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만 시켜 주세요"... 한·베 유치원을 향한 간절한 마음

입력
2021.03.11 04:40
16면

<20> 지원 사각지대 놓인 한·베 가족 자녀

편집자주

국내 일간지 최초로 2017년 베트남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 가 2020년 2월 부임한 2기 특파원을 통해 두 번째 인사(짜오)를 건넵니다. 베트남 사회 전반을 폭넓게 소개한 3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베트남의 오늘을 격주 목요일마다 전달합니다.

이승태 베트남 하노이 한·베가족협회장이 10일 개원을 준비 중인 특수목적 유치원 부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하노이=정재호 특파원

이승태 베트남 하노이 한·베가족협회장이 10일 개원을 준비 중인 특수목적 유치원 부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하노이=정재호 특파원

“아이 둘 보낼 건데 유치원비를 조금이라도 깎아주실 수 있나요.” “3개월 단위 원비를 매달 납부하면 안될까요.”

10일 이승태 하노이 한베가족협회장의 휴대폰은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한ㆍ베트남 가족 2세를 위한 특수목적 유치원 설립 추진 소식을 들은 교민들의 부탁과 읍소, 애달픈 사연이 쉬지 않고 전해졌다. “수익 사업이 아니잖아요. 해외에선 다들 힘들죠. 일단 한ㆍ베 가족 아이들을 위해 유치원을 지을 계획이지만, 형편이 어려운 한국인 자녀들도 최대한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이 회장은 두 돌 된 늦둥이 사진을 보며 웃으며 답했다.

협회의 오랜 숙원인 한ㆍ베 유치원 사업은 자녀들을 제대로 가르쳐보자는 공부방 프로젝트에서 시작됐다. 한ㆍ베 가족 아이들은 베트남 현지 학교에 입학한 뒤 2개 언어 사용에서 오는 어려움을 호소했다. 협회는 2013년 작은 사무실을 빌려 한국어 교육에 나섰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공부방이 발 디딜 틈 없이 아이들로 가득 들어차자 협회는 정식 교육 공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낮에는 맞벌이 한ㆍ베 부모들을 대신해 어린이들을 돌보고, 저녁에는 하교한 초등학생들의 베트남어 숙제와 한글 기초 교육을 진행하겠다는 청사진도 준비했다.

취지는 좋았지만 자금 확보는 넘기 힘든 거대한 산이었다. 공부방만 해도 급증한 아이들로 늘 적자 운영을 하던 터였다. 협회 운영진의 사비로 모자란 운영 자금을 충당하는 것도 한계가 뻔히 보였다. 유치원 사업은 점점 멀어져 갔다.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동부화재 등 일부 현지 진출 한국기업이 후원금을 보내기도 했으나 너무 많아진 한ㆍ베 가족 아이들을 보듬기엔 역부족이었다.

한·베가족협회가 지난해 하노이 한국 국제학교 강당에서 유치원 기금 조성을 위한 바자를 진행하고 있다. 한·베가족협회 제공

한·베가족협회가 지난해 하노이 한국 국제학교 강당에서 유치원 기금 조성을 위한 바자를 진행하고 있다. 한·베가족협회 제공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송년회 등 자체 행사를 없애고 매년 바자를 열어 틈틈이 사업비를 모았다. 돈이 차곡차곡 쌓인 지난해 협회는 드디어 하노이 한인 밀집 거주지역 '미딩'에 유치원 부지를 마련했다. 첫 삽은 떴지만 갈 길은 멀다. 언젠가 한ㆍ베 유치원이 들어서면 협회는 이들의 어려운 가계 사정을 감안해 원비를 국제 유치원의 3분의1, 베트남 유치원의 절반만 받을 생각이다.

이 회장은 “솔직히 다달이 1,200만원에 달하는 임대 비용과 20명의 교사진 월급을 제 때 지급할 수 있을지 근심이 많다”면서도 “아이들이 밝게만 자라 주면 누군가는 관심을 보이지 않겠느냐”고 낙관했다. 하노이 첫 한ㆍ베 유치원 이름도 ‘하나’로 지어뒀다. 감염병이 덮쳐 아무리 살기 어려워졌다 해도 미래의 주역인 아이들 교육만큼은 한마음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노이= 정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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