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냐, 남자냐… 그 이분법을 넘어 '나'로 살아남도록

입력
2021.03.09 04:30
한정현 '쿄코와 쿄지'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매주 한 편씩,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6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故 변희수 하사를 함께 기억하는 추모행동에서 참가자들이 고인을 기리며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이고, 직업이 기자인데, 이름이 중성적일 경우 이점이 있다. 다른 여기자들에 비해 특정 성별에만 사용하는 욕설과 특정 성별에 집중되는 성희롱 댓글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 기자의 성별이 아무 상관없는 기사에서도 사람들은 기자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궁금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름은 그 편견을 확인시켜 줄 유용한 증거다.

이름마저 이런 편견의 좋은 먹잇감일진대, 몸은 오죽할까. 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한 뒤 강제 전역된 고 변희수 하사가 생전 겪은 기이한 차별에 대해 생각한다. 전차 조종에 자신 있다던 한 청년이 자기 자신의 모습대로 살고자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존재를 부정당한 일에 대해. 그의 죽음과 여전한 혐오 앞에서 허망할 이들과 이 소설을 함께 읽고 싶다. 문학과사회 봄호에 실린 한정현의 단편 ‘쿄코와 쿄지’다.

1970년대 광주에 살던 네 친구 혜숙 영성 미선 경녀에게도 이름은 그들 자신의 모습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속박의 도구다. 의대에 수석 진학할 정도로 똑똑하지만 재수 중인 오빠에게 주먹으로 얼굴을 맞고도 참아야 하는 혜숙은 남자가 되고 싶고, 반대로 여자가 되길 원했던 영성은 머리 긴 아들을 용납할 수 없었던 아버지에 의해 군대로 보내진다. 어린 시절 일본인 할머니와 무당 어머니를 뒀다는 이유로 더러운 피라고 손가락질 당했던 미선은 신부님이 되고 싶었지만 수녀가 됐고, 경녀는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경녀(京女)로 이름 지어진다.

스무 살이 된 네 친구는 이름 끝자를 다같이 ‘자’로 통일하기로 한다. 대신 이름의 한자는 “아들들의 공동체를 통과하여 최종적으로는 스스로의 공동체로 들어가고자” 한다는 의미를 담아 아들 자(子)가 아닌 스스로 자(自)로 한다.

한정현 소설가.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들 스스로 지은 이름처럼 살아보기도 전에, 1980년 광주라는 시대의 광풍은 이들의 무릎을 꺾고 운명을 갈라놓는다. 최전방으로 배치된 영자는 미쳐버렸다는 소문과 함께 전역했고, 도망친 사람들을 성당에 숨겨주던 미자는 정신병원에서 머리가 하얗게 센 채로 발견된다. 경자는 시위에 참가했던 혜자가 남긴 딸 영소를 데리고 오키나와로 향한다.

소설은 쿄코(京子)이자 쿄지(京自)인 경자가 훗날 어른이 된 영소와 주고받는 이야기 형식으로 구성된다. 여자냐 남자냐, 광주 사람이냐 북한 사람이냐, 일본인이냐 조선인이냐 묻는 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그래도 살아남아야 그 안의 작은 변화라도 목격할 수 있음을, 그 변화를 기록하는 것이 남은 이들의 역할임을 소설은 역설한다.

소설에서 미자는 죄를 열심히 말할 수 있어서 종교가 좋다고 말한다. 나는 냉담자지만 타인의 안녕을 구하고 싶을 때는 신을 찾는다. 나는 최근에 이렇게 기도했다. 그들이 주의 땅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옵소서. 그렇지만 실은, 신의 땅이 아닌 인간의 나라에서 계속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신의 구원이 아닌 우리 자신의 힘으로 만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차별도 혐오도 없는, 그래서 죽을 필요도 없는 세상을.

한소범 기자
이.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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