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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인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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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지난 9일 미국 뉴욕시 노상에서 83세 한국계 할머니가 모르는 40대 젊은이에게 의식을 잃을 만큼 주먹질을 당했다. 16일에는 애틀랜타에서 연쇄 총격으로 8명이 숨졌는데, 희생자 중 한국계 4명을 포함, 6명이 아시아인이었다. 지난해 중국 우한(武漢)에서 코로나 19 유행이 시작된 이후 점차 늘기 시작한 ‘아시아인 혐오’가 결국 생명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지난 1년간 미국에서 아시아계 주민을 겨냥한 증오 관련 사건은 4,000여 건에 달한다.
□ 서양의 아시아인 혐오는 13세기 몽골제국의 유럽 침공에서 비롯됐을 만큼 뿌리가 깊다. 이를 ‘황화(黃禍)론’이라고 부르는데, 혐오의 밑바닥에는 공포가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19세기 초 프랑스 나폴레옹 황제는 “동방의 잠자는 사자인 중국이 일단 깨어나면 세계가 깜짝 놀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무정부주의자 미하일 바쿠닌도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아시아 식민화에 나서자 “이 음모는 아시아 세계를 일깨우는 결과를 가져와 아시아는 다시 한번 유럽을 괴멸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 20세기 아시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황화론은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1895년 러시아 차르 니콜라이 2세에게 선물로 보낸 그림 ‘황화’에서 시작된다. 유럽의 주요국을 상징하는 7명의 여성이 멀리서 다가오는 폭풍우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데, 유럽 하늘에는 십자가가 빛나고 먹구름 가운데는 부처가 있으며 칼을 쥔 천사가 그 폭풍우를 가리키고 있다. 이 그림을 선물한 지 5년 뒤 유럽은 미국 일본과 연합해 중국 의화단 봉기를 진압하며 중국 침략의 문을 열었다.
□ 이후 잠잠해졌던 ‘아시아인 혐오’가 다시 등장한 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 부르면서부터다. 대선에서 주요 지지층인 백인우월주의자를 결집하려는 계산이었겠지만, 중국이 미국의 맞상대로 부상한 것도 트럼프의 선동이 주효한 배경일 것이다. 미ㆍ중 대립이 격화하면 언제든 ‘황화론’이 부활할 수 있음을 지금 벌어지는 ‘아시아인 혐오’가 예고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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