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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AZ 접종 중단은 패착?... 백신 불신·코로나 재확산만 부추길라

입력
2021.03.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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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약품청, AZ· 혈전 인과관계 결과 발표
결과 상관 없이 한번 생긴 의심 해소 어려워
저조한 접종이 재확산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19 백신. AP 자료사진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19 백신. AP 자료사진

아스트라제네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유보한 유럽 각국의 결정은 패착일까. 일부 접종자에게서 ‘혈전(혈액 응고)’이 나오자 여러 나라들이 잇따라 접종을 중단했다. 하지만 이런 방어 조치가 과도한 백신 불신을 초래하고 3차 대유행만 부추길 것이란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잘못된 선택으로 부작용만 커질 거란 비판이다.

유럽의약품청(EMA) 안전성위원회는 18일(현지시간) 임시 회의를 열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혈전 발생과 관련해 “문제가 없다”는 내용의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달 7일 오스트리아를 시작으로 유럽 20여개국이 줄줄이 해당 백신 접종 중단을 선언했지만 인과 관계가 없다고 쐐기를 박은 것이다. 에머 쿡 EMA 청장은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과학적 입장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코로나19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에 안전하고 효과적인 선택지라는 사실”이라며 “실제 접종에서 나타난 면역효과가 임상시험 결과보다 높다는 점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다만, 혈소판 감소와 관련해 극히 드물게 발생한 일부 혈전 사례의 경우, 백신과의 연관성을 배제할 수 없어 추가 연구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공은 개별 국가로 넘어갔다.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등이 EMA의 최종 판단에 따르겠다고 밝힌 만큼, 각 나라마다 일시 중단됐던 접종도 조만간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미 잠깐의 접종 중단 조치에도 타격은 작지 않았다. 가장 큰 부작용은 불신이다. 사실 규명이 안됐는데도 정부가 지레 겁먹고 접종을 멈추면서 백신 신뢰에 생채기가 생겼고, 그렇지 않아도 더딘 접종 속도는 더욱 늦춰졌다. 한 번 뿌리 내린 의심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접종을 재개해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기피하는 여론을 뒤집기 어렵다는 의미다. 장루이 몽타스트뤼크 프랑스 툴루즈대 임상약리학장은 “한번 중단됐다 다시 승인된 약품이 널리 사용된 사례는 못 들어봤다”고 말했다.

게다가 시민들이 백신 접종을 망설이면 감염 상황은 당연히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인 미국과 달리 유럽연합(EU) 내 감염자 수는 지난 2주간 29%나 늘었다. 프랑스의 경우 이날 코로나19 신규 확진 환자가 3만8,000여명으로 지난해 11월 이후 가장 많았다. 이탈리아 역시 하루 사망자가 연초 대비 가장 높은 500명을 기록했다. 독일 베를린 샤리테병원의 감염병 전문가 크리스티안 드로스덴 박사는 “접종 일시 중단은 코로나19 피해를 키울 수 있다”고 단언했다.

화살은 접종 중단을 섣불리 결정한 정치권으로 향하고 있다. 백신 접종과 혈전 발생간 상관관계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부작용에 따른 역풍을 두려워한 정치인들이 몸을 사리면서 불안감만 부채질했다는 것이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유럽에서 정부의 백신 관리 실수 탓에 피할 수 있었던 ‘제3의 물결’을 허용했다는 분노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 안에서는 정부의 백신 중단 결정을 주도한 옌스 슈판 보건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더 큰 우려는 이번 사태가 부작용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백신 접종을 멈추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스티븐 반 구흐트 벨기에 정부 바이러스질환 책임자는 “이런 접근 방식을 취할 경우 돌발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접종은 중단될 수밖에 없다”며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설상가상으로 유럽에서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공급 갈등까지 다시 돌출했다. 이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우리는 영국에서 백신이 오길 기다리고 있다”며 EU 회원국 국민들을 위해 영국으로 가는 백신 수출을 금지하겠다고 위협했다. 미국산 백신은 순조롭게 EU로 수입되고 있지만 영국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공급 물량이 달려 EU의 접종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는 설명이다. 이에 영국은 “비(非) 민주 국가들이나 구사하는 ‘벼랑 끝 전술’”이라고 맞받아치면서 대립의 골은 계속 깊어지고 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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