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매매방지법, 조속한 제정이 필요하다

입력
2021.03.08 04:30
25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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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조건만남을 하는 동안 모텔 밖에서 기다렸고 또 다른 조건만남에 데려갔어요. 하루에 몇 번씩 조건만남을 해야 했지만 모텔비 등을 내야 한다는 이유로 제가 받은 돈을 다 가져가고... 늘 감시를 당해서 도망칠 수도 없는 상황이에요” 십대여성인권센터에서 공개한 한 인신매매 피해 여성의 진술이다.

우리는 인신매매 범죄가 사라져 가고 있다고 생각해 왔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최근 5년간(2015~19년) 인신매매 관련 범죄(유인, 약취) 발생건수는 1,011건으로 나타났다.

무엇이 문제일까? 얼핏 처벌 규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본질은 포괄적인 인신매매방지 법률의 부재다. 이 법률은 인신매매 관련 범죄에 대한 인식확대, 통합적인 피해자 보호체계 확립, 범죄 발생 실태 파악을 위한 통계생산 등을 포괄하고 있어 인신매매 방지와 피해자 보호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유엔인신매매방지의정서는 ‘인신매매’를 ‘착취를 목적으로 위협, 사기 등에 의해 사람을 모집, 운송, 이송, 은닉 또는 인수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우리나라도 2013년 형법 개정을 통해 사람을 약취, 유인, 매매하는 등의 인신매매관련 범죄 처벌 규정을 신설했으며,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근로기준법 등 개별 법률들에도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반면 사회적 인식과 정부 대응은 부족하다. 우리나라에서 ‘인신매매’의 의미는 ‘사람을 사고파는 것’으로 협소하다. 처벌 규정이 여러 법에 있지만 형법 외의 법률이 적용되는 경우는 인신매매관련 범죄 통계로 집계되지 않으며, 피해자 보호도 여성가족부, 법무부 등에서 산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포괄적 인신매매방지 법률이 이수진 의원에 의해 지난해 12월에 발의된 것은 고무적이다.

제정안은 유엔의정서에 준하여 인신매매 관련 개념과 범죄군을 정의하고 있다. 이는 ‘인신매매’의 의미가 국제사회 수준으로 확장되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개별 법률에 따른 처벌 규정들이 인신매매 관련 범죄라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한편, 누락 없는 범죄통계 파악은 처벌 공백을 점검, 해소해나가는 기초자료가 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피해자 보호 강화다. 피해자 권익보호기관을 통해 피해 접수 및 응급보호, 수사·재판 절차 조력, 생계·의료·법률 지원 등 피해자 인지·사법절차·보호지원 단계 등 전 과정에서 사각지대 없는 통합지원이 가능하다. 특히, 현장 밀착형 피해자식별지표가 개발·보급된다면 사건 초기에 피해자를 더 빨리 구조할 수 있다.

그러나, 법이 제정되지 않으면 앞서 언급한 효과들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인신매매방지법 제정이 시급한 이유이다.



윤덕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명예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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