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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을 말하지 않는 정치

입력
2021.03.22 04:30
수정
2021.03.22 13:38
25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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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 무언가를 말할 때는 정치적 이유가 있지만, 그걸 말하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다. 기본소득이 정치적이라면 기본소득을 말하지 않는 것도 정치적이다.

'기본소득, 세대 전쟁의 서막'(한국일보 3월4일자 26면)이란 칼럼을 읽었다. 내가 페이스북에 쓴 글에 관해 그 칼럼은, 재원 없이 기본소득을 실시하면 기존 복지 수급자가 피해를 보고 기본소득을 제대로 하려면 재원 마련에 막대한 세금이 들어간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칼럼은 기본소득으로 혜택을 볼 이들은 불안정 고용상태의 청년들이고, 따라서 기본소득 주장은 청년들의 지지를 얻으려는 정치 행위인데 이로 인해 세대 갈등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먼저 짚을 것은, 기본소득을 도입하기 위해 저소득층에게 현재 제공되는 복지를 줄이자고 하는 기본소득론자는 없다는 점이다. 생계급여 등 저소득층 선별복지는 기본소득이 그보다 높은 수준으로 지급될 때 비로소 폐지될 수 있다. 따라서 기본소득 비판은 결국 충분한 액수의 기본소득을 위한 재원을 마련할 수 없으리라는 비관론으로 귀결된다.

여기서 '기본소득을 말하지 않는 정치'가 무엇인지 드러난다. 그 정치는 예산 제약을 돌파할 의지가 없음을 숨기는 정치다. 저부담 저복지인 우리나라 조세구조에서 기본소득이든 다른 복지제도든 재원을 마련하려면 증세가 불가피하다. 기본소득론자들은 증세하자고 줄곧 주장하면서 탄소세, 토지세 같은 방안을 제시한다. 또 기본소득은 보편적 수혜자층을 형성해 증세를 설득하기가 선별복지보다 훨씬 수월하다. 지난해 경기도 공론조사에서 숙의를 거친 다음 기본소득을 위한 증세에 찬성률이 두 배 가까이 올랐다. 기본소득 반대론자들은 담세자와 수혜자가 분리된 선별복지를 주장하면서 어떻게 복지 재원을 마련할지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한편 칼럼이 인정하듯 청년은 기본소득의 지지층이 될 수 있다. 기본소득당 당원은 80퍼센트가 20대다. 경기도 청년기본소득을 받은 청년 열 명 중 여덟 명은 '만족한다'고 답한다. 노동시장과 복지제도에서 배제된 청년들에게 기본소득은 그들의 필요를 충족하는 대안이며 동시에 그들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얻는 길이다. 기본소득론자들은 이러한 정치적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청년에게 기본소득을 주는 걸 반대하는 정치세력에게 이유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

칼럼이 언급한 샤츠슈나이더는 '갈등의 정치화'를 주장했으나 갈등을 나쁘게 보지 않았다. 그는 갈등이 민주주의의 엔진이라고 보았다. 기본소득의 정치는 노동구조와 복지제도에서 배제되어 보이지 않는 청년들을 정치의 주체로 만드는 기획이다. 그게 세대 전쟁을 부추기는 일일까? 이제 질문은 기본소득을 말하지 않는 정치를 향해 돌려져야 한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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