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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유전 VS 투기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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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아파트는 누구나 살 수 있다. 가격이 문제일 뿐 자격엔 제한이 없다. 반면 농지는 아무나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논이나 밭, 과수원은 직접 김을 매고 밭을 가는 이만 매수할 수 있다. 헌법 121조가 땅은 농사짓는 사람이 가져야 한다는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지법도 '농지는 자기의 농업 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농지를 사려면 농지취득 자격 증명을 발급받아야만 하고, 농사를 짓지 않으면 처분 명령도 내려진다.
□ 경자유전 원칙은 오랜 역사적 투쟁과 사회적 논의의 성과다. 대지주와 호족의 세력이 커지며 농민들이 소작인으로 몰락하는 현상은 삼국시대에도 문제였다. 고려말 권문세족들의 토지겸병이 심해지자 정도전은 “부자는 토지가 백과 천에 이르고 가난한 자는 송곳 꽂을 땅도 없다”고 비판하며 새 왕조를 열었다. 조선시대 토지 사유화의 병폐가 커지자 실학파는 경자유전을 주창했다. 유형원은 토지를 국유화해 농민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균전론을, 정약용은 토지를 9등분한 뒤 8명에게 나눠주고 한 곳은 공동 경작하는 정전론을 제안했다. 일제강점기 식량 수탈에 소작료는 80%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런 배경 아래 제헌 헌법은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한다고 선언했고, 유상매입 유상배분 농지개혁도 이뤄졌다.
□ 농민도 아닌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농지 투기를 한 것은 공정의 가치를 훼손한 것일 뿐 아니라 헌법 정신을 파괴하고 농민들의 가슴을 후벼 판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경자유전 원칙은 도시화와 고령화 등 시대적 변화에 흔들리며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이미 농지의 절반은 소유자와 경작자가 다르다. 20대 국회의원 중 3분의 1이 본인이나 가족 친지 명의로 농지를 소유해 논란도 일었다. 법망은 너무 성성하다.
□ 땅은 생명의 어머니다. 농지는 식량 안보 차원을 넘어 정서적 안정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공익적 가치도 크다. LH 꼬리만 자르고 끝낼 일이 아니다. 경자유전 원칙을 다시 확고히 세우고 농지 거래 규제를 촘촘히 할 필요가 있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 농지에 투기꾼의 발자국 소리만 넘쳐 나선 곤란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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