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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의 비련, 김호중의 비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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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련’의 첫 4음절 ‘기도하는’은 한 시대의 문화적 상징이다. 조용필이 이 4음절을 격정적으로 토해내면 객석에선 기다렸다는 듯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 비명은 ‘오빠 부대’라 명명한, 아이돌 팬덤의 첫 출현을 알리는 거대한 신호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4음절엔 역사성까지 녹아 있다.
그러므로 이 곡에 도전하는 가수는 첫 소절부터 원곡의 아우라에 눌리기 십상이다. 노래 좀 한다는 가수들의 수많은 커버 버전을 찾아서 들어보라. 모두가 조용필의 저 강력한 4음절 해석에서 한발도 벗어나지 못한 채 ‘아류의 비애’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 유일한 사람, 김호중만이 그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나 있다.
김호중이 TV 경연에서 ‘비련’을 부른 라이브 영상은 탄성을 자아낸다. 그는 모두의 예상을 비웃듯 ‘기도하는’ 4음절을 여리게 잡아 끌며 원곡과 180도 다른 해석을 한다. 그리고 성악으로 훈련된 매혹적 목소리로, 감정의 진폭이 큰 이 노래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지배한다. 잔잔하게 시작한 노래는 마지막을 오페라의 피날레처럼 장쾌한 포효로 장식한다. 비로소 ‘비련’이 전설의 장막 뒤에서 나와, 김호중의 것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생각해보라. 김호중의 예술적 결기가 거장 조용필의 영혼에 당당하게 맞서고 있는 모습을. 이를 일종의 음악적 사건이라 해도 좋겠다.
그리고 그는 완벽하게 자기 몰입을 한다. 노래하는 5분여 동안 어떤 분열의 틈도 느껴지지 않는, 아름다운 몰아의 경지를 보여준다. 객석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오로지 노래에만 경의를 바치는 것, 그것이 무대의 품위다. 관객은 그 몰입을 지켜보며, 가수가 이끄는 미학적 세계로 고양된다. ‘행사용 자의식’이 넘치는 성인 가요 신에서 드문 미덕이다. 김호중은 ‘미스터 트롯’이 발굴한 스타지만, 그 쇼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있는 특별한 뮤지션이다. 클래식의 기품이 몸이 배어 어떤 노래를 하든지 의젓한 감동을 준다.
또 한 명의 전설 배호도 원래는 스탠더드 팝과 재즈를 노래하던 가수였다. 그런 그가 트로트에 기품을 불어넣자 배호만의 장르가 만들어졌고, 가요사의 불멸이 됐다. 김호중도 성인 가요가 얼마든지 기품과 예술성을 갖출 수 있음을 보여준 뮤지션이다. 그런 그가 어설픈 몸동작으로 퇴행적 기미가 있는 노래를 과장되게 부를 땐 안쓰러웠다.
김호중은 강력한 팬덤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발표한 음반 2장의 누적 판매량이 100만장을 넘어섰다. 솔로 아티스트 중 최고 기록이다. 시대가 우아한 성인 가요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나는 지난해 이 지면에서 한국 성인 가요의 퇴행성을 비판하며 이렇게 썼다. “좋은 노래 한 구절이 가슴에 오래 머물 때, 수용자 내면의 태도가 바뀌고 삶이 고양된다. 그만큼 삶의 이야기가 근사해진다. 반대로 저급한 노래에 삶이 포위될 때, 삶의 감각 역시 볼품없이 쪼그라든다.”
대중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김호중은 이제 그들 삶의 이야기를 근사하게 채울 책임이 있다. 앞으로 그가 가는 길이 타성과 상투성에서 벗어난 새로운 성인 가요의 길이길 바란다. 그가 한 방송에서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말한 최백호가 가는 길처럼. 최백호는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멋진 어른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김호중이 뚜벅 걸음으로 그 낯선 길을 향해 갈 때, 그를 따라다니는 잡음들도 자연스레 잦아들 것이다. 그의 먼 미래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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