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수 하사 죽음에 격앙한 이송희일 감독 "한국은 성소수자의 묘지"

입력
2021.03.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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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앞서니 성소수자 혐오 '국민 스포츠' 화"

이송희일 감독.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송희일 감독. 한국일보 자료사진


성전환 수술 뒤 육군으로부터 강제 전역 판정을 받은 변희수 전 육군 하사가 3일 청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가운데, 성소수자인 영화감독 이송희일은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어쩌다 한국은 '성소수자들의 묘지'가 되어가는가"라고 한탄하며 정치권과 사회 전반에 팽배한 성소수자 혐오를 비판했다.

이송희일 감독은 이날 "민간인 사망 소식에 따로 군의 입장을 낼 것은 없다"는 변 전 하사의 사망에 대한 국방부 입장을 전하며 "근본도 없고, 예의도 없다"고 지적했다. "군대 내 동성애를 금지하는 군형법 제92조의6 같은 파쇼적인 법을 아직도 끌어안고 있고,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한다고 게이 앱을 들락거리며 함정수사를 하던 자들"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박영선·안철수, 21대 총선 당시 정치인 등을 가리키며 "정치권이 당당히 혐오를 발산하는데 군대가 저러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라고 했다. 또 "성소수자 혐오는 이제 국민 스포츠가 됐다"며 "레즈 같다, 트랜스 같다, 게이 같다는 놀림은 이미 학교 혐오놀이의 단골이 된 지 오래"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학교 음악교사 출신으로 제주 퀴어문화축제 위원장을 맡기도 했던 퀴어 활동가 김기홍씨와 변희수 하사가 차례로 숨진 사건에 대해 "언론을 통해 알려진 두 사람 외에도 더 많은 성소수자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당신 눈에 잡히지 않아서 그렇지 (성소수자들에겐) 매일이 연탄재 신세고, 모든 곳이 전쟁터"라고 표현했다.

이어 그는 "어쩌다 한국은 '성소수자들의 묘지'가 되어가는가. 2000년을 전후로 한국 사회는 이렇지 않았다"며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등 소수자들의 슬픔은 저 바닥으로 심연을 이루고 있다"고 한탄했다.


홍성수 교수 "혐오표현 경보 강하게 울렸는데도 차별금지법 지지부진"


'트랜스젠더 혐오표현 실태조사' 연구에서 변희수 하사 전역 조치 사건을 둘러싼 혐오표현 및 영향 조사 결과. 홍성수 교수 페이스북 캡처

'트랜스젠더 혐오표현 실태조사' 연구에서 변희수 하사 전역 조치 사건을 둘러싼 혐오표현 및 영향 조사 결과. 홍성수 교수 페이스북 캡처


이송희일 감독의 지적대로 여전히 국내에선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 표현이 잦은 편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달 9일 "트랜스젠더 10명 중 6명 이상은 최근 1년간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가 4일 페이스북에 공유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 내용을 보면, 설문에 응한 트랜스젠더와 논바이너리(성별 이분법을 거부하는 성 정체성) 573명 가운데 94.8%(543명)가 해당 사건과 관련해 혐오표현을 접한 경험이 있으며, 87.6%(500명)는 해당 사건에 대한 사회적 반응으로 인해 힘들었다고 응답했다.

홍 교수는 위 내용을 공유하면서 "이렇게 진작에 '위기' 경보가 강하게 울렸는데도, 차별금지법 하나 입법하지 못하고 계속 방치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변 하사가 강제전역 조치를 받은 2020년 1월 당시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18세 이상 1,000명에게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군인이 계속 복무해도 되는가"라고 물은 결과, 응답자의 58%가 "해선 안 된다"고 답했다. 33%는 "계속 복무해도 된다"고 답했으며, 9%는 의견을 유보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인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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