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시민 40여 명이 학살된 4일 '검은 수요일' 저녁. 양곤 도심 모처에 요란한 음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불빛 아래 흥겹게 춤추는 이들은 다름 아닌 몇 시간 전 실탄을 발사한 진압 군경이었다.
13일 오후에는 흘라잉타야 고가도로에서 군경이 내기를 걸고 있었다. 온라인 게임을 하듯 자전거를 타고 도주하는 시위대를 누가 많이 쏴 맞히는지가 승리 요건이었다. 18일 만달레이에선 대오에서 이탈한 군인이 히죽거리며 연습 사격하듯 민간인을 쏘는 모습도 포착됐다. 꽃가게로 몸을 숨기던 시민은 머리에 실탄을 맞고 주저앉았다.
"이게 2021년에 벌어질 수 있는 일인가." 매일 현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사진과 영상을 눈으로 확인하지만 유혈이 낭자한 광기의 잔상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경악과 충격은 외신이 전하는 유엔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의 우유부단함을 재차 확인한 뒤에야 잦아든다. 군부의 우방인 중국의 태도, 내정불간섭 원칙. 국제정치학 개론서에 적힌 '국제기구 무용론'의 실제 사례가 미얀마 현실임을 슬프게 알려준다.
유엔이 딱히 바뀔 것이란 기대는 들지 않는다. 급한 대로 국지적인 반(反)군부 국가연합을 고민해야 할 이유다. 군부 제재에 적극적인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미얀마 경제에 지분이 많은 싱가포르ㆍ태국ㆍ일본 등이 모여 군부 압박책을 구체화하는 방식. 이 접근법이 실질적인 해결책으로 보인다.
한국도 함께 나서야 한다. 군부와 맺은 '가스수익공유협정' 등을 파기해 연합체와 함께 군정 운영금으로 쓰일 달러를 하루속히 차단해야 한다. 장기전이 군부가 바라는 시나리오인 점을 고려하면, 관건은 결단과 빠른 실행일 것이다. 광기를 거부한 군경 600여 명이 이탈 중인 지금이 적기라는 얘기다.
"판단 없이 살인만 하는 군인들만 있으면 전쟁에 패배하진 않아." 1979년 개봉한 영화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 스크린 속 커츠 대령은 나즈막이 되뇌었다. 42년 전 그의 대사가 미얀마에서 증명되지 않도록, 더 늦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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