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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 못 하는 내 아이…" 한국 아빠는 오늘도 눈물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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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일간지 최초로 2017년 베트남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 가 2020년 2월 부임한 2기 특파원을 통해 두 번째 인사(짜오)를 건넵니다. 베트남 사회 전반을 폭넓게 소개한 3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베트남의 오늘을 격주 목요일마다 전달합니다. 한국일보>
“자녀가 넷이라고요? 제대로 애국하시네요.”
베트남 하노이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A(46)씨는 주변의 칭찬 아닌 칭찬에 자주 쓴웃음을 짓는다. 한국이라면 모를까, 여기는 고국과 2,683㎞나 떨어진 남의 나라다. 출산 지원금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내놓는 각종 혜택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물론 2008년 베트남인 아내(40)와 현지 결혼을 결심했을 때 깔끔히 내려놓은 부분이라 후회는 없다. 공영 주차장비 할인은 못 받더라도 베트남에서 가족과 행복하게 살면 그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A씨는 요즘 퇴근할 때마다 쉽게 현관 문을 열지 못한다. “아빠!”라고 외치며 안길 것만 같았던 아이들은 신발을 벗는 그를 슬금슬금 피하기 일쑤였다. 한국어를 접하지 못하고 나이를 먹을수록 아빠를 점점 더 어려워했다. 베트남 학교에 익숙해진 자녀들의 대화 상대는 오직 엄마다. 어린 막내만큼은 한국어를 가르쳐 보려 했지만 '한ㆍ베트남 가족’을 교육하는 한국 기관의 할당 정원은 꽉 찬 지 오래였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모국어를 알지 못하는 한국 국적 아이들을 그저 바라보는 게 고작이다.
한ㆍ베 가족이 지원 사각지대에서 신음하고 있다. 베트남에 거주하는 한ㆍ베 가족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와중에도 꾸준히 늘었다. 10일 하노이 한베가족협회 자료를 보면 2016년 500여 가구에 불과했던 한ㆍ베 가족은 코로나19가 확산한 지난해 1,800여 가구까지 증가했다. 1년 만에 수도 하노이 등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400가구가 새로 생겼다. 최근 삼성과 LG 협력업체들이 대거 입주한 북부 산업단지에 한국인들이 많이 살기 시작한 덕분이다. 협회 관계자는 “양국 교류 초기에는 남부 호찌민에 한ㆍ베 가족이 많았지만, 지금은 전체 가족의 70%가 북부에 거주하고 있다”며 “자녀가 없어 통계로 잡히지 않는 20, 30대까지 포함하면 베트남에 사는 한ㆍ베 가족이 2,200가구를 충분히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보다 집값과 생활비 부담이 적다 보니 한ㆍ베 가족 대부분은 다자녀 가구로 구성돼 있다. 가구당 자녀가 두 명만 있다고 가정해도 한ㆍ베 가족 2세들은 적어도 3,600여 명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한국국적 미성년자의 증가는 한국계 교육기관에 대혼란을 가져왔다. 한국 국제학교와 유치원이 한ㆍ베 가족 2세 입학 비율(10~20%)을 어떻게든 지키고 있지만 사실상 그게 전부다. 추가 학생 선발을 위해 시설을 확보하려 해도 베트남 교육당국의 거부감이 강해 새로운 국제 교육기관을 세우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하노이 거주 2세 자녀들 가운데 올해 한국학교에 입학한 인원은 59명에 그쳤다.
A씨처럼 한국식 교육에서 배제된 한ㆍ베 가족 2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다. 우선 영미권 국제학교나 유치원을 가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한 학기 교육비가 최소 2만달러(약 2,275만원)나 돼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아쉬운 대로 개인 과외나 사설 학원을 이용해 한국어 공부를 할 수도 있다. 이 역시 빈약한 월급으로 살아가는 한ㆍ베 가족에게 한국과 비슷한 베트남 사교육비는 넘기 힘든 벽이다. 한ㆍ베 가족의 벌이는 기껏해야 지난해 베트남 대도시 직장인 평균 월급인 640여만동(약 33만여 원) 정도다. 자연스레 2세들은 베트남 현지 학교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고, 한국인로서의 정체성을 잊은 채 베트남인으로만 살아 가야 한다.
아이 셋을 키우고 있는 한ㆍ베 가족 가장 B(54)씨는 “정체성 혼란에 빠진 아이들이 한국어나 베트남어, 어느 하나 제대로 구사하지 못해 학교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한국 군대에 가야 할 일곱 살 아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이들의 딱한 처지가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우리 정부의 정책적 배려도 전무하다. 한베가족협회가 2018년 베트남을 국빈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현지 교육의 어려움을 호소했으나 정부의 답변은 여전히 들려오지 않고 있다.
결국 아이들을 방치할 수 없었던 한ㆍ베 가족 가장들이 직접 나섰다. 없는 살림을 쪼개 기금을 마련하고, 특수 유치원이라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중이다. 규모가 큰 국제학교 설립은 엄두도 낼 수 없으니 작은 유치원 공간이라도 만들어 낮에는 영ㆍ유아들에게 기초 한글 교육을 하고, 저녁엔 베트남 학교에 다니는 저학년 학생들의 방과 후 수업을 책임지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조금씩 이어지던 후원마저 코로나19 사태 이후 아예 끊겨 희망의 빛은 계속 꺼져가고 있다.
“처음 가정을 이룰 때 자녀들이 잘 자라서 한국, 베트남 양국을 잇는 일꾼이 될 거라는 희망은 헛된 기대였습니다. 양국의 미래가 될 어린아이들에게 보편적인 교육의 장만이라도 열어줬으면 좋겠습니다.” A씨는 3년 전 문 대통령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한ㆍ베 가족의 아픔을 이렇게 털어놨다. 그의 꿈은 오늘도 4남매의 평범한 한국 아빠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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