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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여섯 알에 포장쓰레기 14개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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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사지 않을 권리] <6>기념일용 초콜릿·사탕
기후위기와 쓰레기산에 신음하면서도 왜 우리 사회는 쓸모없는 플라스틱 덩어리를 생산하도록 내버려 두는 걸까요. ‘제로웨이스트 실험실’은 그동안 주로 소비자들에게 전가해온 재활용 문제를 생산자 및 정부의 책임 관점에서 접근했습니다.
매년 봄이 시작될 무렵이면 거리에서 하트 모양 상자, 초콜릿 꽃다발, 곰인형이 든 과자바구니 등을 무수히 볼 수 있다.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와 3월 14일 화이트데이를 맞이해 편의점 앞에 진열된 화려한 선물세트다.
선물에 어느 정도의 포장은 불가피하지만, 초콜릿 여섯 알에 14개의 포장 쓰레기가 나오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은 편의점ㆍ제과점에서 파는 밸런타인데이 및 화이트데이 선물 8개를 뜯어, 분석해봤다.
각 제품 무게에서 포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40%에 달했고, 포장 쓰레기도 평균 5.4개가 발생했다. 대부분이 환경부가 정한 포장 기준을 어기고 있었지만, 단속은 없었다.
분석 제품과 구매처는 다음과 같다. ①로쉐플라워10입(CU) ②위토스디럭스골든(파리바게뜨) ③에이스부케(GS25) ④로쉐트라이온3구(세븐일레븐) ⑤스윗데이(이마트24) ⑥에스더버니메가롤리팝(GS25) ⑦미니 화환(이마트24) ⑧츄파츕스가방(GS25). 일부 제품은 편의점 4사에 모두 유통되고 있다.
환경부의 ‘제품의 포장재질ㆍ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제품포장규칙)에 따르면 제과·선물류(종합제품)의 포장 횟수는 2차 이내여야 한다. 또 ‘포장공간비율’도 전체 포장 중 제품 및 필요공간 부피를 뺀 빈 공간이 20% 이하(종합제품은 25% 이하)여야 한다.
2차 이내 포장기준을 지킨 건 ⑧번(2차) 단 한 제품. 환경부 규칙은 초콜릿 알 자체를 감싸는 낱개 포장과 내용물이 흔들리지 않도록 넣는 고정재를 포장 횟수에서 제외해 주는데, 이를 빼더라도 대부분 포장 횟수가 3차를 넘었다. 평균 포장 폐기물(낱개 포장은 제외)이 5.4개에 이르렀다.
③번의 포장쓰레기가 14개로 가장 많았다. 4차 포장이 된 제품이다. 길이 35㎝, 지름 22㎝의 큼직한 꽃다발 모양이며 비닐 3장과 꽃다발의 뼈대가 되는 묵직한 플라스틱으로 구성됐다. 꽃다발 속을 채운 꽃과 초콜릿 뚜껑조차 모두 플라스틱이다. 초콜릿은 단 여섯 알.
①, ②번은 4차 포장으로 보이지만, 환경부 고시에 따르면 3차다. 고정재는 포장 횟수에 포함하지 않기 때문. 내용물의 부스러짐 방지 및 자동화를 위해 받침 사용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①번에서는 5개, ②번에서는 4개의 포장쓰레기가 나왔다.
④, ⑥번에서도 각각 5개의 쓰레기가 나왔다. 길쭉한 꽃다발인 ④번은 비닐과 조화 등 쓰레기가 대부분이고 내용물은 초콜릿 단 세 알뿐이다. ⑥번은 큰 막대사탕에 15개의 작은 막대사탕을 담았는데, 포장 틀에 길이 34㎝, 지름 11㎝의 플라스틱이 쓰였다.
⑤, ⑦번에서 나온 포장은 4개(과자별 봉지포장과 내용물 중 일부인 곰인형과 마스크 제외)다. 과자 바구니를 비닐로 감싼 ⑤번의 내용물은 봉지과자 4개, 막대사탕 4알 그리고 곰인형. 과자 하나를 열어보니 트레이가 깨져 있다. 3중 포장이 무색하다. 거대한 화환모양 종이박스인 ⑦번에는 8종의 과자와 마스크, 곰인형이 들어 있다. ⑦번 중 종이ㆍ비닐로 이중포장이 된 빼빼로는 3차 포장이고, 나머지는 2차 포장이었다.
환경부의 포장공간비율 간이측정방법에 따라 ①,②번의 빈 공간을 확인해 봤다. ①,②번만 측정한 이유는 상자형인 두 제품과 달리 나머지 제품은 생김새가 다양해 측정에서 오류가 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측정식은 다음과 같다.
포장공간비율=(포장용적-제품용적)/포장용적×100
포장용적=(가로-2(10-세로 두께)×0.6)(세로-2(10-가로 두께)×0.6)×높이
제품용적=(가로+5)(세로+5)(높이+5)×가산 공간 5㎜
측정 결과 ①번의 포장공간비율은 무려 68.4%, ②번은 52.9%다. 두 제품처럼 고정재를 사용한 경우 제품 용적 측정 시 가로ㆍ세로ㆍ높이에 5㎜를 더한다. 고정재를 제품 보호용으로 간주해 포장공간비율에서 제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빈 공간이 많은 것은 역시 화려한 포장 탓이다. ①번은 밑바닥에 아예 텅 빈 상자가 놓인 형태다. ②번 역시 고정재를 뺀 상자 안에 초콜릿을 넣으면 겨우 반을 채운다.
박스를 덧대거나 고정재를 쓰는 대신 과자 크기에 딱 맞는 상자를 써서 내용물을 보호할 순 없을까. ①번의 포장을 맡은 Q사 관계자는 “고급 초콜릿을 선물하기 위한 제품이기 때문에 고정재를 사용해서 정리해야 전달자로서도 진정성이 커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②번의 포장ㆍ유통업체 S사도 “선물이라는 걸 감안하면 실제 빈 공간은 크지 않다”고 말한다.
엄연히 환경부 고시를 위반하고 있지만, 거의 단속되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에 단속권한이 있지만 명절기간 외에는 거의 단속을 하지 않아 실제 검사를 받는 경우가 드물다. 실제 Q사와 S사 모두 “해당 제품에 대해 신고가 들어온 적이 없다”고 말한다. 2019년 포장공간기준 위반이 의심돼 검사명령을 받은 것은 1,650건에 불과했다.
각 제품의 무게 중 포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40.2%에 달했다. 포장 쓰레기가 가장 많았던 ③번은 전체 무게(249g)에서 포장(173g)이 69.5%나 차지했다.
③,④번 같은 꽃다발형은 내용물에 비해 포장이 압도적이다. ④번은 무게로만 보면 전체(58g) 중 포장(20g)이 34.5%지만, 개수로 따지면 내용물 대비 포장이 결코 적다고 볼 수 없다.
앞서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은 환경부의 고시를 그대로 적용해 꽃모양 장식도 포장으로 집계했지만, 실상은 정부 규제를 피할 것으로 보인다. “꽃의 기능이 있다면 과자뿐 아니라 꽃다발 전체를 하나의 상품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한국환경공단의 해석. “소비자들 중에는 꽃다발을 받아서 의미를 두고 보관할 사람도 있는 만큼 이를 모두 폐기물로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③,④번에 쓰인 비닐, 조화 모두 포장이 아니라는 것.
하지만 ③번은 초콜릿을 빼낼 경우 접착제가 그대로 드러나고, ④번은 초콜릿을 먹기 위해 해체가 불가피하다. 보관 가치가 떨어져 보이지만 ‘소비자의 주관’이라는 모호한 기준 탓에 규제에 맹점이 생겼다.
두 번째로 포장 비중이 큰 건 ①번이다. 전체 중량 239g 중 포장(113g)이 47.2%다. 제품 가격 1만8,000원을 무게에 적용하면 이 중 8,496원을 포장재 값으로 낸 셈이다. ①번의 내용물은 초콜릿 10알. 고정재에 꽃장식 6개가 자리를 차지하며 포장 무게를 키웠다.
역시 고정재와 플라스틱 상자를 사용한 ②번도 전체 무게(494g)에서 포장(219g)이 44.3%를 차지했다. 포장의 대부분이 플라스틱인 ⑥번도 무게(210g) 중 포장(75g)이 35.7%였다. 부직포 가방으로 포장한 ⑧번은 포장(127g)이 전체(684g)의 18.6%로 가장 적었다.
⑦번과 ⑤번은 과자를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의 비중이 각각 41.5%(281g), 35.1%(80g)인데 이를 곧 포장 비중이라 할 순 없다. 환경공단은 두 제품에 포함된 곰인형이 “포장 아닌 상품”이라 정의했기 때문.
이 곰인형은 선물이라 보기에도 제품의 질이 아쉬웠지만, 인형이 클수록 과자의 양이 적어도 과대포장 비난을 피할 수 있는 셈이다.
편의점 업계는 올해 선물에 친환경 트렌드를 반영했다고 주장한다. “주력 상품에는 플라스틱ㆍ비닐 대신 종이박스 포장을 이용했다”(GS리테일) “재사용이 가능한 에코백 포장을 사용했다”(세븐일레븐)는 설명.
⑦번과 ⑧번이 그런 제품이다. 그런데 ⑦번 역시 플라스틱은 없지만 코팅종이 박스라 재활용이 어려웠다. 펼치면 길이 87.3㎝나 되는 큼지막한 종이가 그대로 일반쓰레기가 될 처지. ‘친환경’이라 치켜세우기엔 아쉬운 포장이다.
부직포 에코백으로 포장을 한 ⑧번도 친환경 상품이라 보기 어렵다. 2018년 덴마크 환경식품부 조사에 따르면 에코백은 최소 7,100번 재사용해야 비닐봉지를 덜 쓴 만큼의 효과가 있다. 에코백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상당하기 때문. 더구나 ⑧번은 재활용이 안 되는 부직포로 만들어진 만큼 말 그대로 버리지 않고 계속 써야만 환경보호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③,⑤,⑥번은 플라스틱과 비닐로만 포장됐다. ⑤번의 플라스틱 바구니와 ⑥번의 막대사탕 모형은 폴리프로필렌(PP) 재질로 재활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두 제품을 포장한 비닐에 대해서는 명확한 표기가 없었다.
③번의 플라스틱과 비닐 포장재는 모두 아더(other) 즉 합성 플라스틱이며 재활용이 어려웠다.
①,②,④번은 플라스틱 포장에 종이가 더해졌다. 그런데 3개 제품에 사용된 종이 모두 비닐 코팅이 돼서 재활용이 불가능했다. 그나마 ①, ②번의 플라스틱 박스와 고정재에는 페트(PET), 폴리스티렌(PS) 등 재활용 가능한 재질이 쓰였다. 다만 고정재에 염료가 섞이고 접착제가 남아 실제 재활용은 쉽지 않아 보인다. PS 역시 시장 규모가 작아 실질 재활용률은 낮은 편이다. ④번은 포장재로 PP재질의 비닐이 사용됐는데 가장 안쪽 작은 종이받침은 역시 코팅 종이로 재활용이 안 된다.
한 해에 발생하는 폐기물 중에서 포장 쓰레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35%에 이른다. 2019년 약 48톤의 폐기물이 발생했는데 이 중 16.8톤이 포장인 것.
각종 기념일 선물의 화려한 포장이 일조했다. 실제 기념일 시즌에 제과류 매출은 약 30% 뛰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밸런타인데이에도 GS25는 관련 상품 매출이 전년 대비 34.1%, 세븐일레븐은 25.1% 늘었다.
더욱이 기념일은 한철 장사여서, 팔리지 않은 제품들의 포장도 결국 쓰레기로 넘겨진다. 편의점 업계는 “수요를 예측해 한정량만 생산하되, 남은 건 개별 상품으로 나눠 판다”고 말한다. 포장을 풀어 내용물을 끝까지 소진한다는 건데, 이 경우에도 결국 사용하지 않은 포장이 그대로 버려진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기념일 선물을 배달하기 시작한 것도 문제다. GS25와 CU 등은 지난해 화이트데이 때부터 배달 프로모션을 하고 있다. 두 회사 모두 “사용자가 계속 늘고 있다”고 자랑하는 효자 상품. 하지만 선물 포장에 배달 포장이 더해져 쓰레기 양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소비자 모임 ‘지구지킴이 쓰담쓰담’의 허지현 대표는 “선물 포장을 포기할 수 없다면 가능한 한 재활용이 되는 재질로, 최소한의 포장만 하도록 엄격한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며 “기업도 질 낮은 화려한 포장에서 실속 있고 재사용 가능한 포장으로 선물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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