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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 헤겔, 스피노자는 위대한 과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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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고 낯선 과학책을 수다 떨 듯 쉽고 재미있게 풀어냅니다. ‘읽어본다, SF’를 썼던 지식큐레이터(YG와 JYP의 책걸상 팟캐스트 진행자) 강양구씨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과학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이렇게 단순한 삶의 진실을 나조차도 깜박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평소 자기 분야에서 남다른 성취를 보였던 과학자가 장삼이사도 빤히 아는 사기꾼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때, 심지어 그를 옹호하며 되레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는 모습을 보일 때. 처음에는 당혹스럽다가 새삼 깨닫는다. ‘아, 과학자도 사람이지!’
과학은 그것이 태동한 당대의 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교과서의 간결한 정의와 깔끔한 방정식으로 표현되는 과학 법칙의 뒤에는 수많은 사람의 삶과 그 과정에서 좌충우돌 마주친 여러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이것은 공기 같아서 과학자 자신조차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서양 근대 철학자 열 명이 의기투합해서 내놓은 ‘철학의 욕조를 떠도는 과학의 오리 인형’은 바로 이렇게 과학에 결정적 영향을 준 생각을 드러내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제목처럼 욕조를 가득 채운 물이 없다면 오리 인형을 가지고 놀 수 없듯이, 근대 철학은 과학 혁명을 부드럽게 떠받치는 토대로서 기능했다.
이 책은 베이컨, 데카르트, 버클리,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흄, 칸트, 셸링, 헤겔처럼 이름은 한 번쯤 들어본 서양 근대 철학자의 저술 가운데 과학과 자연에 초점을 맞춘 대목을 소개하면서, 우리가 익숙한 근대 과학의 사고방식이 철학과의 상호 작용에서 나왔음을 차근차근 설명한다. 읽다 보면, 부제 ‘과학의 철학적 기원’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에서 언급한 철학자 대부분은 자신의 중요한 정체성을 ‘과학자’라고 생각했다. 21세기 들어서 오히려 주목 받는 스피노자(1629~1695)가 단적인 사례다. 태어나서 한 번도 네덜란드를 벗어난 본 적이 없었던 그는 렌즈 깎는 일로 밥벌이를 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렌즈를 깎는 일은 오늘날의 반도체 연구만큼이나 첨단 직업이었다.
스피노자는 일급의 과학자와 광학(빛의 과학)을 둘러싼 최신의 연구 성과를 공유했다. 과학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하위헌스, 라이프니츠 같은 과학자는 그의 작업 상황에 관심을 가졌다. 심지어 보일-샤를 법칙의 보일은 황 성분 분석을 어떻게 할지를 놓고서 그와 서신을 주고받으며 의견도 교환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과학과 철학은 또렷하게 분리되지 않았다.
함께 살펴볼 만한 흥미로운 주장도 곳곳에서 보인다. 서동욱은 로봇이나 인공지능 또 화성과 같은 외계 행성으로의 이주처럼 지극히 21세기적인 과학과 기술의 관심사가 사실은 기원전 8세기에 쓰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예언이라고 지적한다. (아니나 다를까, 똑같은 주장을 책 한 권으로 논증한 '신과 로봇'도 있다.)
박경남은 근대 과학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 뉴턴 역학(1687)이 신학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칸트(1730~1732)의 날카로운 비판도 소개한다. 칸트에 따르면, ‘상대성’을 따지지 않는 뉴턴 역학의 절대 공간(변하지 않은 시간과 공간) 개념은 신과 같은 절대자를 상정해온 낡은 관념에 사로 잡혀 있다. 칸트는 신의 시각이 아니라 인간의 시각에서 과학이 어떻게 가능할지 되묻는다.
과학도 어려운데 철학까지 덧붙은 책에 지레 겁먹을 독자를 위해서 덧붙이자. 애초 대중강연을 위해서 마련한 원고를 다듬어서 책으로 엮은 것이기에 어려운 철학 개념으로 가득한 책과는 거리가 멀다. 욕심 같아서는 이 책에 참여한 열 명의 철학자와 열 명의 과학자가 짝지어 토론하는 새로운 콘텐츠도 보고 싶다. 요즘 유행하는 멋진 ‘컬래버’가 되리라 확신한다.
과학책 초심자 권유 지수: ★★★ (별 다섯 개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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