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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 M&A가 된 세상

입력
2021.03.12 20:00
22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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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남자 친구와 헤어진 친구는 말했다. “이제는 결혼이 M&A(인수·합병) 같아. 기초 자본금이 작으면 수익률이 좋아도 버는 돈은 얼마 안 된단 말이야. 나와 비슷한 정도로 자본을 댈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 두 배로 투자하고 싶어.”

비단 내 친구뿐만 아니라 결혼의 '자산 결합화'는 현 젊은 세대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직장인들이 많이 보는 ‘블라인드’ 같은 익명 커뮤니티에는 내 자산과 스펙은 얼마고 상대방은 얼마인데 이 만남이 급이 맞냐는 글이 넘쳐난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주제가 온통 부동산, 비트코인, 주식뿐이다. 옛날에는 연애 이야기, 세상 사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멀어진 느낌이다. 노동이 아니라 돈이 돈을 벌다 보니 직장은 대출받으러 다니는 곳으로 전락했다. 애초에 가진 자본의 차이가 넘기 힘든 결과의 차이를 만든다. 이번 주에 SK바이오사이언스가 청약 신청을 받기 시작하자 어서 너도 넣으라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지난 1월에 정점을 찍고 하락한 주식 시장에 돈이 물려 있던 나는 차마 손절 못 하고 청약에 돈을 다량 넣지 못했다. 대신에 비트코인에 투자했던 돈을 꺼내 청약을 넣었는데 수백만 원밖에 안 되는 금액이었던 터라 단 1주가 배정되었다. 공모가가 6만5,000원인 만큼 ‘따상’ 한다고 해도 노력 대비 푼돈의 수익이다. 그래도 비트코인을 개당 6,100만 원 선에서 익절한 것에 기뻐했으나 곧 6,400만 원까지 오르는 것을 보고 괜히 뺐다며 후회했다. 매도 타이밍은 정말 어렵다. 오르면 오르는 대로, 내리면 내리는 대로 시점을 못 잡아서 안달이다. 그러다 물려 곡소리가 나곤 한다. 이래서 개미는 돈을 벌기가 어렵다고 한 건가.

주식 시장이 횡보하자 동학 개미들은 코인 시장으로 몰려갔다. 작년 주식시장 대상승세에 과감하게 투자한 사람들은 돈을 크게 벌었다. 그 시장을 타지 못했고 부동산 시장에서도 소외된 이들은 특히 절박하다. 자산 폭등과 현금 가치 하락의 시대에 가만히 앉아 ‘벼락 거지’가 된 느낌 때문에 이번에도 뒤처질 수는 없다고 코인에 베팅하고 있다.

과열된 시장은 국제 가격에 비해 한국 시장 가격이 높은 ‘김치 프리미엄’을 낳을 정도이다. 물론 코인의 인기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지만 특히 이 나라에서 반응이 뜨거운 것은 부동산에서 기인한 급격한 자산 격차로 인해 뒤처짐에 대한 공포가 유달리 커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 젊은 세대를 가장 잘 규정하는 단어는 ‘두려움’이라고 생각한다. 나만 집이 없을 수 없다는 두려움, 나만 뒤처질 수 없다는 두려움. 얼마 전에 나 포함 친구 다섯 명과 이야기를 했는데 세 명이 집이 있었다. 돈을 유달리 많이 모은 것은 아니었는데 저평가된 지역을 찾아서 대출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똑똑하게 샀더라. 내 옆 친구들도 유주택자라니. 나만 뒤처질 수 없다는 두려움을 강하게 느꼈다. 그래서 주말에는 친구들과 의기투합하여 '임장'을 다녀오기로 했다. 부동산에 미리 연락을 했고 대출금 조달 계획에 세금 문제까지 공부 중이다.

“2년 실거주 채우고 나 정도는 가져오는 남자랑 결혼해서 상급지로 이동했으면 좋겠다.” 유주택자 친구가 읊조린다. 그런데 우린 이제 순수한 사랑은 할 수 없는 걸까? 현실이 사랑을 죽였네. 시대가 씁쓸했다.



곽나래 이커머스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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