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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임의 정신을 구현한 얼굴

입력
2021.03.22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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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 마르셀 마르소

마이미스트 마르셀 마르소의 분칠한 얼굴은 표정연기의 효과를 넘어 피부색의 차이를 지우고자 했던 '백지'의 의미였을지 모른다. 위키피디아

마이미스트 마르셀 마르소의 분칠한 얼굴은 표정연기의 효과를 넘어 피부색의 차이를 지우고자 했던 '백지'의 의미였을지 모른다. 위키피디아


무언의 광대 '피에로(Pierrot)'에게 '빕(Bib)'이라는 고유명사를 부여한 프랑스의 세계적 마이미스트 마르셀 마르소(Marcel Marceau, 1923.3.22~ 2007.9.22)는 '마임을 한 마디로 정의해 달라'는 한 기자의 요청에 '당신은 인생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마임이 곧 자신의 삶이었다는 진부한 말이 아니라, 마임에 삶의 전모를 담고자 했다는 의미였다.

프랑스 레지스탕스로 2차대전을 치른 마르소는 1944년 8월 파리에 진주한 연합군 군인들 앞에서 생애 첫 공연을 펼친 이래 숨질 때까지 한 해 평균 200여 회 하얗게 분칠한 얼굴로 무대에 섰다. 전후 파리의 한 드라마학교에서 연기를 익히며 배우 겸 마이미스트 에티엔 드크루(Etienne Decroux)를 만나면서 대사 대신 침묵을 선택했고, 1947년 자신의 분신이자 대변인인 광대 '빕'을 창조했다. 그는 맨몸으로, 특히 얼굴 표정으로 희로애락의 다채로운 국면과 생로병사의 웅장한 사이클을 표현했다.

탈춤과 가면극이 몸짓의 표현력에 주목한 장르라면, 마임은 몸짓 위에 얼굴의 표현력을 극대화한 장르다. 마이미스트는 찰리 채플린이 활용한 장치와 소품 없이 오직 침묵으로, 때로는 보이지 않는 음악을 배경 삼아 무대에 선다. 시간·공간의 개별성, 역사·문화의 특수성을 초월하려는 고집이다. 나치수용소에서 아버지를 잃은 이 유대인이 얼굴에 바른 분칠도, 물론 피에로의 전통을 이은 것이면서, 민족과 혈통과 피부색의 차이는 무의미하다는 백지의 의미이기도 했을 것이다. 마임은, 몸짓과 표정은, 생물학적·문화적 차이를 초월한 만국 공통의 언어였다.

그는 뉴욕 브로드웨이를 비롯한 세계 무대를 누비면서 마임의 교과서를 새로 썼고, 1978년 파리국제마임학교를 열어 제자들을 양성했다. 커리큘럼으론 현대무용과 다양한 호신술, 펜싱 등이 기초과정으로 편성됐다. 그는 학생들과 함께 무언의 메시지를 아름다움으로 구현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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