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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스님 지인·사적 모임 멤버까지 사찰한 MB 국정원

입력
2021.03.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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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친목 모임 '명쫓사' 사찰 보고서 작성
명쫓사 참석 인사 동향·계획까지 기록한 듯
MB 비판 인사들 흠집 내기 위한? 'DB 구축' 제시
"좌파 추종 기반 와해 위해 혐오 여론 부추겨라"

명진스님 측이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받은 사찰 관련 문건. 국정원은 2012년 3월 22일 '명진 주도 불순 모임 명쫓사 특이동향 및 평가'란 제목의 보고서를 만들었다. 명진스님 측 제공

명진스님 측이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받은 사찰 관련 문건. 국정원은 2012년 3월 22일 '명진 주도 불순 모임 명쫓사 특이동향 및 평가'란 제목의 보고서를 만들었다. 명진스님 측 제공

이명박(MB) 정부 국가정보원이 명진스님을 불법 사찰할 당시 스님과 사적 모임을 가진 인사들의 동향까지 사찰 보고서에 기록한 것으로 드러났다. 친목 모임에 참여한 인사들은 대체로 이명박 정부를 비판해 탄압받은 사람들로, 신경민 전 의원, 방송인 김미화씨, 정연주 전 KBS 사장, 서기호 전 판사 등이다.

국정원은 좌파 진영 조직 와해를 목표로 정부 비판 인사들을 흠집 내기 위한 데이터베이스(DB)도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반(反)정부 성향 인사들의 비위나 부도덕한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 검찰과 경찰, 감사원, 국세청 등 사정기관이 긴밀히 협조하자고 했다.

명진스님이 법원 판결에 따라 국정원으로부터 전달받은 과거 사찰 문건 중에는 '명진 주도 불순 모임 명쫓사 특이동향 및 평가'란 제목의 서류가 있다. 국정원이 명진스님 주도로 모인 사적 모임까지 사찰 대상에 넣은 것이다. 아예 '불순 모임'으로 규정했다.

명쫓사는 '이명박에게 쫓겨난 사람들'의 줄임말이다. 이 문서는 2012년 3월 22일에 작성된 것으로, 명쫓사 모임의 취지와 참여 인물, 최근 동향 등이 자세히 나와 있다.


"좌파 인사 소송 건, 해당 부처·법무법인이 적극 대응을"

이명박(MB) 정권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을 당한 봉은사 전 주지 명진스님이 3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일보 본사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왕나경 인턴기자

이명박(MB) 정권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을 당한 봉은사 전 주지 명진스님이 3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일보 본사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왕나경 인턴기자

국정원은 해당 문건에 모임 참석자 10여 명에 대한 실명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정원은 개인 신상 보호를 이유로 명진스님에게 이름을 지운 상태로 문건을 보냈다.

국정원은 보고서에 2012년 3월 12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명쫓사 첫 번째 모임이 열렸다며 이 내용을 기록했다. 국정원은 "(명진스님이)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결집, 총선 관련 야권 지원 활동을 전개하자는 취지 아래 3월 12일 인사동에서 이른바 '명쫓사' 모임을 개최했다"며 "이 모임에는 ~ 등 10여 명이 참석했다"고 적었다.

국정원은 명쫓사 참석자 중 일부 인사에 대한 최근 동향과 계획도 기록했다. 다만 이름은 가려져 있어 누구에 대한 동향인지는 알 수 없다. 국정원은 일부 인사가 정부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며 "소송 건은 해당 부처와 의뢰한 법무법인 등을 통해 적극 대응하도록 독려함이 바람직하다"는 의견까지 덧붙였다.

국정원은 명쫓사가 친목 모임 수준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움직임을 살핀 뒤 필요할 경우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평가했다. 국정원은 "명쫓사는 친목 모임 수준으로 구체적 활동 계획은 정해지지 않은 상태"라며 "소송도 모임의 실체나 영향력에 비해 다소 과장됐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참석자들이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이해득실을 계산해 야권 지원에 나설 가능성이 있으나 결속력 미약으로 영향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정기모임 움직임 등 특이동향을 봐가며 대응 수위를 조절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국정원이 주목한 인사들 정부 비판해 자리 잃어

2017년 9월 25일 방송인 김미화(왼쪽)와 황석영 작가가 서울 종로구 KT광화문 빌딩에 있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에서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 블랙리스트 관련 조사 신청서를 기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고영권 기자

2017년 9월 25일 방송인 김미화(왼쪽)와 황석영 작가가 서울 종로구 KT광화문 빌딩에 있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에서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 블랙리스트 관련 조사 신청서를 기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고영권 기자

명진스님은 실제 2012년 3월 12일 서울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 10여 명과 함께 명쫓사 첫 모임을 가졌다.

이날 모임에는 정 전 사장, 김미화씨,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김정헌 전 한국문화예술위원장, 당시 해직 기자였던 노종면 YTN 기자, 이근행 전 MBC PD, 당시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이었던 신경민 전 MBC 앵커, 당시 통합진보당 사법개혁특별위원장을 맡았던 서기호 전 판사 등이 참석했다.

대부분 이명박 정부를 비판해 온 사람들로, 정부로부터 핍박받아 자리를 잃은 사람들이다. 정 전 사장은 직전 정부인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됐고, 김씨는 진행을 맡았던 MBC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에서 갑자기 하차했다. 김윤수 전 관장, 김정헌 전 위원장 역시 정부가 바뀐 뒤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법원이 이들의 해임 조치가 부당하다고 판결했지만, 이들은 복직하지 못했다.


2012년 1월 19일 민주통합당의 새 대변인에 발탁된 신경민 전 MBC 앵커가 국회 정론관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2012년 1월 19일 민주통합당의 새 대변인에 발탁된 신경민 전 MBC 앵커가 국회 정론관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노 기자와 이 전 PD는 이명박 정부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을 벌여 해고됐다. 신 전 앵커도 갑작스레 앵커 자리에서 내려왔다.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국면 때 정부 비판 클로징 멘트를 자주 했다는 이유였다.

서 전 판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 전 대통령을 비판하며 '가카 빅엿'이란 표현을 썼다. 이 글을 올린 뒤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이날 모임에는 당시 쌍용자동차 파업 투쟁을 벌였던 최기호 노동조합 정책실장 등 이명박 정부 비판과 관련 없는 인사들도 참석했다.


"좌파 인사에 대한 자괴감·분노 확산해야"

명진스님 측이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받은 사찰 관련 문건으로, 국정원이 2009년 11월 13일에 '좌파 인물들의 이중적 행태 및 고려사항'이란 제목으로 작성한 보고서. 명진스님 측 제공

명진스님 측이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받은 사찰 관련 문건으로, 국정원이 2009년 11월 13일에 '좌파 인물들의 이중적 행태 및 고려사항'이란 제목으로 작성한 보고서. 명진스님 측 제공

국정원은 이보다 앞선 2009년 11월 13일에 명진스님을 비롯한 정부 비판 인사들의 행태를 정리한 보고서를 만들었다. 정부 비판 인사들을 지원하는 조직의 분열을 목표로 잡고 이들에 대한 비난 여론을 조성하려고 했다.

국정원이 작성한 '좌파 인물들의 이중적 행태 및 고려사항' 문건에는 "좌파 세력이 호화 사치, 공금 유용, 사생활 문란 등 표리부동적 행태를 보이고 있는 바, 온·오프라인을 통해 좌파 입지 약화 논리로 적극 활용한다"고 조언했다.

국정원은 검찰과 경찰, 감사원, 국세청 등 사정 기관이 긴밀히 협조해야 한다고 했다. 철저한 대응을 위해 '좌파 인사들의 취약점'을 조사한 뒤 DB를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또 주요 월간지가 특집 기사를 다루도록 하고, 언론사가 이들을 비난하는 사설·칼럼을 싣도록 지원하자고 했다. 증거 제시가 어려울 경우 인터넷에 적극 유포하자는 방안도 제시했다.

그러면서 "좌파의 이중적 실상을 적극 알려 근로자와 학생 등 추종 기반 와해 및 좌파 조직 구심력 약화를 모색해야 한다"며 "국민들의 혐오 여론 확산에 주력하고 조직원들의 자괴감과 분노를 확산해 투쟁 의지를 무력화해야 한다"고 적었다.






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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