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추상이 된 지금, 나의 우주는 콩알만 해졌다

입력
2021.03.10 04:30
24면

<24>여행을 하는 이유

편집자주

독창적 문체로 남성 패션지 ‘GQ’를 18년간 이끌어온 이충걸 전 GQ 편집장이 문화 현상의 이면을 새롭게 들춰 봅니다. 현재 서울 필동에 사는 이 전 편집장의 ‘멘션(mentionㆍ촌평)’은 격주 수요일 자 <한국일보> 에 실립니다

여행은 일상을 최고 가치로 도약시키는 사용서와 같았다. 게티이미지뱅크

여행은 일상을 최고 가치로 도약시키는 사용서와 같았다. 게티이미지뱅크

지금의 환란 이전에는 우리나라 여권으로 갈 수 있는 나라가 아주 많았다. 어떤 점으로 친구들은 다들 마일리지 수집가였다. 이틀 놀자고 열 시간 날아간 친구에게, 하루에 밥 두 끼 먹고 관광지 다섯 군데 도는 건 일도 아니었다. 결국 입술에 헤르페스 물집이 생기더라는 얘기는 덤. 워런 버핏이 기죽을 만큼 어떤 손해도 못 참는 친구는 비행기가 파리에서 3시간 연착이라는 소리를 듣고도 그러려니 했다. 시간은 돈 주고도 못 사고, 그 비행기는 시간 도둑인데도. 어떤 모험가 친구는 장기간 외국에 체류하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순간 자기에게 죄짓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숨을 고르기도 전에 또다시 칠레로, 티베트로 훌훌 떠났다.

누구를 만나도 미국 자동차 여행이며, 시베리아 횡단, 산티아고 순례길의 대단한 여행담이 줄을 잇는다. 이 이야기는 늘 그간의 마일리지로 비즈니스석 업그레이드받았다는 자랑으로 끝난다. 요즘 가장 큰 스트레스는 외국 여행 못 가는 거라는 불평과 함께.

나는 여행을 잘 가지 않는다. 그 옛날 어떤 형은 지적 각성과 생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꼭 인도로 배낭 여행 가야 한다고 초월적으로 훈계하다가, 갑자기 넌 왜 안 가냐고 힐난했다. 나는 이해가 안 됐다. 왜 굳이? 나는 깨달음이 인도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안에도 우주가 있으며, 그 우주를 먼저 찾겠다고 말했다. 그 형은 눈을 사천왕상처럼 부라리며 너는 ‘그래서’ 틀렸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책도 많이 읽고, 약속도 잘 지키는데 내가 왜? 지금 생각하면 그 형 말이 맞았다. 나는 지금도 세상을 모르니까.

사람들은 여행을 성공의 표시로 여긴다. 그보단 우아한 시야의 아름다움과 날카로운 지식을 먼저 깨우는 일일 테다. 행복과 사랑처럼, 직접 찾음으로써 드물게 얻는 특이한 것. 그러나 누가 나에게 버즈 칼리파 호텔의 미쉐린 스리 스타급 식사와 두바이행 티켓을 권하면, 나는 자주 체하는 고소공포증 환자 친구에게 양보할 것이다.

여행에 시간과 돈이 연관되면 최적의 결정이라는 억압이 휘몰아친다. 별별 사이트에서 점잖게 날짜와 시간을 치고, 신용카드 정보를 입력해 보지만 모니터를 부술 만한 결과가 기다린다. 방금 고른 비행기 티켓이 5분 만에 두 배가 되다니. 게다가 이륙 직전, 빈 좌석과 호텔 룸을 채우려는 ‘마지막 특가’의 몸부림!

2시간 일찍 공항에 가본들 비행기에 탈 권한이 없다. 아직은 포부밖에 산 것이 없다. 가방에 물병 넣지 마. 그 로션은 비닐 지퍼락에 넣어. 노트북 안에 폭탄 없어? 알카에다 취급을 당할 때 내 뒤의 남자는 벨트에 집속 폭탄을 차고 있다. 무엇보다 꼬깃꼬깃 숨긴 피임 기구가 검색대에 펼쳐지는 인생 희비극. 결국 보안 직원에게 자기가 드물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고, 그가 그걸 납득할 만큼 아량이 넓은지 알기 위해 비행기에 기어올라 간다.

게이트까지 와도 가방을 벤치에 두고 화장실 간 바보 때문에 터미널을 폐쇄한단 소리가 들린다. 검색대의 광선 폭격을 맞으며 겨우 왔는데 게이트를 잘못 찾아,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하고 물을 때의 고독, 잘못 이해한 전광판, 고장 난 리모컨, 젖히지 않는 좌석, 때를 맞춘 빈뇨증. 비행기가 이륙하면 무엇이 ‘스트레스 vs 기대’를 구성하는지 자기에게 긴 강연을 해야 한다.

불운은 이어진다. 그 호텔 웹사이트에서 본 목가적인 사진들은 버스 타고 2시간 거리인 데다 녹슨 샤워기가 기다리는 이런 데가 아니었다. 이럴 거면 슬리핑 백을 갖고 와 공항 라운지에서 캠핑이나 할 걸.

다음 날 만은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이 된다. 한국에선 그렇게 꼼짝하길 싫어하더니 그 도시에선 미술관부터 교회까지, 성부터 학교까지, 무한 에너지로 돌아다닌다. 초과된 일정은 고통스러운 제지. 순수한 향락주의의 지옥. 그렇게 쉬고 싶었는데 정작 차분히 커피 마실 여유도 없다니. 문득 그 건축물 안에 있다는 자부심은 자기 검열로 바뀐다. 타지마할을 지은 사자한이 뭄타즈 마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면 사랑을 배우게 될까? 몽파르나스에 사르트르가 묻혔다는 걸 알면 나도 철학적으로 변할까? 피렌체 두오모는 1371년에 본당이 완공되었는데 1437년, 돔이 추가로 완성되었다는 걸 알면 더 유식해질까? 내가 실은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 조금 혼란스럽지만, 당장은 배가 고프다. 콜로세움 앞에서 따분한 무감동과 싸우며 ‘그 도시에서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뒤진다. 여행의 목적과 계획이 뒤죽박죽되는 순간, 겹치는 턱살은 쓸데없는 기념품이 될 것이다.

다음 날은 ‘샤갈 전’보다 아웃렛을 먼저 찾는다. 헐벗은 걸음으로 종일 처량한 매대를 뒤지지만, 이런 검소함으로도 여태 돈을 못 번 현실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하는 여행의 실체이며 탐험의 형태이다.

사람들은 여행을 성공의 표시로 여긴다. 게티이미지뱅크

사람들은 여행을 성공의 표시로 여긴다. 게티이미지뱅크

여행은 일상을 최고 가치로 도약시키는 사용서. 과열된 엔진을 멈추고, 생산의 멍에를 벗는 진짜 공동선. 그러나 이제 나의 여행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 서른네 살 때 일 그만두고 뉴욕에서 미래도 미련도 없이 놀다가 유럽 30개국을 30일에 돈다는 버스 관광 상품을 보았다. 솔직히 ‘조용히’ 버스로 유럽을 돈다는 카피가 마음에 들었다.

얼마 후, 런던 코벤트 가든 근처에서 짐을 풀었다.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데서 12월을 보내고 싶은 소원이 문턱까지 온 것이다. 나는 그날 밤을 자축해줄 촛대를 샀다. 연두색 영국 사과를 너무 많이 먹어서 슈렉이 되었지만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다음 날, 여행사가 고객 더러 모이라고 한 호텔은 꼭 국제 연합 수용소 같았다. 말 그대로 오대양 육대주에서 60명이 모였다. 다들 런던에서 페리를 타고 파리로 간 다음 거기서부터 시작될 유럽 여행의 환상에 부풀어 있는데 나는 물정도 모르고 와서는 ‘뭐야? 이게 ‘조용한’ 버스 여행이야?’ 하며 속으로 울부짖었다.

패턴은 단순했다. 목적한 도시에 도착해 유적이며 명소를 쓱 보고, 밤에는 다음 도시까지 다급히 달려가 녹다운된 몸으로 쉬자 마자 다음 날 아침 또 일찍 떠나야 하니, 어떨 때는 아침 5시반에도 일어났다. 그 과정이 일주일 반복되자 재미도 없고, 신기한 것도 없고, 세상 피곤이 다 쌓였다. 그리고 모든 나라의 모든 영어와 말하는 모든 괴로움. 그분들은 하나같이 다정하게 대해주었지만, 나는 매일같이 달력에 X자를 그리며 뉴욕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렸다.

그러나 매일의 시련은 고통에 끝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나의 룸메이트는 키가 2m인 호주 아저씨인데 밤마다 신도시 굴착기 스무 대로도 못 당할 데시벨로 코를 골았다. 열흘째 되던 밤, 나는 베개로 내 얼굴이 아니라 그의 얼굴을 묻으며 외쳤다. “스테이븐! 스테이븐! 코 좀 그만 곯아. 잠을 못 자겠잖아!” 그는 나를 죽일 듯 “꺼져! (Fuck You!)” 하고 꽥 소리 지르더니 곧바로 인간 트랙터로 돌아갔다. 다 나쁘진 않았다. 스테이븐은 밤마다 맥주를 여섯 캔 마셨는데, 하나는 꼭 남겨주었기 때문에.

스위스 베른에서 잠깐 머무른 뒤 바로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는 날이었다. 나는 무념무상으로 창밖을 보다가 독일인 가이드가 한 시간 뒤 만나자고 한 장소를 놓쳤다. 사실 늘 같은 장소에서 흩어졌다 모였기 때문에 으레 그런 줄 알았다. 시간이 되어 아까 내린 곳에 갔더니 아무도 없었다. 십 분. 이십 분. 내가 내내 시큰둥해하니까 그 꼴이 보기 싫었나? 그래서 다들 날 버리고 국경을 넘어간 걸까? 그때 버스가 내 쪽으로 왔다. 약속 장소에 내가 안 보여서 처음 거기에 있겠지 싶었다고 했다. 나는 버스 안으로 올라가면서 시무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여러분. 나는 나를 죽이고 싶어요. (Sorry Everybody, I’ll Kill Myself.)”

12월 31일. 마지막 여행은 암스테르담이었다. 그 도시에서 나는 왜 숱한 작가들이 세기말의 음울함을 진술했는지 알았다. 뼛속까지 추운 날이었다. 나는 담 광장 구석에서 맥주를 마시며 전깃줄에 앉은 새들과, 새해를 맞는 사람들의 이상한 활기와, 분홍 레이스 달린 초록 커튼과, 얼어붙은 운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따뜻한 애플파이가 먹고 싶어서 작은 집들이 끝까지 늘어선 거리로 들어갔는데 사람들 눈이 죄다 전기 톱 같았다. 다문 입조차 “널 썰어 버릴 거야”라고 으르렁댔다. 그때 누가 내 어깨를 잡았다. “너 찾아다녔어. 피자 먹으러 가자.” 조금 후 스테이븐은 냅킨으로 얇은 입을 닦으며 말했다. “내가 밤마다 코를 너무 곯아서 미안해. 아, 이 집 피자 진짜 맛 없다.”

밤 열두 시. 한 해의 끝을 카운트하는 광장의 환호 소리는 자멸의 여행을 떠나온 사나이의 귀청을 찢었다. 돌아보면 그 모든 도시에 가볼 수 있어서 기쁘다. 그렇지만 다시 확인하는 것은 난 역시 여행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여행이 추상이 된 지금, 나의 우주는 콩알만 해졌다. 떠나기 싫어하는 사람이 받아야 하는 시간의 복수인 것이다.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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