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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삶, 하루라도 사람답게 살고파"… 폐허 속 한센인들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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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러져가는 석면 슬레이트 지붕을 골방들이 아슬아슬하게 받치고 있었다. 언제 지어졌는지 모를 위태로운 판잣집들을 눈으로 좇으면서 굽이굽이 언덕을 오르니 작은 교회 하나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퍼진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집이든 공장이든 축사든 마을 시설들은 마치 십수 년 전 시간이 멈춘 듯한 모습으로 퇴락해가고 있었다. 언뜻 들여다보이는 가정집 내부에는 곰팡이가 꺼멓게 피어 있었다. 머리에 수건을 동여매고 남의 밭에서 쪽파를 캐는 여성 두어 명과 아픈 다리를 끌고 언덕을 내려가는 노인을 제외하고는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로 마을은 적막했다.
4일 찾은 세종시 부강면 충광마을은 그야말로 '죽어가는 마을'이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소록도에 강제수용됐다가 탈출한 한센인들이 중석광산 주변에 터를 잡으며 형성된 부락이다. 한창때 이곳 주민들은 굳센 자립 의지로 축산업을 영위하며 생계를 꾸렸지만 지금은 몸과 마을의 쇠락을 하릴없이 지켜만 보고 있는 처지다. 또 다른 한센인 정착마을인 경기 양주시 천성마을의 사정도 충광마을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한센인들은 전국 86개 정착마을 중 이들 마을이 그나마 양호한 거라고 했다.
마을 규모는 계속 쪼그라들어 이제 충광마을은 27가구, 천성마을은 34가구가 남았다. 두 마을 주민들은 평균연령 81세로 대부분 정착 마을을 직접 만들고 가꿔온 한센인 1세대다. 이 세대가 노환으로 1년에 400명꼴로 숨지면서 머지않아 마을과 함께 소멸할 운명을 같이하고 있는 지금, 이들은 다시금 쇠약한 목소리로 "아직까지 한 번도 사람다운 삶을 살아보지 못했다"고 호소한다. 비환자들의 오랜 차별과 멸시, 정부까지 관여한 자의 반 타의 반의 격리 생활로 공동체에 녹아든 적 없는 이들. 누군가 돌보기는커녕 존재조차 잊혀 가는 한센인들은 외딴 산골마을에서 60여 년째 고립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충광마을은 수년 전까지만 해도 축산업을 생계 사업으로 이어가던 곳이다. 그러나 올해 조류인플루엔자(AI) 등 연이은 전염병으로 가축을 계속 기를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7개월 전쯤부터 폐축사와 폐가들이 생겨났다. 이전에도 가축 돌림병, 환경오염, 농산물 개방 등 지금에 못지않은 위기들이 있었지만, 늙은 주민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파고를 넘어설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철거 비용을 마련할 수 없어 폐축사들은 악취를 풍기며 마을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고 지붕이 팍삭 주저앉은 폐가들 역시 마을의 흉물로 변해가고 있다.
공업을 생계수단으로 삼았던 천성마을은 폐공장에 둘러싸여 상황이 더 열악했다. 이곳은 수도권에 위치한 한센인 정착 마을 중 유일하게 그린벨트로 지정돼 모든 개발이 중지된 상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정부의 눈을 피해 무허가 공장을 지어 마을 경제를 유지했지만, 그마저도 몇 년 전부터 단속 강화로 불가능해지자 외지에서 온 공장주들이 공장을 버리고 사라졌다. 폐공장의 늪이 된 마을은 오롯이 주민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됐다.
공장이 우후죽순 생기던 시절 공장지대 사이로 주택들이 제법 들어섰지만, 텅 빈 공장과 오염된 환경만 남고 보니 주거 환경은 급속히 나빠지고 있다. 주민 A(68)씨는 "그린벨트로 지정된 마을이라고 하면 다들 환경이 좋은 줄 아는데 전혀 아니다"라며 "공장 폐수가 아직도 흘러나와 축산업은 엄두도 못 내고 대기오염도 심각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실제 천성마을은 공장 가동을 멈춘 이후로 주민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자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상황은 악화일로이지만 정부의 지속적 관심을 찾아보긴 어렵다. 충광마을의 경우 정부가 열악한 주거환경을 감안해 2005년 마을 안에 공동주택을 지어줬지만 이 또한 사람이 안락하게 머물 수 있는 환경이 못 됐다. 정부가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는 이 시설에 들어서니 좁은 복도 천장을 따라 시꺼멓게 핀 곰팡이가 입구부터 쿰쿰한 냄새를 풍겼다. 한센인 6가구가 입주한 단칸방 중 한 곳은 부엌 하부장이 들쭉날쭉 이 빠진 모양새로 덜렁거렸고, 언제 샜는지 모를 빗물 자국이 벽면을 타고 흘러 누런 자국을 만들었다. 단열이 제대로 안 돼 바깥 추위와 더위도 고스란히 견뎌야 한다. 이런 인색한 주거시설 지원조차 천성마을은 받지 못했다.
그나마 몸을 누일 곳이 있다 해도 나이 들고 몸이 불편한 한센인들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일도 버겁다. 충광마을 시설에 거주하는 이경재(83)씨는 한센병 여파로 다리를 잘 쓰지 못해 지팡이에 의존한다. 네 가지 약을 매일 복용하고 있는 그는 부축 없이는 집을 나서기조차 힘들다. 유일한 조력자인 아내 이모(74)씨도 다리가 불편한 한센인이라 거동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 이씨는 "비가 오면 그 즉시 집 안으로 물이 들어차 바가지로 퍼내야 한다"며 "오늘처럼 빗소리만 들려도 무서울 지경"이라고 말했다.
넉넉지 않은 공적 지원도 한센인들의 빈곤을 강화한다. 이들이 위로지원금 명목으로 정부에서 받는 지원금은 월 17만 원이 전부다. 사실상 장애를 안고 살아가고 있지만 장애인 지원금(월 25만 원)에 크게 못 미치는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씨는 "이 산골마을에서 병원이라도 한번 가려고 하면 택시비만 왕복 10만 원을 훌쩍 넘겨 내야 한다"며 "병원 갈 엄두가 나지 않아 아픈 몸을 부여잡고 산다"고 말했다.
더구나 충광마을에 거주하는 34명의 한센인 중 3분의 1에 달하는 11명은 지원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마을에 뒤늦게 합류해 신청 시기를 놓쳤다는 것이 유일한 이유다. 충광마을 대표 B(79)씨가 이들에 대한 지원을 정부에 요청했지만 여태 감감무소식이라 11명 모두 기초생활수급자로 근근이 살고 있다. B씨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장애인에게 지원해주는 25만 원 정도로 지원금이 오른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정착마을 주민들이 원하는 건 단순하다.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 살 만한 마을을 가꾸고 싶다는 것이다. 천성마을은 그린벨트 규제에 막혀 마을 개발은커녕 복구도 어렵다며 정부의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마을 대표 이상근(72)씨는 "20년째 그린벨트 해제를 요구 중이지만 정부에선 대답이 없다"며 "국가에서 마을의 사정을 한 번이라도 돌아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충광마을에 거주하는 한센인 C씨는 "이 순간에도 한센인들은 세상을 떠나고 있다"며 "국가의 지원이 하루라도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C씨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에 가둬놓고 주는 밥 받아먹고 밖으로 걸어 나가지도 못하는 게 인간의 삶은 아니잖아요. 삶이 얼마 안 남았을지라도, 하루라도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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