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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 투기로 35억 벌었는데 벌금 1000만원… 투기 부추기는 농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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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2014년 농업법인을 설립해 충남 당진에서 1년간 9차례나 허위로 농지취득 자격증명서를 발급받아 농지를 사고팔았다. 농사 지을 의사가 없었지만 매매를 통해 차익을 볼 목적으로 농지를 구입한 것이다. A씨 지인 두 명도 충남 당진과 경기 평택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농지 매매를 했다. 세 사람은 재판에 넘겨졌지만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세 사람은 2015년에도 농업법인 3개를 각각 설립해 25회에 걸쳐 부당하게 농지를 매수했다가 다시 법정에 섰다. 법원은 이들이 반복적으로 범행을 저질러 죄질이 좋지 않다고 봤지만 취득한 이득이 거액이 아니란 점을 고려해 재차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B씨는 농업법인을 인수한 뒤 2013년부터 2년 동안 경북 포항에서 농지 2만6,716㎡를 58회에 걸쳐 사고팔았다. 매입금액은 20억 원이고 매도금액은 55억 원으로 2년간 매매를 반복해 무려 35억 원의 시세 차익을 올렸다. B씨도 허위로 농지취득 자격증명서를 발급받았기 때문에 애초부터 농사일은 고려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법원은 그에게 징역 1년에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다. 투기 규모가 커서 엄단이 필요하지만 B씨가 반성하고 있다며 형량을 낮게 잡았다.
'농지법이 투기를 조장한다'는 지적이 과장이 아니란 점이 농지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한국일보가 2013년 1월 1일부터 올해 3월 11일까지 농지법 위반으로 확정 판결을 받은 1,226건의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대한민국 농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투기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헌법과 농지법에선 '농지는 자기의 농업 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는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천명하고 있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판결문에는 농지취득 자격증명 발급 절차의 허술함이 여실히 드러났고, 솜방망이 처벌로 투기 예방 효과가 없다는 점도 확인됐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농지를 투기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의 신도시 예정지 투기 사태로 국민 분노가 치솟고 있는 상황에서, 농지 소유에 자격 제한이 없는 '느슨한 농지법'이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란 지적이 나온다.
농지법 위반 판결문 1,226건을 범죄 유형별로 살펴보면 90%가 넘는 1,104건은 사안이 비교적 경미한 농지 전용·형질 변경 위반이었고, 투기로 볼 수 있는 취득 목적 위반은 75건(6.1%)에 불과했다. 사전에 관청 허가를 받아야 하고 쉽게 눈에 띄는 농지 전용·형질 변경과 달리, 투기 행위는 처벌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이는 농지취득 자격증명 발급 체계가 느슨한 영향이 크다. 농지를 취득하려면 관청에 농업경영계획서 등의 서류를 제출해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농업경영계획서에는 소재지, 지번, 지목, 면적, 영농 거리, 재배 예정 작목, 영농 착수 시기 등을 기입하게 돼있지만, 계획서대로 이행되는지 사후에 확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판결문에도 농업경영계획서에 허위사실을 버젓이 기재하고도 별다른 의심을 받지 않고 수십 차례나 농지취득 자격증명을 발급받은 사례가 여러 건 나온다.
더 큰 문제는 계획서와 다르게 농지를 사용하다가 적발돼도, 관리·감독하거나 처벌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찮다는 점이다. LH 직원들처럼 농업경영계획서에 벼농사를 하겠다고 신고하고, 실제론 버드나무 묘묙을 심어도 해당 행위를 '투기'로 간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농업개혁위원 임영환 변호사는 "계획서와 전혀 다른 농업행위를 하면 정황상 투기 목적이 다분하다고 봐야 한다. 그렇지만 계획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둘러대고 법적으로 진위를 파악하는 것도 어려워 법적 처벌은 쉽지 않다"고 밝혔다.
투기 목적으로 농업취득 자격증명을 부당하게 발급했다고 판단해 재판까지 간 경우는 지방자치단체가 명백한 증거를 갖고 고발장을 제출한 경우다. 그러나 투기꾼을 어렵게 법정에 세워도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농지법 위반의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이 부과되지만, 본보가 분석한 판결문 1,226건 중 집행유예(291건)나 벌금형(768건)이 86.3%를 차지했고 실형이 선고된 경우는 131건(10.6%)에 불과했다. 실형이 선고된 131건 중에서도 114건은 절도, 업무 방해, 산지관리법 위반, 폐기물관리법 위반 등 두 가지 이상 혐의가 함께 적용된 경우이고, 농지법 위반만으로 실형이 선고된 사례는 17건(1.3%)뿐이었다.
실형을 선고받아도 실속은 챙길 수 있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시세 차익을 몰수할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C씨는 2017년 부동산컨설팅 회사를 설립해 직원 명의로 경기 시흥시 농지 1,856㎡를 매입했고 이 과정에서 허위로 농지취득 자격증명을 발급받았다. 그는 아들 명의로도 컨설팅회사를 만들어 차명으로 시흥시의 또 다른 농지 3,974㎡를 매입했다. 이런 방식으로 매입한 농지를 '쪼개기' 매각해 20억 원 이상의 차익을 올렸지만, 법원은 C씨에게 고작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정부는 LH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자 투기 예방책으로 1000㎡ 미만 농지를 매입할 때도 영농계획서를 받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농업경영계획서를 발급받아 버젓이 투기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이 방법만으론 투기 근절이 쉽지 않아 보인다.
전문가들은 땜질식 대책보다는 농지법 개정 등 과감하고 적극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농지법 전문가인 사동천 홍익대 법학과 교수는 "지금처럼 서류만 구비하면 농지 매입을 손쉽게 허용해 줄 게 아니라 공신력 있는 농지거래위원회를 만들어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임영환 변호사는 "누가 투기를 했는지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여야 이해관계에 따라 정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왜' 이런 투기가 가능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지법 위반사범에 대한 처벌 강화 필요성도 제기된다. 임영환 변호사는 "투기 목적으로 매입했다가 처벌받으면 해당 농지를 무조건 처분토록 하는 강제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사동천 교수는 "명의 제공자가 실제 소유자에게 보유 재산을 반환하지 않아도 되는 '불법원인급여'를 농지법에 적용하면 차명 투기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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