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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공과 갈래요" 인기에도 입학정원 '제자리'…대학 낮춰 지원도

입력
2021.03.22 10:0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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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학들 더딘 변화
컴퓨터학과·반도체학과 인기 올라가고
기계공학과·생명공학과 지원자 줄지만?
입학정원 때문에 학생들 수요 대응 어려워?
"상위대 수학과보다 하위대 컴퓨터공학과 선택"

편집자주

산업이 급속도로 재편되고 있다. 그러나 산업 현장이 원하는 인재를 배출해야 할 대학은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 턱없이 부족한 IT 개발자를 모셔가려고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연봉을 높인다. 상아탑이 산업 흐름에 뒤처진 원인과 해법을 진단하는 기획 시리즈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1>미래산업, 인재가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우리 대학도 디지털 시대 변화의 바람을 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컴퓨터공학과 인기의 꾸준한 상승세'다.

21일 종로학원하늘교육이 2015학년도와 2021학년도 대학입시 정시 배치표를 비교 분석해본 결과에 따르면, 서울대 컴퓨터공학부(자연계열 전체 24위→16위)를 비롯해 연세대 컴퓨터과학과(89위→86위), 고려대 컴퓨터학과 (117위→86위), 한양대 컴퓨터소프트웨어학부(207위→135위), 서강대 컴퓨터공학전공(173위→149위) 등 주요 대학 컴퓨터 관련 학과 합격선이 일제히 상승했다.

5년 새 뒤바뀐 인기학과, 비인기학과

과거 컴퓨터 관련 학과는 대학을 높여 지원하려는 이들에게 추천하던 학과였다. 비인기학과라 경쟁률이 상대적으로 낮아서다. 바뀐 계기는 2016년 3월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이 꼽힌다. 임성수 국민대 소프트웨어융합대학 교수는 “IT 업종 쪽에서 개발자가 부족하다는 얘기는 10~20년 전부터 반복됐던 얘기였지만, 장시간 일하고 박봉이라는 이유로 컴퓨터 관련 학과는 학생들에게 늘 인기가 없었다”면서 “이세돌과 알파고 대결 이후 인공지능(AI)이 화두로 등장하면서 학생과 부모들의 인식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졸업 이후 취직으로 이어지는 '계약학과'들의 경우 의대·한의대·수의대를 능가하는 경쟁률을 자랑하기도 한다. 국방부, 삼성전자와 각각 연결된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와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의 합격선은 고신대 의예과, 단국대(천안)·경북대 치의예과와 비슷한 56위 정도다. 삼성전자와 연결된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도 대전대?동의대 한의예과와 비슷한 105위를 기록했다. 아주대 국방디지털융합학과(135위)는 경북대 수의예과와 합격선이 같거나, 전남대?충남대 수의예과(163위)보다 높았다.

'무전공'으로 입학해 2학년 때부터 전공을 정하는 카이스트(KAIST)에선 이런 경향이 더 뚜렷하다. 2008년 '전산학부'를 전공으로 고른 학생은 45명 정도였지만, 2014년 69명, 2015년 90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이세돌과 알파고 대결이 펼쳐진 2016년에는 138명으로 처음 세 자릿수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2학년생 800명 중 210명이 전공으로 전산학부를 신청했다. 일명 ‘반도체학부’로 불리는 전기및전자공학부 역시 2008년 79명, 2019년 193명에 이어 지난해 208명으로 신청자가 늘었다. 반면 2008년 103명이 지원했던 기계공학과는 지난해 48명으로, 생명공학과는 80명에서 38명으로 줄었다.

신산업 학과 부족 여전..."대학 낮춰서라도 지원"

그렇지만 학생들의 변화에 대학들 모두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건 아니다. 수도권 대학은 총 입학정원이 정해져 있다. 특정 학과 정원을 늘리려면 다른 학과 정원을 줄여야 하는데, 기존 체제에 익숙한 교수들의 반발 등을 감안하면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다. 학령인구 감소로 위기에 내몰린 지방대들은 그나마 강렬한 개편 의지가 있다지만, 학과를 개설해도 학생 모집이 쉽지 않다.

지난해 교육부가 편입학이나 결손정원을 모아 새 학과를 설립하는 고등교육법 시행령을 만들면서 약간이나마 숨통은 트였다. 수십 년간 동결됐던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전기정보공학부 정원은 늘었다. 고려대는 융합에너지공학과, 스마트보안학부, 데이터과학과를, 중앙대와 한양대(에리카), 서울시립대 등은 인공지능학과를 새로 만들었다.

유헌창 고려대 데이터과학과장은 “기존 학과를 전면 재편하는 방식도 있지만 교수진, 기존학과 커리큘럼을 보고 입학한 학생들이 학과 개편을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어 신산업 수요에 맞춘 학과를 개설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상위권 대학일수록 자퇴, 정원 미달도 적어 조정 여지가 많지 않다. 서울대 20명을 비롯해 지난해 수도권 대학에 재조정된 학생 정원은 714명으로, 전체 수도권 대학 정원 13만6,798명의 0.5%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생들은 대학을 낮춰서라도 신산업 관련 학과에 지원하고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올해 대학 입시에서 연·고대 격인 A대 수학과, 서울 주요 대학 격인 B대 컴퓨터공학과에 동시 합격한 학생이 주저 없이 B대학을 택했다. 몇 년 전만 해도 볼 수 없던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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