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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백신 사재기' 어느 정도길래… "당장 기부 시작해도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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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민이 먼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고, 여분이 생기면 세계와 공유하겠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수차례 공언한 이 약속을 지킬 생각이라면 지금 당장 실천에 옮기는 게 맞다. 미국은 이미 충분한 백신을 확보했으니 말이다. 유엔아동기금(UNICEFㆍ유니세프) 자료에 따르면 미국이 구매 계약을 맺은 백신은 18억1,900만명분으로, 인구(3억2,900만명) 대비 5.5배나 된다. 자국민에게 백신을 다 맞히고도 14억9,000만명분이 남는다. 그런데도 10일(현지시간) 존슨앤드존슨(J&J) 백신 1억명분 추가 구매를 지시했다.
‘백신 사재기’는 다른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캐나다는 인구 대비 6배 물량을 선구매했고, 이탈리아는 422%, 영국은 421%, 독일은 394%를 사들였다. 여기에 폴란드ㆍ스페인ㆍ프랑스(364%), 호주(345%), 멕시코(158%), 일본(124%), 그리고 앞의 미국까지 더해 주요 11개 나라에서 남는 백신 물량만 무려 29억명분에 달한다. 반면 방글라데시 9%, 파키스탄 4.8%, 우즈베키스탄 1.6% 등 가난한 나라들은 백신을 구경조차 못했다. “선진국이 당장 백신 기부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각국이 백신 제조사들과 구매 계약을 맺을 당시만 해도 어느 백신이 안전하고 효과적일지 모르니 우선 이것저것 다 사놓고 보자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여러 나라가 접종을 시작하자 대체로 종류를 불문하고 백신 예방효과는 어느 정도 입증됐다. 앞으로는 여분 처리 문제가 새로운 고민거리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현재 유럽은 백신 수출 금지까지 고려할 정도로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보건전문가들은 “물량이 남는 건 기정사실인 만큼 어떻게 공유할지 지금부터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빈국에 백신을 지원하는 공동구매ㆍ배분 프로젝트 ‘코백스 퍼실리티’의 공급 능력이 달리는 것도 한 가지 이유다. 코백스가 올해 안에 공급 예정인 백신은 20억도스, 고작 10억명분으로 주요 11개 나라에서 남는 물량보다도 적다.
복잡한 기부 절차 문제도 시급성을 더한다. 국제과학학술지 사이언스 보도에 따르면 이미 계약 완료된 백신을 다른 나라에 이전하려면 규제당국의 승인부터 백신 투약법과 관련한 제조사와 국가간 배상 및 법적 책임 문제까지 걸림돌이 한 둘이 아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보건부 차관보를 지낸 감염병혁신연합(CEPI) 니콜 루리 박사는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대유행 당시 미국의 백신 기부를 예로 들며 “백신을 싣는 목재 운반대 훈증소독 증명서를 받는 데만 2주 걸렸다”고 말했다. 이렇게나 절차가 까다로우니 당장 기부 준비를 시작해도 늦다는 것이다.
한때 코백스와 선진국 간 기부 논의도 이뤄졌지만 변이 바이러스 출현 이후 중단됐다. 어느 백신이 변이에 효능이 있는지 알 수 없고 추가 접종이 필요할 수도 있어서다. 게다가 나날이 심해지는 ‘백신 이기주의’ 탓에 이제는 기부라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워졌다. 영국 연구지원 기관 웰컴트러스트의 감염병 전문가 제러미 파라 박사는 “백신 물량을 많이 확보하고도 공급 차질을 빚고 있는 국가에서 기부 문제를 언급하기는 정치적으로 민감할 것”이라고 짚었다.
그래서 선진국들이 하는 말이 “자국민에 백신을 다 맞히고 남으면 주겠다”는 건데, 감염병의 완전한 종식은 빈국 국민들까지 백신을 다 맞아야만 기대해 볼 수 있다. 숨야 스와미나탄 세계보건기구(WHO) 수석과학자는 “전 세계가 공평하게 백신을 접종해야 변이 확산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며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보호받지 않으면 세계 경제 회복도 그만큼 늦어진다는 건 분명하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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