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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착취 금지법 ‘실패의 역사’… 역할 못 한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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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한 현실을 보도했는데, 그 현실이 바뀌지 않는 것만큼 기자들을 비참하게 하는 건 없습니다. 한국일보는 지난 1월 ‘중간착취의 지옥도’ 기획기사에서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임금 착취 실태를 보도했습니다. 한달 수십만~수백만원의 인건비를 중간에서 빼앗기는 이들이죠. 하지만 국회도 정부도 중간착취를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겠다고 나서지 않았습니다. 이에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직접 법 제·개정을 요구해보기로 했습니다. 이 여정을 담은 '중간착취의 지옥도, 그 후'를 비정기적으로 연재합니다. 시리즈의 다른 기사와 함께 읽어주세요.
“현재 파견제도는 중간착취, 상시적 고용 불안, 노동기본권의 무력화 등의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음. 노동계는 이 파견제도에 대해 노예노동의 합법화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실태를 보면 그 말이 결코 지나치다고 할 수 없음.”
이 글은 언제, 왜 쓰였을까. 2021년에 쓴 글이라고 해도 틀린 곳 하나 없는 이 글은 17년 전, 2004년에 쓰였다. 단병호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 등 국회의원 16명이 파견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파견법) 폐지안을 발의하며 ‘제안 이유 및 주요 내용’에 쓴 글이다.
이 법안은 2008년 17대 국회 임기가 끝나며 폐기됐다. 그리고 간접고용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①중간착취 ②고용 불안 ③노동기본권 무력화는 지금 더 넓고 깊게 퍼져 있다.
파견법 폐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수료 상한 설정 등의 장치를 통해 충분히 중간착취의 고통을 줄일 수 있지만 국회는 쭉 실패해 왔다. 한국일보는 20여년에 걸친 이 ‘실패의 역사’를 되짚어봤다.
중간착취를 처음 합법화한 파견법 제정(1998년) 후 첫 국회인 16대 국회는 2000년 개원했다. 그때부터 올해 2월 말까지,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서 21년 동안 국회의원이 발의한 간접고용 관련 법안을 전수조사했다. 결과는 총 91건.
근로기준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파견법 개정안 등으로 대부분 간접고용을 제한하고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이었다. 물론 파견을 더 확대하는 등의 법안도 있었지만 그 비율은 많지 않았다.
21년간 국회에 발의된 전체 법안이 7만9,216건(의원 발의안과 정부 발의안 총계)인 점을 감안하면, 간접고용 문제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뒷전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법안 수보다 더 처참한 것은 국회 통과 비율이다. 실제 법 개정으로 이어진 것은 2건뿐이다. 이 2건도 파견 노동자의 차별 개선에 대한 것으로, 중간착취를 막을 수 있는 법안은 아니었다.
한 건은 동일 혹은 유사한 업무를 할 경우 파견 노동자를 차별할 수 없는 항목을 기존 ‘임금 등’에서 임금, 상여금, 성과금, 복리후생 등으로 구체화한 것이고, 다른 한 건은 사업주가 차별 시정 명령을 받은 경우 이를 신청한 노동자뿐 아니라 같은 조건에서 일하는 노동자 모두 차별이 개선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2건 모두 이한구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파견법 개정안으로 19대 국회(2012~2016년)에서 통과됐다.
나머지 법안 대부분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된 채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다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이 중에는 통과됐다면 직간접적으로 중간착취를 막을 수 있었던 법안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파견업체가 원청에서 받은 돈(파견 대가) 중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최소한의 비율 이상은 파견 노동자에게 임금으로 지급하라’는 조항을 신설하는 파견법 개정안(함진규 전 미래통합당 의원, 20대 국회)이 있었다. 원청은 파견업체에 임금, 4대 보험료, 퇴직금, 파견회사 이익금 등을 ‘파견 대가’로 지급하지만, 파견업체는 노동자에게 최저임금만 주고 나머지는 중간착취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만들자는 것이었으나 20대 국회가 끝나면서 지난해 폐기됐다.
또 파견업체가 원청에서 받은 파견 대가를 항목별로 구분해 노동자에게 알려줘야 한다는 법안도 19대 국회부터 올해까지 6건 발의됐으나 통과된 것은 없다.
좀 더 큰 틀에서 간접고용 자체를 막거나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향상시킬 수 있는 법안도 많았다. 상시 업무는 직접고용을 원칙으로 한다는 점을 근로기준법에 명문화하자는 법안, 파견 허용 업무 및 사유를 제한하자는 법안은 18대 국회(2008~2012년)부터 12년간 한 번도 빠짐없이 발의됐으나 모두 폐기됐다. 또 노조법 또는 근로기준법상 사용자의 범위를 ‘근로계약과 상관없이 실질적인 지배력, 영향력이 있는 자’로 확대해 원청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한 법안 역시 17대 국회(2004~2008년)부터 16년간 발의됐지만, 한 건도 통과되지 못했다.
이 법안들이 발의 → 방치 → 폐기를 반복하는 동안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규모는 계속 늘어 약 346만명으로 추산된다. 상당수가 매달 수십만~수백만원씩 임금을 떼인 후 고작 100만원대 월급을 손에 쥔다.
21대 국회에서는 달라질 수 있을까. 한 노동법 전문가는 이렇게 전망했다. “그동안 간접고용 문제 해결을 위한 의미 있는 법안들이 많이 발의됐지만 늘 방치돼 있다가 폐기된 것은 법안의 타당성 등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정세의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21대 국회는 더불어민주당이 과반을 차지한 만큼 의지만 있다면 간접고용 관련 입법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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