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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젤의 비극, 디젤 엔진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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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등 세계 각국이 '탄소 제로' 목표를 잇달아 공표하며 내연차 수입, 판매, 등록 중단 시점을 앞당기고 있다. 앞서 2016년 노르웨이는 2025년 내연차 판매를 전면 금지하고 무공해 차량만 신규등록을 허용하는 법안을 마련했고, 수도 오슬로에 한해 2017년 디젤차 운행을 금지했다. 영국은 2040년 시행하려던 내연차 판매 금지 및 디젤차 고부담금 부과 정책을 2035년으로 앞당기기로 했다고 2019년 발표했다. 대한민국 정부도 지난해 말 2050년 탄소제로를 선언했다. 내연기관 중에서도 특히 디젤이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힌 건 인체에 유해한 질소산화물 때문이다. 2015년 폭스바겐의 '디젤게이트', 즉 유해가스 배출량 조작사건이 기폭제였다.
독일 기계공학자 루돌프 디젤(Rudolf C.K. Diesel, 1858.3.18~ 1913.9.29)이 1892년 특허를 얻고 5년 뒤 4행정 25마력 시제품을 선뵈던 당시, 디젤 엔진은 가히 문명의 미래였다. 단순한 구조와 디자인, 획기적 경제성과 효율은 미래 산업 동력으로 손색이 없었고, 40대의 디젤은 말년에 직접 엔진공장을 세워 재정난을 겪기 전까지 로열티 수입만으로 엄청난 부자가 됐다. 그는 땅콩기름 등 경유 외 다양한 오일로 작동하는 엔진을 개발하고자 했다.
자동차가 대중화하기 훨씬 전이었다. 그는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사가 1936년 45마력 4기통 디젤 승용차 '260D'를 출시하기 전인 1913년 벨기에에서 영국을 향해 해협을 지나던 증기선 '드레스덴' 선상에서 실종돼 약 한 달 뒤 숨진 채 발견됐다. 공식적으론 실족사였지만 숱한 의문이 제기됐다. 석탄-가솔린업계의 음모설, 영국 디젤공장 설립 및 영국 해군과의 협의를 앞둔 시점이었단 점에 착안한 국제 음모설이 예였다.
오염물질 배출량을 줄였다는 '클린 디젤', 식물성 팜유를 쓰는 '블루 디젤'로 부활을 기대하는 이도 있지만, 디젤 엔진은 발명가의 운명처럼 이미 식기 시작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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