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헛심으로 끝난 박범계의 수사지휘

입력
2021.03.20 01:33
1면
구독

<대검 13시간 30분 마라톤 회의>
한명숙 사건 모해위증 의혹 재심의
참석자 14명 중 10명 불기소 의견
임은정 기소 주장에도 결론 안 바뀌어?
조남관 대행 회의 결과 법무부 보고
"법무장관 무리한 지휘" 타격 불가피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교사 의혹을 다시 들여다보는 회의가 열린 19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뉴시스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교사 의혹을 다시 들여다보는 회의가 열린 19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뉴시스

대검찰청 부장단과 전국 고검장들이 19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교사 의혹 사건과 관련해 '무혐의 종결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달 초 대검 연구관 6명이 참석한 회의를 통해 내린 무혐의 결론을 두고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대검 부장회의에서 기소 가능성을 다시 심의하라"며 수사지휘권을 발동했지만, 결과가 바뀌지 않은 것이다.

대검 부장(검사장급) 7명과 전국 일선 고검장 6명은 이날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 주재로 13시간 30분 동안 '마라톤 회의'를 진행한 결과, 재소자 김모씨의 모해위증 혐의에 대해 불기소 결론을 내렸다. 표결에는 조남관 총장대행을 포함한 14명이 참석해 10명이 '불기소' 표를 던졌고, '기소' 의견은 2명뿐이었다. 나머지 2명은 기권했다. 조 총장대행은 이날 회의 결과를 토대로 최종 무혐의 결론을 내린 뒤 법무부에 보고할 예정이다.

이날 회의는 지난 17일 박 장관이 조 총장대행에게 내린 수사지휘의 여파로 열렸다. 박 장관은 "대검이 직접 조사에 참여하지 않은 대검 연구관 회의를 거쳐 이달 5일 사건을 (무혐의) 종결했다"고 지적하며, 대검 부장회의 심의를 거쳐 김씨 공소시효 완료일(22일)까지 입건 및 기소 여부를 다시 결정하라고 지시했다. 조 총장대행은 이튿날 박 장관 지휘를 수용하면서도 "공정성 담보 차원에서 일선 고검장들도 참여토록 하겠다"며 밝혔다. 대검 부장단에 친정부 성향 인사들이 포진한 점을 감안한 결정이다.

검찰 수뇌부가 모인 자리에서 압도적 표차로 불기소 결론이 나오면서 조 총장대행은 한숨을 돌리게 됐다. 조 총장대행이 승인했던 기존 무혐의 결론의 정당성을 재차 확인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논란이 끊이지 않던 한명숙 전 총리 모해위증교사 의혹 사건 역시 이로써 일단락될 전망이다. 재소자 김씨가 혐의를 벗게 되면, 그에게 위증을 교사했다는 수사팀 검사들의 혐의도 성립할 수 없다.

반면 수사지휘권 남발 비판 속에서도 문재인 정부 들어 세 번째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박 장관은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검찰 내 반대 여론이 압도적이란 점이 재차 확인되면서, 임은정 검사 등 일부 의견만을 근거로 무리하게 무혐의 결론을 뒤집으려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탓이다.

다만 박 장관이 향후 '감찰 카드'를 통해 한 전 총리 모해위증교사 의혹 사건의 불씨를 이어갈 가능성은 남아 있다. 박 장관은 수사지휘 카드와 함께 △사건관계인에 대한 인권침해적 수사방식 △수용자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하고 정보원 내지 제보자로 활용한 정황 △불투명한 사건관계인 소환 조사 등 검찰 수사관행에 대한 법무부-대검 합동 감찰을 지시했다. 검찰의 위법·부당한 수사관행을 지적할 길은 계속 열어둔 셈이다.

법무부는 이날 회의 결과가 나온 뒤에는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박 장관은 회의가 한창이던 퇴근길에 취재진과 만나 '회의에서 어떤 결론을 내려도 수용하겠느냐'는 질문에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결과가 나온 다음에 봐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내가 중시한 것은 과정이었으니 논의 과정이 어땠는지 좀 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검 회의에서 당초 기소 의견을 제시했던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과 임은정 연구관의 의견을 얼마나 무게 있게 들었는지 살펴본 뒤 향후 대응 방향을 정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준기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