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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타고 '차트 역주행'… 해체 직전 아이돌도 살려냈다

입력
2021.03.11 15:26
수정
2021.03.11 15:53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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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걸스. 뉴스1

브레이브걸스. 뉴스1

“해체를 논의하고 숙소에서 짐까지 뺐는데 차트 역주행이라니…”

4년의 시간을 역주행한 히트곡 하나가 해체 직전까지 갔던 아이돌 그룹을 살려놓았다. 살려놓은 정도가 아니라 하루아침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화제의 주인공으로 탈바꿈시켰다. ‘군통령’으로 불리는 그룹 브레이브걸스 이야기다. 시작은 지난달 24일 유튜브에 업로드된 한 영상이었다. 이들이 2017년 발표한 ‘롤린(Rollin')’의 군부대 공연에 재치 넘치는 댓글을 덧붙인 것인데 군인들의 열광적인 호응과 ‘전쟁 때 이거 틀어주면 전쟁 이김’ 같은 댓글이 화제가 되며 순식간에 100만 조회수를 돌파했다.

‘롤린’은 유튜브 인기에 그치지 않았다. 금세 음원 차트까지 진격하더니 벅스를 시작으로 지니, 플로에 이어 10일 멜론 일간차트까지 정복하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군대에서 선임이 후임에게 인수인계하며 시냇물처럼 졸졸졸 이어지던 인기가 홍수가 되어 저수지 둑을 무너뜨린 것이다. 최근 서면으로 만난 이들은 "4년 전 나온 노래라서 역주행 사실 자체가 처음엔 믿기지 않았는데 1위까지 하니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유튜브와 소셜미디어가 음악 소비의 주요 창구로 떠오르면서 음원차트 역주행은 흔한 일이 됐다. 지난해 ‘1일1깡’ 신드롬을 낳은 가수 비의 ‘깡’도 2017년 발표 당시 차트 100위 안에 들지 못할 만큼 대중에게 외면당했던 곡이다. ‘망작’이라는 평을 듣고 묻혔던 이 곡은 뒤늦게 SNS상의 각종 밈과 패러디 영상들을 타고 인기를 끌며 3년 만에 음원차트 상위권에 진입했다. 지난달에는 아이유의 2011년 곡 ‘내 손을 잡아’가 10년 만에 음원 차트 상위권에 진입하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 ‘롤린’처럼 이 곡 역시 유튜브에서 공연 영상이 SNS를 타고 인기를 끌면서 차트 역주행을 이끌었다.

차트 역주행은 심지어 세대와 국경을 초월하기도 한다. 일본의 여성 가수 마츠바라 미키가 40년 전 발표한 ‘한밤중의 문-스테이 위드 미(?夜中のドア-Stay With Me)’는 지난해 12월 세계 최대 음악 플랫폼 스포티파이의 글로벌 바이럴 차트에서 2주간 1위에 올랐다. 스포티파이 바이럴 차트는 각종 소셜미디어와 블로그를 통해 가장 많이 공유되는 곡의 순위를 매긴다. 몇 년 전만 해도 일본 밖에서 지명도가 거의 없는 가수였던 그는 유튜브에서의 인기로 세상을 떠난 지 15년 만에 글로벌 스타가 됐다.

가수 비 '깡' 뮤직비디오. 뮤직비디오 화면 캡처

가수 비 '깡' 뮤직비디오. 뮤직비디오 화면 캡처


이 같은 역주행의 중심에는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이 있다.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영상을 추천해주는 기능인데 앞서 열거한 사례들 대부분이 유튜브 알고리즘 덕에 불특정 다수가 관심을 갖게 되면서 역주행 히트곡이 됐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유도하는 데 최적화돼 있다. 주로 사용자의 관심사와 비슷한 영상이나 유사한 성향의 사용자가 많이 보는 영상, 최근 인기 영상 등을 추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자세한 작동 방식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차트 역주행 인기곡의 경우 대부분 가수가 기획사 측이 제작한 공식 영상이 아닌 사용자가 만든 영상이 주도하는 경우가 많아 홍보 방식을 유튜브 알고리즘에 맞추기도 쉽지 않다. 브레이브걸스 소속사 브레이브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에 맞춰 ‘롤린’ 홍보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있지만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에 맞춰 홍보를 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음원차트 역주행 히트곡이 늘면서 실제로 차트에서의 신곡 비중도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진우 가온차트 수석연구위원은 “4년 전만 해도 음원차트 100위 곡들 중 해당 월에 발표된 곡이 70% 수준이었는데 최근에는 50% 정도로 줄었다”며 “사용자들이 SNS 영향을 받아 좀 더 능동적으로 음원을 소비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고, 코로나19 영향으로 신곡 수가 줄어들면서 빈자리를 예전 곡들이 채우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듯하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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