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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탄 시위에 입법 촉구… 인종차별 공론화 도화선 된 애틀랜타 총격

입력
2021.03.21 18:00
수정
2021.03.21 21:05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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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곳곳에서 "아시아계 증오 멈춰라" 집회
신중하던 바이든, 현지行… "인종주의 추악"
'용의자 감싼다' 뭇매에 수사도 증오범죄로

연쇄 총격 사건이 벌어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주의회 의사당 앞에서 20일 시민들이 아시아계 미국인을 향한 증오를 규탄하는 집회와 거리 행진을 벌이고 있다. 애틀랜타=EPA 연합뉴스

연쇄 총격 사건이 벌어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주의회 의사당 앞에서 20일 시민들이 아시아계 미국인을 향한 증오를 규탄하는 집회와 거리 행진을 벌이고 있다. 애틀랜타=EPA 연합뉴스

백인에 의해 한인 4명 등 아시아계 여성 6명이 희생된 조지아주(州) 애틀랜타 총격 사건을 계기로 뿌리 깊은 미국의 인종차별 증오범죄 문제가 공론화하는 분위기다. 차제에 인종주의와 범죄를 근절하자는 촉구 시위가 미 전역으로 확산하는 등 심상찮은 조짐이 보이자 신중하던 조 바이든 대통령의 태도가 전향적으로 바뀌었다. 개인 정신건강으로 분산될 듯하던 수사 초점도 일단 증오범죄로 맞춰지는 모습이다.

주말인 20일(현지시간) 집회가 열린 지역은 애틀랜타만이 아니었다. 피츠버그, 샌프란시스코, 뉴욕, 시카고 등에서도 “아시아계 증오를 멈춰라”(Stop Asian Hate)라는 구호가 퍼져 나갔다. 애틀랜타 사건의 후폭풍이다. 피츠버그 집회에는 한국계 여배우 샌드라 오가 등장하기도 했다. 연사로 나선 그는 “아시아인이라는 게 자랑스럽다”고 했다.

사건 이튿날(17일) 시작된 시위는 연일 계속되고 있다. 19일에는 로스앤젤레스(LA) 한인들이 차량 100여 대에 나눠 타고 코리아타운 일대를 돌며 아시아계 겨냥 증오범죄를 성토했다. 히스패닉계 주민들은 ‘힘내요, 애틀랜타’(Stay Strong Atlanta)가 쓰인 팻말을 들었다.

분노는 미국 바깥과 인터넷 공간에까지 번졌다. 세계 인종차별 철폐 주간을 맞아 이날 독일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열린 행사의 개회사에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중단하라”는 요구가 포함됐고, 소셜미디어(SNS)에도 구호가 해시태그(#StopAsianHate) 형태로 퍼지고 있다.

이런 거센 기류가 바이든 대통령을 움직였다. 애초 ‘아시아계의 걱정을 알고 있다’ 정도 입장이던 바이든 대통령은 19일 성명을 통해 이번 사건에 대한 국가적 슬픔과 분노를 공유한다며, 정부의 증오범죄 신속 대응 등을 촉진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증오범죄법’을 신속히 처리해 달라고 의회에 요구했다. 이어 곧장 애틀랜타를 찾아 아시아계 지도자들을 면담하고, 연설로 아시아계 겨냥 폭력을 규탄했다. “증오ㆍ인종주의는 추악한 독”이라고 강조하면서다. 첫 여성ㆍ흑인ㆍ아시아계 부통령인 카멀라 해리스도 “대통령과 나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마침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이 21일이다. 흑인 여성인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미 유엔대사는 19일 ‘인종차별ㆍ외국인혐오증과 관련 편협성 철폐’라는 주제로 열린 유엔 총회 회의에서 “나는 노예의 후손이어서 인종차별의 추악한 얼굴을 안다”며 백인우월주의를 해체하고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국제협약을 회원국들이 비준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앞)이 19일 최근 연쇄 총격 사건이 벌어진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에머리대에서 아시아계를 향한 증오의 중단을 호소하고 있다. 애틀랜타=AP 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앞)이 19일 최근 연쇄 총격 사건이 벌어진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에머리대에서 아시아계를 향한 증오의 중단을 호소하고 있다. 애틀랜타=AP 뉴시스

수사의 가닥도 증오범죄 쪽으로 잡혀 가는 형국이다. 사건 직후 총격범의 고백을 공개하며 ‘성(性)중독’이 범행 동기라는 가설에 무게를 두는 듯하던 경찰이 ‘용의자를 감싼다’는 여론의 뭇매를 이기지 못하면서다. 언론(CNN방송)에 의해 성중독이 의학적 질환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최대 장애물은 증거다. 애틀랜타 총격범에게 증오범죄를 적용하려 연방 수사관들이 증거를 찾고 있지만,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고 20일 AP통신이 보도했다. 인종차별 혐의를 드러내는 문자 메시지나 온라인 게시물, 증언 등이 통상 명백한 증거로 간주된다.

아시아계의 경우 증오 표적이 됐다는 주장을 증명하기도 어렵다. 18일 미 일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유독 아시아계를 노린 범행들에 증오범죄 혐의가 적용되지 않는 사례가 많은데, 무엇보다 반(反)흑인ㆍ유대인ㆍ동성애보다 반아시아계 범죄에 공통된 전형이나 상징이 없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아시아계 미국인 지도자들의 준비가 부족하다는 점 역시 한계다. 20일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정부와의 대화에서 이들이 내놓은 구체적 아이디어가 별로 없는 데다 향후 목표에서도 이견을 노출했다고 전했다.

그래도 위기를 통해 기회가 생긴 건 사실이다. 미국 내 아시아ㆍ태평양계(AAPI) 지역사회 그룹이 이끄는 180여 개 단체가 19일 애틀랜타를 찾은 바이든 대통령과의 간담회에서 3억달러(약 3,390억원) 규모의 예산을 확보해 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전달한 건 정부가 더 적극 나서라는 요구다.

권경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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