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열과 개방의 상징 우루과이가 몸살을 앓고 있는 까닭은

<17>경제·치안의 위기에 빠진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우루과이는 남미에서 칠레와 함께 가장 잘사는 나라로 꼽힌다. 수도 몬테비데오의 해안가. 이동학 작가

유럽이 주로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벌어지는 내전으로 인해 생기는 난민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면 요즘 남미는 경제 난민 문제로 곳곳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2018년 여름 찾아간 남미는 당시 기준으로 5년 동안 유엔 난민기구 추산 360만 명이 국경을 넘었다. 이 숫자는 2019년 말 460만 명으로 늘었고, 현재 약 54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소득, 식량, 의약품 등 자신의 나라가 여러 문제로 불안정한 탓에 난민이 된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미 전역에 흩어진 채 눌러 앉으려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여러 중남미 도시들은 국경을 넘어 온 이들 난민 때문에 사회적, 경제적으로 갖가지 부담을 떠안고 있고, 현지에선 또 다른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도미노 난민사태

혼란의 중남미. 인터넷 캡처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칠레, 페루, 콜롬비아, 볼리비아 등 라틴 아메리카는 그렇지 않아도 정치·경제, 부정부패 등으로 사회가 불안정한데 난민들을 받아들일 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지 않아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었다.

2018년 여름 브라질 당국은 베네수엘라와 국경을 마주하는 북부 도시 호라이마주 파카라이마(Pacaraima)에 군 병력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2017년 베네수엘라를 탈출해 브라질로 간 사람만 2만여 명에 달했는데, 이 중 베네수엘라 출신 괴한이 상점 주인을 흉기로 찌르고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곧이어 베네수엘라 사람들과 브라질 주민들 사이에 폭력 사태로 번졌고, 이 도시에 머물던 1,200여 명이 베네수엘라로 쫓겨났다.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한국인 선교사들이 노숙인을 상대로 의료 봉사를 하고 있다. 이동학 작가

경제 사정 어려워지자 열려 있는 국경 닫히는 중

건조한 페루 타크나(Tacna)에서 아레키파(Arequipa)로 넘어가는 길. 베네수엘라를 탈출한 뒤 걸어서 7,000km를 이동해 우루과이까지 온 이들도 있다고 한다. 이동학 작가

혼돈의 브라질을 지나 도착한 우루과이에서 26세의 페루 청년 루이스(Louis)를 만났다. 불법 체류 상태인 그는 몬테비데오(Montevideo)의 항만에서 겨우 끼니를 때울 돈을 마련하고 있었다. 법정 임금은 꿈도 꾸지 못한다. 우루과이 법정 임금의 절반만 줘도 페루에서의 삶보다는 낫다고 한다.

페루에는 일자리가 매우 부족하고, 실업률이 높아요. 그럼에도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베네수엘라 난민들이 페루로 밀려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들 중에는 월급 한 푼 없이 숙식만 제공해 줘도 일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요.

우루과이서 만난 페루 청년 루이스

상황이 이럴진대 당국은 단속에 손을 놓고 있단다. 그 결과 루이스 같은 젊은이들은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에서 별따기고, 구한다 해도 낮은 임금을 받으며 곤궁한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페루에서는 더 이상 미래를 꿈꿀 수 없다고 판단하자 결국 남미의 남쪽 끝으로 와서 불법 체류 신세에서 살 궁리를 찾고 있는 것이었다.

페루 타크나에서 버스를 타기 전 신분증과 티켓을 꼼꼼히 확인한다. 이동학 작가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남미는 유럽연합(EU)처럼 신분증을 가지고 있다면 국경 출입에 제한이 없었고, 일자리를 얻는 것도 같은 언어 문화권(멕시코를 포함한 중남미 지역은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프랑스령 기아나를 빼곤 대부분 스페인어를 쓴다)이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로부터 경제 난민이 퍼져 나오면서, 다른 나라를 출입할 때 까다로운 절차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어려운 남미 국가들의 경제가 베네수엘라를 시작으로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으면서 도미노 난민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남미 국가는 오래전부터 이민을 받아들이면서 다문화 다인종으로 살아왔고, 남미 특유의 개방성과 맞물리면서 차별이나 인종 갈등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부의 편중과 갖가지 부정부패로 사회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낙오해 버린 시민의 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났고, 난민 수십만 명이 밀고 들어오면서 주택, 교육, 치안, 일자리, 식료품, 의료 등이 시급한 문제로 떠올랐다.

특히 주택이나 임시 숙소 등도 머물 곳을 제공할 여력이 없어 길거리에 텐트를 치거나 노숙을 하는 이들도 증가하고 있다.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 도심에는 노숙인 수가 해마다 늘고 있다. 특히 이들의 평균 연령이 38세로 젊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동학 작가

우루과이엔 2019년 수도인 몬테비데오에 거주하는 노숙인을 전면 조사한 결과 2,038명으로 1,651명을 기록한 2016년에 비해 23.4%나 증가했다.

이들의 평균 연령이 38세일 정도로 매우 젊다. 또한 통계청 발표 결과 26만1,000명가량이 알코올 의존증 문제를 겪고 있고 이는 2019년 총인구 348만 명의 7.5%에 달한다.

우루과이 정부는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동시에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현실은 적은 소득과 이중 노동에 시달리는 사례들이 많아졌다. 노동 시간을 줄이고자 했으나 역으로 더 많이 일하는 결과가 만들어졌고, 노동 시장에서 이탈하는 현상이 난민 사태와 겹쳐 나타났다.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 도심에서 오래된 도시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건물들과 그림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동학 작가

가방끈이 길거나 똑똑한 젊은이들은 경제 상황이 좋거나 임금을 더 주는 남미의 다른 나라나 영어권인 미국, 스페인이 있는 유럽 등으로 빠져나간다.

농축수산업을 바탕으로 한 서비스업과 제조업도 관련 품목이 수출에 타격을 받으면 국내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 영향을 받는 취약한 구조다.

이들은 오래전에 하루 8시간만 일하는 노동 제도를 이뤄냈고, 그보다 더 적은 시간제 일자리도 있지만, 투잡과 스리잡을 뛰는 것이 흔한 일이 됐다.

이유는 최저임금이 매우 낮고, 임금을 높이면 그 연쇄 작용으로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것이고 이를 버틸 재간이 없게 될 것이라는 시각 때문이다. 결국 글로벌 기업 말고는 대다수 기업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한편 우루과이는 투자가 굉장히 꺼려지는 국가 중 하나다. 다른 남미 나라들과 비교해 부정부패가 적지만 왜 그런가를 살펴 보니 두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하나는 노동자의 권리가 강해서 기업 입장에서는 사람을 새로 뽑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행정 처리가 매우 느리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건 매우 어려운데, 정권을 잡은 좌파연합은 어려운 경제 상황을 돌파할 기회를 수출에서 찾고자 하지만 다른 나라와의 자유무역협정(FTA) 등 자유무역을 반대하고 있는 당내 그룹들이 있어 이 역시 쉽지 않다.

그러는 사이 젊은 인재들은 계속 나라를 떠나고 있다.

불안에 치안에 걱정 커지는 우루과이 사람들

우루과이 공립대 경제학과에 다니는 파비안(Fabian)이 우루과이 일자리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동학 작가.

갈수록 나빠지는 경제 상황 못지않게 심각한 것이 바로 치안이다.

우루과이는 중남미에서 칠레와 함께 치안과 경제가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나라였기에 시민들의 불안감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었다.

몬테비데오에서 만난 우루과이 청년 파비안(Fabian)의 집에 방 한 칸을 얻을 수 있었다.파비안은 우루과이 공립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인데, 그의 집은 몬테비데오의 시내에 있는 아파트였다. 그런데 파비안은 몇 개의 골목을 찍어 주며 그쪽은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우루과이도 안전지대가 아니며, 특히 몬테비데오에서는 여행객과 현지인을 가리지 않고 소매치기, 강도, 폭행 등의 사건이 매일 도시 안에서 일어난다고 했다.

특히, 현지 경찰에 따르면 2018년 상반기에만 도난 사건 7만2,036건, 강도 사건 1만4,459건, 살인 사건 218건이 일어났는데, 이는 2017년 상반기 대비 살인 66.4% , 강도 55.8%, 절도 26.9% 증가한 수치다.

파비안에게 불안해서 어떻게 사느냐 물었더니, 정부에서 경찰관 수를 늘리는 등 대책을 내놓는다고는 하지만 실제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며 결국 개인이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폭력 조직이 활개를 치거나 총기 사고 역시 자주 일어나 목숨조차 운명에 맡겨야 한다는 씁쓸한 얘기도 했다.

2018년 우루과이의 범죄율. 자료: 우루과이 내무부

2019년 3월에 우루과이 내무부가 발표한 2018년 범죄율 보고서에 따르면 살인율과 강도율은 전년과 비교해 거의 두 배 증가했다.

우루과이 시민들이 왜 치안을 심각한 문제로 꼽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이 수치는 현재 국가 소요 사태라 할 수 있는 베네수엘라를 비롯, 부정부패와 마약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브라질과 콜롬비아 다음인 4위에 해당한다.

경찰 수사 결과도 414건의 살인 사건 중 진상이 파악된 사건은 51.4%에 불과하고, 나머지 절반은 미제 상태다. 여기에 실종 사건도 해마다 증가해, 2017년 2,493건이었던 실종 신고는 2018년 3,332건으로 33% 증가했다. 보통 실종자 스스로 연락을 끊고 숨어 버리는 경우가 많고 이들은 며칠 지나면 해결되지만 2018년 신고된 45건은 여전히 미제 사건으로 남아 실종자 가족들이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우루과이에서 살인과 강도가 크게 늘자 정치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논쟁 주제로 떠올랐다.

야당들은 집권 여당의 무능을 지적하며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집권 여당은 살인 사건의 원인을 조직 범죄 집단 사이의 다툼 47%, 가정 폭력 12%, 강도 11%, 우발적 다툼 12%, 원인미상 15%, 기타 3%로 유형화하며, 경찰력을 늘리고, 좋은 장비를 지급하는 등 범죄에 대한 대처를 강화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살인 등이 늘어나는 것은 총기를 소유한 사람이 많고, 총기로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기 쉽다는 특성 때문이다. 2018년 상반기 강도율 신고는 1만4,459건이었으며 이 중 총기를 이용한 강도 사건은 69%를 차지했다. 살인 사건 중 총기에 의해 일어난 경우가 무려 72%에 달했다.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 해양박물관 인근 방파제에서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다. 이동학 작가.

우루과이 내 민간인의 총기 보유수는 119만8,000정으로 추정되며, 이 중 등록된 수는 60만5,313정으로 절반에 가까운 59만2,687정이 미등록 상태다.

이는 어림잡아 우루과이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총기를 소지하고 있음을 뜻하고, 국민 100명당 총기 보유율이 34.7로 미국(120.5정), 예멘(52.8정), 몬테네그로와 세르비아(39.1정) 등에 이어 캐나다(34.7정)와 공동 5위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매우 높은 수치다.

우루과이는 이런 위험을 줄이고자 2014년 총기 소유와 휴대 및 판매를 규제하는 법을 만들었지만 총기 범죄가 줄기는커녕 늘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안한 사회에서 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개인의 안전을 스스로 지켜야 하고, 사실상 공공의 안전을 지키는 주체인 경찰과도 대등한 위치에 서게 된다.

마약 범죄를 일으키는 조직 폭력 단체가 활개를 치고 있지만 공권력이 이를 확실히 제압하지 못하는 우루과이의 치안 상태는 경제 실정과 맞물리며 점차 살기 어려운 환경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나마도 돈이 있는 시민들은 경찰의 출동을 기다리기보다는 민간 보안 업체를 고용하거나 보안 카메라를 집 주변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정열과 개방 그리고 혼돈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의 한 쇼핑몰(Tres Cruces Shopping) 앞 동상 넘어 우루과이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이동학 작가

신기하게도 유럽의 도시들에서 본 것 같은 양식의 건물을 가진 도시 몬테비데오는 남미의 거리를 걷는 것이 아니라 유럽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줬다. 그 건물들이 지어졌던 과거에는 유럽에서 대서양을 건너 온 이방인들이 위협이었다면 지금은 경제와 치안이라는 새로운 위기 요소가 국민들을 억누르고 있다.

초기 베네수엘라를 등졌던 시민들은 큰 나라들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로 가서 일자리를 구하고 그럭저럭 삶을 이겨나갔다. 반면 너무 늦게 떠난 이들은 국경이 닫히는 것을 경험하고, 신분증만으로 이동이 허용됐던 자유의 땅에 이제 더 이상 마음대로 오갈 수 없는 장벽이 생긴 것을 알아버렸다.

마테차를 함께 마셔주며 말 상대를 해준 루시아(Lucia)가 내게 해준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말은, 삶을 살아내기 어려워 페루를 떠나와 우루과이에서 미래의 계획표를 그리고 있는 루이스 했던 말과 똑같았다.

"저는 떠나려 해요. 여긴 미래가 없어요."

혼돈의 도시에 다시 햇볕이 비치길 간절히 소망한다. 모두 안녕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