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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위로 '쿵'… 갑자기 나타난 시츄 미스터리

입력
2021.03.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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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위에 시츄 한 마리가 있어요.

지난달 25일 서울 용산구 우사단로 한 주택 지붕에 시츄가 위태롭게 걸어다니고 있다. 카라 제공

지난달 25일 서울 용산구 우사단로 한 주택 지붕에 시츄가 위태롭게 걸어다니고 있다. 카라 제공


지난달 25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마포구 서교동 동물권행동단체 카라 사무실로 다급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용산구 우사단로 인근에서 한 시민이 지붕 위를 돌아다니는 시츄를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카라의 활동가들은 처음엔 믿지 못했다. 주택가 지붕위를 시츄가 돌아다닌다니. 하지만 이들은 이내 깜짝 놀라 현장으로 달려갔다. 제보자가 보낸 사진엔 한옥 지붕 기와 위를 위태롭게 걷는 시츄가 너무나 선명히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제보자는 전화를 걸기 전날 오후 3~4시쯤 '쿵'하는 소리를 듣고 주변을 살피던 중 한 주택 지붕 위에서 시츄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스스로 지붕 위 시츄를 구하겠다고 방법을 찾는 사이 하룻밤이 지났다고도 했다. 시츄가 이미 지붕에서 떨어졌을 수도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위험천만 지붕 위의 시츄

지난달 24일 서울 용산구 우사단로 한 주택 지붕 위에 '쿵'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시츄 한 마리가 나타났다. 카라 제공

지난달 24일 서울 용산구 우사단로 한 주택 지붕 위에 '쿵'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시츄 한 마리가 나타났다. 카라 제공


오후 1시 40분. 시츄가 지붕 위를 돌아다닌 지 최소 24시간이 다 돼가고 있었다. 현장에 도착한 활동가 3명은 지붕 위로 올라갈 방법을 고심한 끝에 지붕과 가장 가까운 건너편 건물 옥상을 이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구조가 쉽게 끝날 것 같진 않았다. 사람들이 옥상으로 올라오자 시츄는 겁을 먹은 듯 지붕 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더는 지체할 수 없어 활동가 박상욱씨가 옥상에서 지붕으로 건너가 시츄에게 다가갔다. 시츄는 도망가다 지붕 위 플라스틱 판넬과 기와 틈 사이로 들어갔고, 이때부터 박씨와 시츄의 줄다리기가 벌어졌다.

동물권행동단체 카라 박상욱 활동가가 기와와 플라스틱판넬 사이에서 버티고 있는 시츄를 구조하고 있다. 카라 제공

동물권행동단체 카라 박상욱 활동가가 기와와 플라스틱판넬 사이에서 버티고 있는 시츄를 구조하고 있다. 카라 제공


시츄가 몸을 숨긴 공간은 박씨가 옆으로 누워 손을 뻗어야 겨우 닿을 수 있을 정도로 비좁았다. 시츄는 나갈 생각이 없다는 듯 그 자리에 아예 엎드렸고, 박씨가 끌어내려 하자 으르렁거리며 버텼다. 그러기를 15분, 박씨는 갑자기 두 손으로 힘껏 시츄 몸을 당겨 밖으로 끄집어냈다. 구조된 시츄는 순순히 박씨의 품에 안겼다. 활동가들은 건강 상태 확인을 위해 시츄를 동물병원으로 데려갔다.

관리 안 된 흔적 역력… 사람에겐 익숙

카라 활동가가 지붕 위에서 구조한 시츄를 동물병원에 데려가고 있다. 카라 제공

카라 활동가가 지붕 위에서 구조한 시츄를 동물병원에 데려가고 있다. 카라 제공


동물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활동가들은 시츄의 인식칩부터 확인했지만 이름표도 내장칩도 없었다. 중성화 수술도 되어있지 않았다. 사람 손길에 익숙해 반려견으로 추정했지만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음은 분명했다. 지붕으로 떨어진 점을 감안해 골절 여부도 살폈지만 이상은 없었다. 건강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활동가들은 시츄를 서울 마포구더불어숨센터로 데려왔고 더러운 털부터 씻겨냈다.

카라는 시츄가 혼자 갈 수 없는 곳(지붕)에서 발견된 점을 들어 유실보다 의도적인 유기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현장 구조에 참여했던 활동가 고현선씨는 "낯선 환경이라 불안해하면서도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며 "계속 무릎에 앉아 있을 정도다"고 말했다.

카라 활동가가 건강검진을 마치고 온 시츄를 목욕시키고 있다. 시츄는 목욕하는 동안 익숙한 듯 얌전히 사람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카라 제공

카라 활동가가 건강검진을 마치고 온 시츄를 목욕시키고 있다. 시츄는 목욕하는 동안 익숙한 듯 얌전히 사람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카라 제공


카라는 경찰에 동물유기 신고를 했다. 경찰 관계자는 "동물유기는 구청에 가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의아해했지만, 2월부터 유기도 벌금 대상이라 신고하러 왔다는 활동가의 설명을 듣고서야 진정서를 쓰도록 했다. 동물보호법 강화로 동물유기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 대상이다.

유기동물 앱으로 찾은 보호자

박상욱 활동가가 기와지붕과 플라스틱판넬 사이로 숨어버린 시츄를 살펴보고 있다. 카라 제공

박상욱 활동가가 기와지붕과 플라스틱판넬 사이로 숨어버린 시츄를 살펴보고 있다. 카라 제공


활동가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기동물 입양과 분실 동물 정보를 제공하는 반려동물 애플리케이션(앱) 포인핸드에서 시츄 관련 정보를 찾았다. 마침 시츄를 찾는다는 보호자의 정보를 발견했고, 보호자에게 연락을 했다. 보호자는 환기를 위해 문을 잠깐 열어둔 사이 시츄 4마리가 집을 나갔는데 3마리만 찾았다고 말했다. 못 찾은 시츄의 이름은 '파니'라고 했다. 활동가들이 지붕에서 구조한 시츄다. 개가 발견된 지붕으로부터 보호자 자택의 거리는 400여m에 불과했다.

26일 시츄 보호자라고 자신을 밝힌 중년 여성이 카라 사무실을 찾았다. 여성은 "실종 당일 내내 파니를 찾아다녔다"라며 "지붕 위에서 발견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시츄는 여성을 보더니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맞았다. 활동가들은 28일 파니를 데리고 보호자 집을 방문, 환경을 확인한 후 돌려보냈다. 시츄 4마리 모두 인식칩과 중성화 수술을 한다는 약속도 받았다. 그렇게 지붕에 나타난 시츄는 구조 사흘 만에 집으로 돌아갔다.

지붕 위에 나타난 건 미스터리

카라 활동가 무릎 위에 시츄가 앉아 있다. 카라 제공

카라 활동가 무릎 위에 시츄가 앉아 있다. 카라 제공


시츄가 사람도 올라가기 힘든 지붕에 어떻게 있었는지 여전히 미스터리다. 시츄 혼자 지붕으로 올라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사람이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지붕 위에 시츄를 놔뒀다는 예상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활동가 김나연씨는 "돌아다니던 개를 발견한 사람이 쫓다가 지붕 위로 던졌을 가능성도 있다"며 "경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츄 구조에 동물단체가 나선 이유

어떻게 시츄가 지붕 위에서 발견됐는지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다. 카라 제공

어떻게 시츄가 지붕 위에서 발견됐는지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다. 카라 제공


유실?유기동물은 원칙대로면 구청 관계자나 구청이 위탁을 맡긴 구조대원이 현장에 나와 구조한다. 구조된 동물은 지방자치단체 보호소로 넘겨져 통상 열흘간 머물게 된다. 하지만 이번 시츄 구조 사례는 '지붕위'라는 위험한 공간으로 인해 구청 관계자나 비전문가가 나서기 힘들었다. 소방서 역시 2018년 5월 이후 동물구조에는 나서지 않는다. 따라서 위험한 공간에서의 구조는 대체로 동물단체의 몫으로 돌아오고 있다.

카라와 같은 동물단체는 동물 구조 시 유실·유기동물 정보를 제공하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해당 동물을 잃어버린 보호자가 있는지 확인하고, 유실?유기동물 사이트인 동물보호관리시스템(APMS)에 해당 동물 정보를 등록하도록 지자체에 요청한다.


고은경 애니로그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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