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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요리하면 달리는 식당이 배달한다… 김봉진도 '통큰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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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K팝과 더불어 전 세계에서 각광받는 것이 한식, 즉 K푸드다. 우리의 대중가요, 드라마, 영화 덕에 한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덕분이다.
다만 K푸드에서도 ‘맥도널드’나 ‘스타벅스’처럼 세계적 상표(브랜드)가 나오려면 넘어야 할 커다란 산이 두 가지 있다. 바로 맛의 일관성과 비용 문제다. 같은 브랜드라면 매장마다 맛이 일정해야 하는데 한식은 요리사의 손맛을 많이 타서 매장마다 맛이 다를 수 있다. 또 반찬을 만들고 음식을 나르려면 요리사와 보조원 등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외식업체들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한식 브랜드가 해외에서 자리잡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입을 모은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신생기업(스타트업) 신스타프리젠츠를 창업한 신기철(38) 대표가 들고 나온 카드는 바로 로봇이다. 자체 개발한 로봇 요리사로 맛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비용 문제를 해결해 K푸드에서도 세계적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다. 이 업체가 로봇 요리사를 알리기 위해 운영하는 서울 압구정동의 한식당 ‘공돌이 부엌’에서 신 대표를 만나 계획을 들어봤다.
지난해 8월 문을 연 30평 규모의 ‘공돌이 부엌’은 다른 식당과 달리 풍경이 독특하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주방에 설치된 3대의 로봇 요리사를 볼 수 있다. 그런데 로봇의 모양이 예상과 다르다.
이곳에 설치된 ‘주방 자동화 로봇’은 커다란 압력 밥솥처럼 생겼다. 만화영화 ‘형사 가제트’처럼 로봇이 기계 팔을 움직여 조리도구로 음식 만드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여지없이 기대가 깨졌다. 하지만 신 대표에게 이유를 들어보니 사람이든 로봇이든 생김새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로봇 팔은 만능이 아니에요. 팔 달린 로봇은 공간 제약이 많아 좁은 주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요. 설치 환경에 따라 위험할 수도 있죠.”
요리 로봇이 일하는 모습을 보려고 신 대표를 따라 주방에 들어갔다. 여기 설치된 로봇은 지난해 8월 개발된 ‘오토 웍’이라는 볶음 전문 요리사다. 볶음 로봇을 먼저 개발한 것은 제일 많은 요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토 웍에는 30년 경력의 한식 전문 요리사 김주영씨가 개발한 제육볶음, 닭갈비, 오징어덮밥, 닭곰탕 등 12가지 볶음 요리 조리법이 저장돼 있다. 추가 메뉴를 개발할 경우 인터넷으로 로봇에 저장된 소프트웨어를 갱신해 주면 된다. “한 가지 메뉴 개발을 위해 로봇을 수백 번씩 가동하며 엄격하게 맛을 시험했어요. 맛이 없으면 아무리 힘들게 개발한 메뉴도 가차없이 제외했습니다.”
우선 로봇 하단에 메뉴 버튼을 눌러 요리를 선택하고 몇 인분인지 식사량을 입력한 뒤 재료를 넣어 준다. 이런 수작업 때문에 로봇을 설치해도 요리사가 최소 1명 이상 있어야 한다. “30평 규모 식당이면 주방 인력이 5, 6명 필요해요. 우리는 로봇 덕분에 주방 인력이 2명이면 충분합니다. 줄어든 인건비만큼 이익이 올라가죠. 이익의 상당 부분을 좋은 재료를 구입하는 데 씁니다.”
시작 버튼을 누르면 스테인리스 합금으로 만든 밥솥처럼 생긴 두툼한 통이 돌며 요리를 한다. 그 사이 요리사는 돌아서서 찌개를 끓이거나 반찬을 만드는 등 다른 일을 하면 된다. 요리가 종료된 뒤 그릇에 옮겨 담으면 로봇이 알아서 자동으로 조리통을 세척하며 설거지까지 마친다. 이를 위해 로봇 하단에 급수 및 배수 파이프 등이 설치돼 있다.
맛에 대한 고객의 평가는 좋은 편이다. “네이버 맛집 평점에 올라온 영수증 리뷰를 보면 평점이 4.6~4.8이에요. 쿠팡잇츠도 4.7, 배달의민족 평점은 4.8점이에요. 맛에 대해서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신 대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후속 요리 로봇을 차례로 내놓을 계획이다. 7월에 튀김 전문 ‘오토 프라이어’, 내년에 구이 전문 ‘오토 그릴’ 요리 로봇을 차례로 선보일 예정이다. 막바지 개발 중인 오토 프라이어는 치킨 윙과 치킨 봉 등 5가지 튀김 요리가 가능하다. “치킨집을 겨냥해 만드는 로봇이에요. 너겟의 경우 실제 고기가 아닌 식물성 대체육을 쓸 생각입니다.”
신 대표는 이렇게 개발한 요리 로봇을 공유 주방업체나 식당 등에 판매하고 직영하는 로봇 식당에 설치할 방침이다. “요리 로봇의 가격은 대당 1,000만 원 이하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로봇을 판매해 많이 남길 생각은 없어요.”
로봇 개발은 삼성SDI에서 일한 듀크대 전자컴퓨터 공학박사 출신의 이상록 부사장과 대우전자 출신의 나광균 이사가 맡았다. 로봇은 서울 홍대 근처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만드는데 앞으로 공장에서 대량 양산할 예정이다. “지금은 연구원들이 수작업으로 한 달에 50대 정도의 로봇을 만듭니다. 로봇 생산을 늘리려고 최근 월 1,000대 이상 만들 수 있는 외주 공장과 계약을 했습니다.”
더불어 신 대표는 서울 목동이나 상암동에 로봇 식당 2호점 ‘민트 피그’도 5월 초쯤 낼 예정이다. “2호점은 분식점이에요. 4대의 오토 웍이 떡볶이 등을 만들죠. 7월에 오토 프라이어가 완성되면 2대를 더 설치해 튀김류도 추가할 계획입니다.”
신 대표는 10월에 사람은 돈만 받고 모든 일을 로봇이 처리하는 무인 로봇 식당도 차릴 예정이다. 이를 위해 회전초밥집처럼 그릇을 손님 앞에 나르는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도 개발 중이다.
신 대표 또한 로봇 식당의 해외 진출을 준비 중이다. 첫 번째 지역은 싱가포르다. “올여름에 한식이 인기를 끄는 싱가포르에 영어로 ‘공도리 키친’이라고 이름 붙인 로봇 식당을 열기로 했어요. 오토 웍과 오토 프라이어를 설치해 현지 인기메뉴인 닭강정, 닭갈비 등을 판매할 겁니다.”
신 대표가 겨냥하는 궁극적 목표는 쿡 엔 루트(cook-en-route)다. 국내에서는 생소하지만 해외에서 주목받는 쿡 엔 루트는 쉽게 말해 달리는 식당이다. 차량에 주방을 설치해 주문을 받는 즉시 배달 장소로 이동하며 조리해 최대한 따뜻하고 신선한 요리를 전달한다.
신 대표는 쿡 엔 루트를 외식업의 미래로 본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각광받는 배달 음식이 결국 쿡 엔 루트로 발전할 것이라고 믿는다. ”배달음식은 배달 거리와 시간 때문에 식당에서 바로 먹는 음식보다 떨어져요. 쿡 엔 루트는 이동하며 만들어서 갓 완성된 요리를 바로 전달하기 때문에 배달음식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죠.”
이를 위해 신 대표는 트럭 뒤편에 컨테이너 부엌을 마련하고 여기에 요리 로봇들을 설치하는 ‘공도리 키친 트럭’과 ‘칙트럭’ 등 2종류의 쿡 엔 루트 트럭 3대를 올해 말이나 내년 초 미국 샌머테이오에서 시범 운영할 예정이다. 공도리 키친 트럭은 볶음류 등 한식을, 칙트럭은 닭 요리를 판매한다.
신 대표의 쿡 엔 루트 사업은 획기적이다. 관제센터에서 스마트폰 앱으로 주문을 받으면 인공지능(AI)이 목적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트럭에 주문을 전달한다. 로봇은 트럭이 배달 장소로 이동할 동안 요리를 한다. 완성된 요리는 자동 포장돼 조수석으로 전달되고 운전자가 이를 주문자에게 전달한다. “재료 투입과 포장이 자동화돼 사람은 운전사 1명만 필요해요. 이외 관제센터에 트럭과 로봇 유지 보수를 위한 약간의 운영 인력만 있으면 되죠.”
이를 위해 신 대표는 지난달 미국에 현지법인을 설립해 물류 창고 역할을 겸하는 300평 규모의 관제센터를 준비 중이다. 그는 6월에 미국에 건너가 현지 법인을 직접 챙기며 쿡 엔 루트 사업을 시작할 방침이다.
신 대표는 쿡 엔 루트 사업 아이디어를 미국 줌피자에서 얻었다. 줌피자는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 등으로부터 4,000억 원을 투자받아 2016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트럭이 이동하며 피자를 굽는 쿡 엔 루트 사업을 세계 최초로 시작했다.
그런데 줌피자는 '옐프'라는 미국 음식점 평가 사이트에서 혹평을 받으며 실패했다. 이유는 트럭이 방향을 바꾸거나 노면 상태에 따라 피자 위에 얹는 재료인 토핑이 한쪽으로 쏠리는 등 음식의 질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신 대표는 줌피자가 개발자들만 모여 있어서 요리의 질을 등한시했다고 본다. “줌피자의 실패를 보며 가장 중요한 것이 요리의 품질이라는 것을 배웠죠. 줌피자는 시스템만 생각하고 음식을 고려하지 못했어요. 우리는 이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요리 전문가 김주영씨와 국내 최대 외식업체 삼천리E&G 등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박정우 이사 등을 영입했죠.”
줌피자의 실패는 로봇의 모양에도 영향을 미쳤다. “줌피자는 팔 달린 로봇을 설치해 트럭의 단가가 대당 4억 원 이상 올라갔어요. 또 팔 달린 로봇은 노면 상태나 차가 회전하면 영향을 받아요. 그래서 우리는 도로나 주행 상태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모양으로 로봇을 설계했죠.”
신 대표의 쿡 엔 루트는 국내에서 법이 바뀌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식품위생법에 주방은 고정된 곳에 설치하도록 명시돼 있어 이동하며 요리를 할 수 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이 문제 때문에 신스타프리젠츠를 규제 적용 대상 예외 기업(샌드박스)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신 대표는 샌드박스 허용 기간이 2년에 불과해 2년 뒤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불법 사업이 돼버려 국내에서 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서울 강남3구와 용산구 등에서 2년간 쿡 엔 루트를 운영하는 조건으로 규제 샌드박스에 선정됐어요. 쿡 엔 루트를 알려서 자리잡으려면 최소 5년은 필요해요. 그 이후에도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몇 년간 투자한 돈을 다 날리는데 누가 그런 사업을 하겠어요.” 반면 미국은 규제가 유연해 법으로 하지 말라는 사업만 아니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신 대표는 어린 시절에 해외 근무를 한 아버지를 따라 태국 벨기에 스위스 미국 등에서 12년간 해외 생활을 했다. 신종명 공동 대표도 중학교 때 미국 버지니아에서 만났다. “죽마고우였던 둘이 어려서부터 외식 사업 얘기를 했죠.”
한양대 사회학과를 나와 미래에셋증권에서 일한 신 대표는 지인의 소개로 ‘강호동 백정’이라는 고깃집으로 유명했던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 육칠팔에서 해외 사업을 총괄했다. “그때 한식의 성공 가능성을 알게 돼 로봇을 이용한 쿡 엔 루트 사업을 구상했습니다.”
2019년 11월 창업을 하자 외부에서 사업의 진가를 먼저 알아보고 총 35억 원을 투자했다. 그때 ‘배달의민족’으로 유명한 김봉진 의장의 우아한형제들이 10억 원을 투자했다. 김 의장은 신 대표를 만나지도 않고 “여기는 무조건 성공하니 투자하라”며 투자를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김 의장의 우아한형제들도 쿡 엔 루트를 배달의 미래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우아한형제들을 인수한 딜리버리히어로는 40여개 국에 공유 주방을 갖고 있어요. 여기에 로봇 공급을 할 수도 있죠.”
신 대표의 장기적 목표는 한식의 세계화다. “한식이 보편적인 세계 음식이 될 때까지 로봇과 쿡 엔 루트를 이용해 알릴 겁니다. 그만큼 한식은 매력이 있어요. 앞으로 5년 뒤 수백 대의 쿡 엔 루트 트럭이 미국을 누비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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