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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연봉 'G2' 시대와 ‘LH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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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한국일보>
대한민국 국회는 2021년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구매력(2020년 869원/달러, OECD기준) 환산 연봉이 미국 의회를 추월했다. 연간 세비(1억5,280만원)가 작년보다 0.5% 올라, 미국(1억5,120만원ㆍ17만4,000달러)을 넘어섰다. 지난해 국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이탈리아를 넘어 G7 수준에 도달했다는 게 며칠 전 우리 정부 자랑인데, 국회는 아예 미국과 맞서는 ‘G2 반열’에 오른 셈이다.
금융위기가 닥친 2009년 미 의원 연봉은 한국(1억1,300만원)의 1.3배였다. 게다가 매년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자동 인상되는 구조다. 그런 미국이 역전을 허용한 건 의원들이 새해 벽두마다 직업윤리를 발휘, 인상거부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고생하는데 의회만 자동 인상되는 세비를 받을 수 없다”고 시작된 거부 결의가 올해까지 12년째다.
‘10년 동결이면 충분하다’며 2019년 일부 수용 움직임도 있었으나, 다수당인 민주당 초선의원들이 막았다. 조 커닝햄(민주ㆍ사우스캐롤라이나) 의원은 “의회는 급여를 올리지 말고, 상징적으로라도 예산 균형을 맞추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민들을 살려야 한다’며 100조원 가까운 추경을 주문하면서도, 세비는 올린 한국과 대비된다.
한미 의회의 엇갈린 모습을 지켜보며 며칠 전 OTT 플랫폼을 통해 본 영화가 생각났다.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의 에어프랑스 항공기 납치로 끌려간 자국민을 구출하려고 1976년 6월 이스라엘이 벌인 ‘엔테베’ 작전이 소재였다. 인질 대부분이 구출됐고 특공대장 요니 네타냐후(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형) 중령만 희생됐다는 건 잘 알려졌지만, 새롭게 눈길이 간 건 에어프랑스 승무원들의 직업윤리였다. 납치범들이 사태 초기 ‘비이스라엘’ 인질을 풀어줘 귀환할 수 있었는데도 이를 거부했다. “승객을 끝까지 챙기는 게 우리 의무”라며 마지막 구출 순간까지 버텼다.
일이 고되거나 잘 풀리지 않으면 ‘먹고살기 힘들다’고 푸념하지만 직업은 호구지책일 수만은 없다. 한편으로는 삶의 가치를 확인하는 자아실현 통로이고, 그 과정에서 직업윤리가 발현된다. 기능직에서도 ‘장인’(匠人) 반열에 오른 분들이 많지만, 공공부문 종사자나 전문직일수록 직업윤리가 중요하다. 군인이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경찰과 소방관이 위험을 감수하는 건 돈이 아닌 직업윤리 때문이다. 언론인이 취재정보를 재테크에 써먹지 않고 경쟁 매체보다 먼저 내보내려는 것이나, 정권에 밉보여도 고위 공무원이 직언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라가 잘되려면 전문직과 집권 세력의 직업윤리가 살아야 한다. 불행히도 국회의 연봉 추월은 우리 집권 세력의 윤리 수준이 어떤지 보여준다. 심각한 건 직업윤리는 물과 같다는 것이다. 고위층과 집권 세력의 낮은 윤리의식과 소명감은 자연스레 아래로 흘러 들어 사회 전반의 기강을 약화시킨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가 확대되고 있다. 자칫 게이트라는 말이 붙을 수도 있겠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세비를 챙긴 의원들이 LH 직원들의 윤리 부재를 탓하지만, 윤리가 없기는 매 한가지다. LH사태는 LH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사 경관이 권력 실세의 불법행위를 알아서 무마하고, 고위 공무원이 심야에 서류를 폐기하고, 정권 전체가 나서 사법기관 수장을 압박했던 것 모두 뿌리가 같다.
‘국회 G2’ 시대에 LH 사태가 터진 건 우연이 아니다. 전문가 지적은 외면한 채 ‘적폐 청산’으로 포장돼 곳곳에서 벌어진 아집에 빠진 실험들이 가뜩이나 취약했던 우리 사회 직업윤리를 뿌리째 흔든 건 아닌지 되새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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