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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의대 '성소수자 의료' 수업 첫 개설... 그들의 눈물 닦아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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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더 미룰 수 없는 의사 교육
올해 1학기 수강신청을 진행하던 시점. 서울대 의대 윤현배(43) 휴먼시스템의학과 교수는 두 명의 학생에게서 이메일을 받았다. ‘혹시 정원(12명)이 차서 수업을 못 듣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라는 내용이었다.
올해 첫 개설된 이 수업의 제목은 ‘성소수자 건강권과 의료’. 국내 의과대학 최초로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 의료에 대해 가르치는 수업이다. 격주로 총 4회 진행되는 1학점 선택과목으로, 현재 의학과 2학년 학생 12명이 해당 수업을 듣고 있다.
윤 교수에게 해당 이메일을 보냈던 A(22)씨는 “어느 날 성소수자인 지인이 본인의 건강에 대해 물어왔는데, 의대생인 나도 이걸 어디에 물어보고 알려줘야 할지 몰랐다”며 “의사의 본분이 환자의 건강을 지키는 일인데도 학교에서 이를 가르쳐주지 않는 게 이상하던 차에 이와 관련한 수업을 개설한다고 해 반가웠다”고 말했다. 서울대 의과생들은 선택교과의 희망순위를 1~5순위까지 내야 하는데, 윤 교수의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 중 9명이 1지망, 3명이 2지망으로 해당 과목을 선택해 인기가 높은 편이었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과대학 교육관에서 만난 윤현배 교수는 첫 출발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성소수자와 관련해 엄청난 전문 의료지식을 갖추라는 게 아니에요. 학생들이 향후 의사가 됐을 때 일반환자를 대하듯 성소수자를 진료하게 하는 것이 이 수업의 목표입니다.”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LGBTQ(레즈비언ㆍ게이ㆍ바이섹슈얼ㆍ트랜스젠더ㆍ퀴어)의 실상을 파악하고 이들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게 목표이며, 그중 트랜스젠더는 중심이 된다. 윤 교수는 “성소수자 중 의료 접근성이 가장 떨어지는 이들이 트랜스젠더”라며 “게이, 레즈비언 등은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길 수 있지만, 트랜스젠더는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수업 준비를 위해 공부를 했는데, 트랜스젠더들은 (의료진들의 편견 등이 두려워) 감기몸살로 병원을 찾는 것도 꺼린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일단 일반진료의 문턱을 낮추는 게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이 분야의 전문가들을 직접 초빙해 수업을 진행한다. 이달 4일 진행된 첫 강의는 박한희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가 ‘성소수자 건강권과 인권’이라는 주제로 포문을 열었다. 윤 교수는 “성소수자에 대한 개념에서부터 이들이 겪는 사회적 차별과 법적인 문제,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이들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강의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특히 한국 전체 인구의 5% 정도가 성소수자일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며 “학생들도 ‘앞으로 의사가 되면 하루에 한두 명의 성소수자 환자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3주 차부터는 ‘성별정체성 진단 기준과 정신과적 상담’ 등 실제 트랜지션(성확정) 과정이 포함된 전문영역을 강의한다. 마지막 4주 차에는 교실을 벗어나 서울 은평구 소재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살림의원)을 찾아 ‘성소수자 친화적 클리닉의 실제 운영’을 주제로 수업을 진행한다. 윤 교수는 “실제 환자들을 만나볼 수는 없지만, 접수 데스크의 응대, 직원 교육, 성중립성 화장실이 설치된 병원 내부시설 등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매주 서울대 교수 한 명과 외부전문가 한 명, 총 두 명의 강사가 수업을 진행한다. 윤 교수는 “아무래도 (직접 성소수자와 대면하는) 외부전문가들이 관련 지식이나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업 때마다 한 명씩 강사로 초빙했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가 해당 수업을 개설하는 데에도 외부전문가들, 특히 추혜인 살림의원 가정의학과 전문의의 역할이 컸다. “추 선생은 학창시절부터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가 세월이 지나도 일선에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교육자로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동시에 ‘나는 내과 전문의인데 관련 분야를 잘 모른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학교에서 배운 게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추 원장에게 지난해 초 연락을 해서 같이 강의를 구상했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1년 미뤄져 올해 강의가 개설된 거죠.”
윤 교수는 첫 주 강의에서 박 변호사의 뒤를 이어 ‘해외 의과대학의 LGBTQ 의료교육과정’을 직접 강의했다. 수업을 준비하면서 안도감과 조급함을 동시에 느꼈다. 그는 “막상 조사를 해보니 미국과 캐나다 의과대학 중 절반 정도에서 4년 평균 5시간 정도만을 LGBTQ 관련 교육에 할애하고 있었다”며 “우리도 그렇게 늦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완성된 교육프로그램이 아닌 사회적 분위기와 문제의식은 북미가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윤 교수는 “북미의과대학협회(AAMC)에서 LGBTQ 관련 교육을 더 확대하고, 의과대가 그들의 건강권 향상을 위해 앞장서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며 “한국사회는 아직 이 같은 사회적 인식이나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기 때문에 갈 길이 멀다”고 밝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의대생들의 관심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이 수업을 듣는 또 다른 학생 B(22)씨는 “수업을 통해 ‘무지개 스티커 붙여놓기’, ‘차별적인 언사 하지 않기’ 등 아주 사소한 것들만 지켜도 성소수자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배웠다”며 “앞으로 호르몬 치료 등 임상실습 수업에서도 관련 주제를 접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밝혔다.
학교의 지원과 교직원, 학생들의 열의로 성소수자 의료권 향상을 위한 수업이 문을 열였지만, 어디까지나 첫발일 뿐이다. 우선 해당 수업은 선택교과다. 윤 교수도 앞으로 이 수업을 어떻게 발전시킬지 고민 중이다. 그는 “서울대 의과대학 필수과목 중에 의학의 역사, 윤리, 심리, 법, 제도, 국제보건 등을 다루는 ‘인간사회의료’라는 과정이 있다”며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LGBTQ 주제가 들어가 있지 않은데, 모든 수업을 마친 후 정식으로 교내 의견을 모아서 해당 과정 관계자들과 논의해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윤 교수는 또 “성소수자 관련 의료교육이 필수과목으로 자리 잡아도, 그 효과가 나타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며 “그래서 현업 의사들도 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사는 3년에 한 번씩 면허를 갱신하는데, 이를 위해 1년에 8시간씩 총 24시간 연수를 받게 돼 있다”며 “이 중 필수로 들어야 하는 윤리교육시간(2시간)에 성소수자 관련 주제를 넣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교수 스스로도 끊임없이 관련 주제에 대해 공부한다. ‘커밍아웃 스토리’ ‘오롯한 당신’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 등의 책을 읽고, 이를 학생들에게 권하기도 한다.
“물론 과목 하나 생겼다고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겠죠. 그래도 의대생들이 이 수업을 통해서 트랜스젠더가 호르몬 치료나 수술적 치료가 가능하다는 정도만 배워가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편견이 없다는 의미잖아요. 트랜스젠더 환자가 내 앞에 왔을 때 ‘해당 전문가에게 의뢰해야겠다’는 생각만 해도 당사자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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