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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 발표하니 투기 몰리고 수사 전쟁...역대 정권 신도시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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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 개발 잔혹사가 재현됐습니다.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신도시 투기 의혹이 벌어지고 정부가 '투기와의 전쟁'을 선언하면서입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풍경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5년여를 거슬러 올라가면 참여정부의 2기 신도시 사태가 그랬고, 그로부터 다시 15년여를 올라가면 노태우 정부 시절 1기 신도시 사건도 비슷했습니다. 폭등한 집값과 공급 부족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정부가 내놓은 특단의 공급책 신도시들은 결국 투기 세력에 점령당하고 말았죠.
이 사건들에는 패턴이 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역대 최고로 집값이 폭등해 정부가 신도시 조성을 발표하면 지역에서 투기가 극성을 부립니다. 그 이면에는 개발 정보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무원과 관계 기관 직원의 일탈이 있습니다.
각종 의혹이 불거지고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하면 정부가 대대적으로 조사하겠다고 나서고 투기 사범을 적발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값은 잡히지 않고 나빠진 민심은 되돌리기 쉽지 않습니다.
①부동산 폭등→②신도시 발표→③투기 극성→④투기와의 전쟁으로 이어지는 이 잔혹사는 언제 시작됐고, 또 어떻게 끝날까요. 32년 신도시 개발 역사에 드리운 투기와 비리의 그림자를 따라가 봤습니다.
신도시 건설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인 것은 노태우 정부입니다. 1988년에서 1989년 사이 전국 평균 땅값은 각각 29.5%, 23% 급등했습니다. 서울 아파트값은 1년 사이 무려 41%나 치솟았죠.
집값이 폭등하자 노태우 정부는 이른바 '1기 신도시'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①경기 성남 분당 ②고양 일산 ③부천 중동 ④안양 평촌 ⑤군포 산본 등 5개 지역에 신도시를 건설하고 200만 호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전격 발표한 것이죠.
그러나 집값이 안정되기는커녕 전국에서 투기꾼이 몰려 부동산 자산 격차가 더 벌어졌습니다. 투기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자 검찰은 이듬해인 1990년 2월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수사에 착수했죠.
정권의 명운을 걸고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대대적 수사가 진행된 1990~1991년, 당시 적발된 부동산 투기 사범은 1만3,000여 명, 구속된 사람은 987명에 이릅니다. 금품 수수와 문서 위조 등에 연루돼 구속된 공직자도 131명에 달했죠. 1991년 건설부(현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신도시 아파트 부정 당첨자 167명 가운데 당시 현직 공무원 10명이 포함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었습니다.
2003년 노무현 정부 들어서도 노태우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합니다. 열린우리당은 집값을 잡으려면 주택을 더 공급해야 한다며 신도시 건설을 주장했고, 노무현 정부는 2기 신도시 계획을 발표했죠.
①경기 김포(한강) ②인천 검단 ③④화성 동탄1·2 ⑤평택 고덕 ⑥수원 광교 ⑦성남 판교 ⑧서울 송파(위례) ⑨양주 옥정 ⑩파주 운정 등 수도권 10개 지역과 충청권 2개 지역(아산·도안) 등 모두 12곳에 신도시가 들어서고, 총 45만 호의 주택이 지어졌습니다.
집값은 내렸을까요. 오히려 반대였어요. 아파트 가격이 폭등했고, 투기 바람이 전국을 휩쓸었죠.
투기 광풍에 정부는 대검과 경찰청, 국세청, 건설교통부로 부동산 투기사범 합동수사본부를 꾸렸습니다.
합수본은 노 전 대통령이 '전쟁'을 선포한 2005년 7월 7일부터 10월 31일까지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한 특별 단속을 벌여 9,700명을 적발하고 이 중 300명을 구속했습니다. 당시 의정부 지검 고양지청에 근무하고 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이 사건 수사에 참여했어요.
구속된 투기사범 중엔 공무원이 27명이나 포함됐습니다. 이들은 돈을 받고 기획부동산업체나 전문 투기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거나 허위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하는 식으로 부동산 투기 세력과 보조를 맞췄죠.
일부 공무원들은 직무상 알게 된 개발 예정지 정보를 이용해 땅을 집단으로 매입한 뒤 형질을 불법 변경하는 방식으로 시세 차익을 보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LH 직원들의 사례와 비슷한 방식이죠.
2기 신도시 사건도 큰 틀에선 1기와 비슷한 흐름이었어요. 신도시 계획을 발표한 뒤 각종 부동산 투기 의혹이 나왔고, 대통령이 투기와 전쟁을 선포해 수사를 벌였습니다.
과거 두 차례나 단속과 적발이 있었음에도 3기 신도시에서 'LH 직원 부동산 투기 의혹'이 또다시 발생했습니다.
앞서 정부가 발표한 3기 신도시 예정지는 ①인천 계양 ②고양 창릉 ③부천 대장 ④남양주 왕숙 ⑤하남 교산 ⑥광명 시흥 6곳입니다. 이 중 광명 시흥에서 의혹이 처음 불거졌습니다.
이번 의혹은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회(민변)가 제보를 받아 발표해 알려졌죠. 정부의 토지·주택 정책 시행을 위임받은 LH 직원들, 그것도 고위 간부급 직원이 내부정보를 이용해 개발 예정지의 땅을 사들이고 보상액을 높이기 위해 나무를 심는 행위 등을 해 국민적 분노가 큰 상황입니다.
해당 LH 직원들이 토지 거래 과정에서 차명이 아닌 실명으로 거래에 나섰다는 점, 친인척을 대거 동원해 땅을 사들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LH 직원들이 내부 정보를 이용한 거래를 장기간 지속해 왔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어요.
이 때문에 조사 대상 범위가 사상 최대 규모로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3기 신도시 6곳과 택지면적 100만㎡가 넘는 과천지구와 안산 장상지구가 소재한 경기도와 인천광역시 및 9개 기초자치단체의 신도시 담당부서 공무원, 8개 광역·기초자치단체의 도시공사 임직원 대상으로 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수사는 과거와 비슷한 방향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검찰이 아닌 정부가 전면에 나섰고, 경찰이 주도권을 쥐었다는 것이죠.
이번에 만들어진 합동조사단은 국무조정실과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경찰청, 경기도, 인천시가 참여합니다. 특히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는 투기 의혹을 수사할 부동산 투기사범특별수사단이 꾸려졌습니다. 검찰이 아닌 경찰이 수사를 총괄하는 것이죠. 올해부터 시행된 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른 결과죠.
문제는 조사단 주체에 국토부와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한 사건 이해 당사자가 포함됐다는 겁니다. 벌써부터 셀프 조사라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번 투기 의혹과 관련해 정부 자체 조사가 아닌 국정감사나 검찰 조사를 요구하는 글과 함께 광명·시흥 신도시 지정을 취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잇따라 올라왔습니다. 부동산 커뮤니티를 비롯한 온라인에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꼬는 게시물들이 쏟아지고 있죠.
투기 근절, 집값 안정을 부르짖었던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요. 이제 막 수사가 시작됐으니 섣불리 예측할 수 없지만 수사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에 주택 정책 불신으로 인한 민심 이반 조짐까지, 문재인 정부가 큰 위기에 빠진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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