래도 문어발 경영과 철밥통 복지를 혁파하고 기강을 다잡겠다는 개혁작업은 꾸준히 이어져 2015년 5월엔 마침내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 기능조정안’까지 내기에 이르렀다. 당시 안에는 LH의 공공주택지구나 신도시개발 기능을 구조조정하는 걸로 돼 있었다.

하지만 2017년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양대 노총이 적극 지원했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공공기관 정책은 뜻밖의 방향으로 급선회한다. 개혁은 흔적도 없이 소멸됐고, 공공기관은 새 정부의 공공일자리 확대정책 코드에 맞춰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고용을 늘리는 게 경영의 최우선 목표가 됐다. 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인천공항공사부터 찾아 공사 비정규직 1만 명의 정규직화를 약속한 건 시작이었다.

그해 7월 ‘좋은 일자리 창출 및 질 개선 노력’에 경영평가 가점 10점을 추가로 부여하도록 ‘공공기관 경영평가 편람’을 서둘러 수정한 건 공공기관들로선 박근혜 정부 타도 투쟁에서 결국 노조가 승리한 현실을 확인해준 것이었다. 그리고 필요하든 않든, 직원수만 늘리면 더 이상 공연한 ‘군기 잡기’는 없을 것이라는 정권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현 정부의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정책은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걸 차치하고라도 현 정권이 공공기관에 일자리 제공 부담을 넘기는 대신, 공공기관 쇄신정책을 스스로 포기한 게 지금 LH 임직원 투기를 비롯해 공공기관 전반의 기강해이를 키운 실책이 됐다는 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기강해이가 비단 공공기관만의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방통행식 ‘코드정책’의 홍수 속에서 책임과 소신, 자율성을 잃고 무력감에 빠진 정부 부처, 보여주기식 다주택자 색출에 반발해 청와대 수석비서관까지 사표를 내던지는 블랙코미디,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검찰 풍경 등 지금 공직사회 전반에 번진 기강해이는 가히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정도다. 문 대통령은 ‘개혁’에 나서더라도, 먼저 이 기막힌 현실의 전후부터 냉철하게 돌아봐야 할 것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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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철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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