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오늘 살아만 있어도 감사할 일이다

입력
2021.03.10 20:00
25면

편집자주

'호크마 샬롬'은 히브리어로 '지혜여 안녕'이란 뜻입니다. 구약의 지혜문헌으로 불리는 잠언과 전도서, 욥기를 중심으로 성경에 담긴 삶의 보편적 가르침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다윗과 골리앗 ⓒ게티이미지뱅크

다윗과 골리앗 ⓒ게티이미지뱅크


다윗의 기도문을 읽으며 참 뻔뻔하고 낯이 두껍다고 느꼈다. 그의 일생이 담긴 성경의 사무엘하 끝 무렵에 그의 감사 기도가 나오는데, 앞뒤 살펴보니 참 뜬금없다. 초년의 다윗은 자랑스럽고 멋들어진 영웅이었다. 보잘 것 없는 양치기였지만 자기 백성의 하나님을 능욕하는 적군 앞에 돌을 던지며 나아갔던 용사였다. 그러나 그의 말년은 죄송한 표현이지만 지저분하고 측은했다. 부끄러운 여자 문제를 덮으려 살인 교사를 했고, 뒤이은 그의 가족사는 남 부끄러워 말 꺼내기도 어렵다. 배다른 형제남매 간에 성폭행과 살인이 벌어지고, 결국에 아들 하나는 아버지 다윗을 몰아내고 아버지의 여자들을 옥상에서 범하는 패륜을 벌였다. 감사기도 뒤에는 자기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인구조사를 했다가 하나님으로부터 크게 혼나고 백성들이 전염병에 시달리게 되었다. 대체 이런 정신의 사람이 웬 감사기도를 드리는 것인지.

다윗의 감사기도는 같은 책에 담긴 또 다른 기도문과 사실 짝을 이룬다. 사무엘서가 마지막을 다윗의 감사로 맺는다면 처음은 한나의 감사로 연다. 감사로 시작해서 감사로 맺는 이 책의 문학적 구조는 하나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 중간에 담겨 있는 인간사가 찬란하든 엉망진창이든 감사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체 무얼 감사하여야 할까?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자니 적잖게 겸연쩍었겠지만, 일생에 언제나 자신을 구원하여 주신 일에 감사를 드렸다. “원수들에게서 나를 구하여 주셨습니다. 나를 치려고 일어서는 자들보다 나를 더욱 높이셔서, 포악한 자들에게서도 나를 건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뭇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가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주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삼하 22:49-50). 한나는 아이를 가질 수 없어 슬펐으나 기적적으로 임신을 하였으니 감사할 일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한나의 감사는 임신한 사연보다는 구원을 감사드린다. “이제 나는 주님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있습니다. 원수들 앞에서도 자랑스럽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구하셨으므로, 내 기쁨이 큽니다.”(삼상 2:1). 아기를 가지게 된 한나의 사연도, 사울의 칼날로부터 살아남은 다윗의 사연도 언급되어 있지 않고 다소 전형적인 어투로 감사를 노래하는 두 기도문이다. 구원의 감사로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사무엘서의 문학구조도 메시지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영원불변하게 감사할 주제는 바로 구원이라는 것이다.

같은 단어 구원은 교회의 교리 속에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신학개념이다. 한나와 다윗의 사연처럼 현실적 개념보다는, 사람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올바른 신앙관계를 이루는 영적 개념을 이른다. 원수와 병마로부터의 구원받은 것처럼, 인간이 죄와 궁극적 절망인 죽음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구원이라 말한다. 신앙인이 아닌 분들에게는 이렇게 설명드릴 수 있을 것 같다.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려면 어떤 현실적인 감사의 조건이 있어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마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어 신앙인이 된 것 자체를 감사하는 것처럼, 사람은 오늘 하루도 생명을 부여받아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침에 살아 눈만 뜰 수 있어도, 눈뜬 곳이 침실이든 병실이든 감사해야 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인 것이다.

오늘도 어제처럼 살아 있어 서로 볼 수만 있어도 감사할 일이다. 감사는커녕 어디에 숨고 싶다 하더라도, 오늘도 생명을 부여받아 하루 더 삶을 누릴 수 있다면 감사할 일이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감사할 줄 알면 삶도 생명도 경외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조건을 자랑도 비관도 할 것이 아니라, 그저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다면 가장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받은 복을 가만히 세어보자.

기민석 목사ㆍ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대체텍스트
기민석목사ㆍ한국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