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배신

입력
2021.03.15 04:30
26면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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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지의 비극’ 이론은 멋진 대상이라도 내 것이 아니라 여길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 잘 보여준다. 마을의 공유 초지에 사람들이 풀어놓는 소를 제어하지 못하는 순간, 초지는 망가지고 만다.

지난해 반짝했던 지방자치단체들의 ‘공공배달앱’이 점차 존재감을 잃고 있다. 작년 상반기 월 사용자 7만 명을 찍었던 전북 군산시의 ‘배달의 명수’는 지난달 3만2,000명이 이용하는 데 그쳤다. 서울의 ‘먹깨비’도, 이재명 지사 덕에 입소문을 탄 경기도의 ‘배달특급’도 올해 들어 이용자가 줄고 있다.

민간 앱(‘배달의민족’ 같은)의 횡포에 맞서 공공이 인프라를 깔고, 소비자와 가게 모두 수수료를 절약하자는 꿈은 멋졌다. 하지만 꿈이 현실이 되려면 연료(인센티브)가 필요했다. 한 가게라도 더 연결시키고 혜택을 짜내도 지자체 공무원 입장에선 생기는 ‘내 것’이 없다. 지역화폐를 사용하면 음식값을 더 깎아주는 장점도, 소비자에겐 지역화폐를 손에 쥐어줄 때뿐이다. 성과급을 연료 삼아 무한 진화하는 민간 앱의 편리함과 혜택을 계속 이기기 어렵다.

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일부 직원들은 공공에 봉사한다는 자부심보다 내 것에 관심이 컸다. 대놓고 법을 어기는 것도 아닌데, 그간 쌓은 지식을 활용한 투자는 오히려 땀 흘린 자의 보상으로 여겼을 것이다. LH의 업무는 당장 누가 대신하기도 어렵다. 가차명으로 투자해 놓은 직원은 콧노래를 부르고 있을 수도 있다. “해체 수준의 환골탈태(정세균 국무총리)”를 해 봐야, 결국 우리가 하게 될 일인데 앞으로 ‘내 것’은 계속 챙길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선출된 공직자들의 내 것 챙기기는 국민을 더 화나게 한다. “일벌백계가 아닌 일벌천계, 일벌만계로 공직사회에 도덕의 지엄함을 바로 세우겠다”고 했던 국회의원은 경기 화성 택지개발지구 바로 옆 그린벨트에 땅을 가지고 있었다. 변명이라도 안 하면 좋으련만, 문제가 불거지자 “여러 차례 매매를 시도했지만, 거래가 워낙 없다 보니 실패했다. 어떠한 시세 차익도 목표한 바 없다”고 또 염장을 지른다.

기술 발전 속에 이른바 플랫폼 산업이 커지면서 갈수록 승자독식 구조가 굳어질 거란 전망이 많다. 독점의 폐해에 맞설 공공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수익 극대화의 논리가 지배하는 부동산 시장에서도 공공은 서민의 보호자로 기능해야 마땅하다. 잔뜩 기대했던 공공에 무능과 사악함을 발견하니 배신감이 두 배, 세 배로 커진다.

역설적으로 걱정되는 것은 공공의 과잉이다. 적정 수준을 넘어선 공공 권력은 언제든 더 노골적으로 내 것을 탐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크게 늘어난 공무원, 공공기관 직원의 머릿수뿐이 아니다. 최근 논란이 일었던 ‘조롱글’에서 LH 직원은 “꼬우면 이직해” “공부 못해서 못 와놓고”라고 속내를 드러냈다. 젊은이들이 공공 분야 취업을 그저 ‘복지 좋고 잘릴 염려 없는’ 봉으로만 여긴다면 비대해진 공공은 오히려 사회에 해가 될 수 있다.

마을의 공유 초지는 적절히 관리될 때만 제 기능을 유지한다. “발본색원” “패가망신”을 아무리 외쳐봐야 공공의 역할과 범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없이, 엄포만으로 비극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상은 쉽게 현실이 되지 않는다.


김용식 경제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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