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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3∙7제, 4∙6제… "비밀계약서 쓴 업자들 하루에 묘목 수천 그루 뚝딱 심었다"

입력
2021.03.17 04:30
수정
2021.03.17 07:1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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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오송읍?동·서평리 일대, 전답마다 묘목 즐비
농민은 토지, 업자는 묘목 제공하고 보상 이익 나눠


15일 오후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동?서평리 일대의 메타세쿼이아 묘목 모습. 옆에서 토지 작업을 하던 인부들은 "며칠 전에 심은 묘목"이라고 말했다. 우태경 기자

15일 오후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동?서평리 일대의 메타세쿼이아 묘목 모습. 옆에서 토지 작업을 하던 인부들은 "며칠 전에 심은 묘목"이라고 말했다. 우태경 기자

"아휴… 우리 동네 사람들 얘긴데, 말해도 되나 몰라. 나무는 업자들이 심었어. 3, 4년 전부터 동네를 휘젓고 댕겼지. 가만 있어도 돈 벌게 해주겠다고..." - 동평리 주민 A씨(여ㆍ70대)

15일 찾은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동평리와 서평리. 평온한 농촌 논밭에는 메타세쿼이아, 이팝나무 묘목들이 빽빽하게 심겨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았는지 묘목 높이는 1m가 되지 않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내부 정보로 땅을 산 뒤 지가 상승은 물론, 더 많은 보상금을 타내기 위해 썼다는 '묘목신공' 흔적과 비슷했다.

하지만 투기 흔적은 쉬 보이지 않았다. 토지등기부등본은 이들 토지주 모두 지역 주민이고, 대부분 20, 30년씩 보유했거나 상속받은 땅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갓 심은 묘목을 정비하고 있던 인부도 취재진이 붙자, '무슨 구경이라도 났냐'며 시선 한번 보낼 뿐, 덤덤히 하던 일을 이어갔다. 2018년 정부가 국가산업단지 예정지로 발표한 전후로 투기꾼들이 휩쓸고 갔다는 곳이지만 평온 그 자체였다. 현지 부동산 업계 관계자도 "인근에 이미 1·2 바이오산업단지가 생겼고, 이곳에도 결국 3산업단지가 들어설 것이란 말들이 많았다"며 "너무 알려진 이야기라 공무원, 공공기관 직원들이 사전 정보를 이용해 투기했다는 말은 그야말로 '카더라통신'"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마을로 들어가자 소문의 실체가 드러났다. 동평리 마을에서 만난 A씨는 한참을 주저하다가 기자에게 입을 열었다. "동네서 암암리에 있었고, 지금도 있다"는 은밀한 거래 이야기였다. 요약하면 주민들이 땅을 대고, 조경업자와 결탁한 투기꾼들이 나무를 심어 타낸 보상금을 나누는 '비밀계약서'를 동네 사람들이 쓴다는 것이다. 수익 6, 7할을 업자가 가져가고 나머지를 토지주가 챙기는 식이다. A씨는 "그걸 3·7제 또는 4·6제로 부른다"고 했다.

또 다른 주민 B씨도 "결국 거부했지만, 나도 3년 전쯤 제안받은 적이 있다"며 "한번 하기로 하면 굴착기, 트럭으로 무장한 업자들이 달려와서 하루에 묘목 수천 그루를 뚝딱 심는 것도 봤다"고 말했다. 대부분 별도 관리를 하지 않아도 잘 자라는 수종이었다. 인근 조경 업체에 따르면 이팝, 메타세쿼이아 묘목은 식재비를 포함, 그루당 3,000원 수준이고, 나중에 보상은 2만원 정도 받는다. 이 업체 관계자는 "두께가 좀 나가는 것은 7만원도 보상받는다"고 말했다.

사실 이는 날로 고령화하고 있는 농촌지역 주민들의 이해관계와도 맞아떨어지는 '사업'이었다. 청주지역 건설업자 유모(56)씨도 이 같은 이야기에 대해 "농사짓기 힘든 고령의 지주는 '가만 있어도 돈 된다'는 말에 서로 하겠다고 나설 정도였다"며 "업자들이 전국적으로 움직인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전했다. 전국 개발예정지 지역의 묘목은 모두 보상금을 노린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3·7제, 4·6제 계약의 결과물은 들판 곳곳에서 확인됐다. 오송읍 한 조경업체 대표는 "예전엔 주민들이 정원 가꾸는 용도의 조경수만 조금씩 사 갔다"며 "2017년 대선이 있은 뒤로는 가로수 묘목들이 많이 팔렸다"고 말했다. 몸 움직일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직접 구입해 자신의 땅에다 심었다는 것이다. 들판에 빽빽하게 묘목이 선 사진을 본 조경업체 대표는 "토지주가 지역 주민이라고 해도 이것은 이미 보상의 맛을 본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거래 기록이 남는 토지거래를 하지 않고서도 큰돈을 벌 수 있는 투기가 횡행하고 있지만, 문제는 적발과 처벌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묘목밭이 서류상으로는, 장기간 농사를 지은 주민들의 것이고, 설사 보상을 노린 식재였다 하더라도 문제 삼을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평생 벼농사만 지으며 살아왔다"는 70대 한 주민은 "동네가 투기로 뒤숭숭하니 마음이 좋지 않다"며 "꼼수를 부려야 돈을 벌고, 양심껏 농사짓는 우리는 멍청이가 된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15일 오후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동?서평리 일대를 촬영한 사진. 뚝방길 좌우에 묘목이 심어진 전답이 위치해 있다. 모두 2019년 11월에 촬영된 네이버 지도 로드맵에서는 묘목이 심어져 있지 않은 필지다. 우태경 기자

15일 오후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동?서평리 일대를 촬영한 사진. 뚝방길 좌우에 묘목이 심어진 전답이 위치해 있다. 모두 2019년 11월에 촬영된 네이버 지도 로드맵에서는 묘목이 심어져 있지 않은 필지다. 우태경 기자


묘목 식재 전. 네이버지도 캡처

묘목 식재 전. 네이버지도 캡처




청주= 우태경 기자
청주= 한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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